[뉴스토마토 신다인 기자] 항소이유서를 기한보다 늦게 냈다는 이유로 본안 판단조차 받지 못한 사건들이 잇따라 헌법재판소 전원재판부에 올라갔습니다. 대법원의 '심리불속행 기각'에 이어 항소심의 '항소각하' 결정까지 재판소원 심판 대상이 된 겁니다.
사진은 지난2월12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사진=뉴시스)
18일 법조계에 따르면, 헌재는 지난 15일 지정재판부 평의를 열고 법원의 항소각하 결정을 취소해 달라는 취지의 재판소원 사건 2건을 전원재판부에 회부했습니다. 지난 3월 재판소원 제도 시행 이후 전원재판부에 넘겨진 사건은 모두 5건으로 늘어났습니다.
재판소원은 법원의 확정판결로 헌법상 기본권이 침해됐다고 판단될 경우 헌재에 심판을 청구할 수 있는 제도입니다. 헌재 결정에 반하거나 헌법·법률상 적법절차를 위반해 기본권을 침해한 재판 등이 대상이 됩니다. 지난 14일까지 접수된 재판소원 사건은 누적 679건이며, 이 가운데 523건은 각하됐습니다.
법조계에서는 헌재가 최근 재판소원 사건들 가운데 특히 '본안 판단 없이 사건이 종결된 경우'를 잇따라 전원재판부에 회부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합니다. 앞서 헌재는 대법원의 심리불속행 기각 사건도 전원재판부에 올린 바 있습니다.
최근 전원재판부로 넘어간 두 사건은 모두 항소이유서를 늦게 제출했다는 이유로 법원이 항소각하를 결정한 사안입니다. 각하란 소송 내용 자체를 판단하지 않고, 절차상 이유를 들어 사건을 종결하는 겁니다.
위험물품보관업 회사인 A사는 2024년 4월 경기도 화성시장의 방제조치 이행명령 처분을 취소해 달라며 소송을 냈고 이듬해 7월 1심에서 패소하자 수원고법에 항소했습니다. A사는 지난해 8월18일 항소기록접수통지서를 송달받은 뒤 항소이유서 제출을 한 달 연장한 끝에 10월29일 항소이유서를 냈습니다. 하지만 법원은 제출 기한이 이틀 지났다는 이유로 A사의 항소를 각하했습니다. 대법원 역시 심리불속행으로 재항고를 기각했습니다.
이에 A사 측은 "항소이유서 제출 제도는 실질적으로 다툴 의지가 없는 항소를 조기에 정리하고 항소심 쟁점을 조속히 정리하기 위해 도입된 제도"라며 "법원의 결정 전에 항소이유서를 제출했음에도 항소각하 결정한 것은 재판청구권과 평등권을 침해한 것"이라고 주장, 지난 3월 재판소원을 청구했습니다.
다른 사건 역시 상황이 비슷합니다. B학교법인은 교원 보수규정을 성과급 연봉제로 변경했다가 소속 교원들에게 보수 차액 지급 소송을 당했고, 1심 패소 뒤 항소했습니다. 하지만 항소이유서를 제출 기한이 지난 뒤 냈다는 이유로 항소가 각하됐고, 대법원도 심리불속행으로 재항고를 기각했습니다. B학교법인 역시 “법원 결정 전에 이미 항소이유서를 제출했는데도 본안 심리 기회 자체를 박탈당했다”며 재판소원을 청구했습니다.
핵심 쟁점은 법정기한 안에 항소이유서를 제출하지 못했더라도, 법원이 항소를 각하하기 전에 이미 항소이유서가 제출됐다면 본안 심리를 해야 하는지 여부입니다.
쟁점이 된 조항은 지난해 신설된 민사소송법 제402조의2(항소이유서의 제출)와 제402조의3(항소이유서 미제출에 따른 항소각하 결정) 등입니다. 이 조항들은 항소인이 항소기록 접수통지를 받은 날부터 40일 안에 항소이유서를 제출하도록 하고, 기한 내 제출하지 않을 경우 항소법원이 원칙적으로 항소를 각하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법조계에선 이번 사건의 핵심이 단순한 절차 위반 문제가 아니라, 절차 준수를 이유로 재판 기회 자체를 제한하는 것이 헌법상 재판청구권을 과도하게 침해하는지 여부에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헌법 제27조는 "모든 국민은 헌법과 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하여 법률에 의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했습니다.
지난 3월24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민원실에 재판소원 제도 관련 안내문이 놓여 있다. (사진=뉴시스)
현재 헌재 전원재판부에는 해당 조항들의 위헌 여부를 다투는 위헌소원 사건 2건도 계류 중입니다.
특히 대법원은 이미 1998년 인지보정 사건에서 "보정기간이 지났더라도 각하 재판 전에 보정이 이뤄졌다면 소장을 각하해서는 안 된다"고 판단한 바 있습니다. 법조계에서는 이번 사건 역시 항소각하 결정 전에 항소이유서가 제출됐다는 점에서, 절차보다 실질적인 권리구제를 우선한 기존 판례 취지와 충돌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옵니다.
헌법연구관 출신인 한 변호사는 "법원이 현행 민사소송법 규정에 따라 항소를 각하한 만큼 절차 자체에 위법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면서도 "항소이유서 제출 기한인 40일이 당사자에게 지나치게 짧은 것은 아닌지, 정당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도 일률적으로 각하하는 방식이 재판받을 권리를 과도하게 제한하는 것은 아닌지 헌재가 살펴보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박용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사법센터 소장은 "법원이 획일적인 절차 판단에만 머물 것이 아니라, 당사자의 재판받을 권리가 과도하게 제한되지 않았는지도 함께 살펴봐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반영된 것으로 읽힌다"고 말했습니다.
신다인 기자 shin123@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