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신수정 기자] 신용카드와 캐피탈 등 여신금융업권의 환경·사회·지배구조(ESG) 채권 발행이 올해 들어 급격히 위축되고 있습니다. 금리 안정과 조달 여건 개선으로 발행 유인이 약해졌기 때문인데요. 정부의 상생금융 확재 기조에 맞춰 ESG 채권 발행을 확대하겠다는 당초 선언과 달리 저비용 조달 수단으로 활용되는 것이라는 지적이 나옵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올 들어 ESG채권 카드사 3곳
13일 한국거래소(KRX)에 따르면 지난 10일 기준 올해 ESG 채권을 발행한 카드사는 우리카드와 하나카드 두 곳에 불과합니다. 이마저도 우리카드는 외화(USD)로 발행한 것이라 원화 ESG 채권을 발행한 곳은 사실상 하나카드 한 곳에 그칩니다.
발행내역을 살펴보면 우리카드는 지난 3월 미화 5000만달러(한화 약 700억원) 규모 사회적 채권을, 하나카드는 지난 4월 1600억원 규모 녹색채권을 각각 발행했습니다. 지난해엔 우리·삼성·하나카드 등 3개사가 6700억원 규모를 발행한 것을 감안하면 상반기가 지나지 않았다는 점을 고려해도 발행 규모가 위축됐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캐피탈업권에서 ESG 채권을 발행한 기관 역시 우리금융캐피탈 한 곳에 그쳤습니다. 우리금융캐피탈은 지난 4일 1300억원 규모의 녹색채권을 발행해 유일하게 연초 스타트를 끊었습니다.
지난 2019년부터 이달까지 채권 발행 이력이 있는 국내 캐피탈 17곳의 ESG 채권 누적 발행금액은 총 6조1570억원으로 카드업권과 비슷한 규모입니다. 다만 캐피탈도 올 들어 5월까지 발행 규모는 1300억원에 불과합니다.
특정 회사 쏠림 현상
ESG 채권 시장에서 특정 회사 중심의 쏠림 현상이 갈수록 뚜렷해지고 있습니다. 우리카드는 누적 발행액 2조5100억원으로 전체 카드업권 ESG 채권 시장의 39%를 차지했습니다. 발행 건수도 47건으로 2위 삼성카드(22건)의 두 배를 웃돌았습니다. 우리카드가 시장 확대를 주도해왔다는 평가가 나오는 배경입니다.
지난해엔 삼성카드(+133%), KB국민카드(+88%), 하나카드(+68%)가 전년 대비 공격적으로 발행을 늘렸고, 우리카드도 13% 증가한 8700억원으로 최대 규모를 기록했습니다. 반면 현대카드는 7100억원에서 3000억원으로 58% 급감했고, 신한카드는 2024년 1500억원 발행 이후 지난해에는 발행 실적이 전무했습니다.
캐피탈업권에서도 현대캐피탈이 누적 2조3800억원으로 전체 시장의 38.7%를 차지하며 압도적인 선도 위치에 있습니다. 현대캐피탈에 뒤이어 우리금융캐피탈은 7000억원에서 2조4000억원으로 243% 급증했고, IBK캐피탈과 산은캐피탈도 지난해 처음 대규모 발행에 나섰습니다. 반면, JB우리캐피탈은 11% 감소했고 BNK캐피탈은 제자리 수준에 머물렀습니다.
지속가능연계채권 성장세 더뎌
ESG 채권은 환경·사회·지배구조 개선 관련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발행하는 채권으로 자금 사용 목적에 따라 △녹색채권(그린본드) △사회적채권(소셜본드) △지속가능채권 △지속가능연계채권 등으로 구분됩니다.
ESG 채권 중에서도 지속가능연계채권(SLB)의 성장세가 상대적으로 더디다는 공통점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카드업권은 녹색채권과 사회적채권이 빠르게 성장한 반면 지속가능채권이 위축 흐름을 보였습니다. 지속가능채권은 2021년 1500억원을 정점으로 3년 연속 감소했고, 2024년에는 단 한 건도 발행되지 않았습니다. 이후 지난해 들어 2000억원 규모로 발행이 재개됐지만, 시장 회복세는 제한적이라는 평가입니다.
캐피탈업권에서도 지속가능채권은 2021년 2조7000억원을 기록한 이후 등락을 반복하다 지난해 4조2000억원 수준으로 회복됐습니다. 카드사에는 없는 지속가능연계채권(SLB)이 2023년 처음 등장해 지난해 2조원 규모까지 성장했다는 점에서 기대감도 나오지만, 발행 주체는 선제적으로 나선 현대캐피탈(누적 3조7000억원) 한 곳뿐이란 한계를 동시에 보여주고 있습니다.
SLB는 발행사가 사전에 설정한 ESG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금리가 상승하는 구조인데요. 일반 ESG 채권보다 사후 이행 책임이 강한 상품입니다. 업계에서는 국내 금융권 전반적으로 SLB 확산 속도가 더딘 점을 두고 인지도의 영향도 있겠지만, ESG 경영에 대한 실질적 책임 부담을 여전히 꺼리는 분위기가 반영된 결과라는 해석도 나옵니다.
기준금리 인상과 여전채 시장금리 급증 시기에 일반 회사채 대비 낮은 금리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ESG 채권은 최근 같은 금리 안정기에는 김치본드 등 저금리 조달 수단에 밀려 발행량이 줄어드는 경향을 보입니다. 이처럼 시장 상황에 따라 발행 여부가 좌우되는 조달 수단으로 활용될 경우 상생금융이라는 본래 취지가 약화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업계 안팎에서는 최근 ESG채권 발행 위축 흐름이 오히려 금융사의 상생금융 진정성을 가늠할 시험대가 될 수 있다는 시각도 더해집니다. 금융권 관계자는 "ESG 채권은 자금 운용의 결과까지 평가받아야 하는 특성을 지닌다"며 "그린워싱이 논란이 됐던 것처럼, 상생금융의 진정성 여부도 결국 사후적으로 판가름나게 될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한국거래소 ESG 채권 공시 홈페이지 캡처 화면. (사진=한국거래소 홈페이지)
신수정 기자 newcrystal@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의중 금융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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