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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태곤의 분석과 전망)정치적 흐름은 전염성이 강하다
2019-11-11 06:00:00 2019-11-11 06:00:00
정치적 흐름은 전염성이 강하다. 나쁜 흐름의 전염은 익숙하다. 막말은 막말을 불러일으키고, 결집은 역결집을 부르기 마련이다. 변하지 않고 싶은 사람들은 혹시 상대가 변할까봐 노심초사하고 상대가 변하지 않으면 안심한다.
 
물론 좋은 흐름도 전염된다. 상대가 정책을 들고 나오면 나도 정책으로 맞서야 한다. 왼쪽 사람들이 중도층을 공략하고 들어오면 오른쪽에 있는 사람들도 중원으로 뛰어들어야 한다. 혁신에는 혁신으로 맞서는 수밖에 없다.
 
악순환이든 선순환이든 한번 고리가 형성되면 관성이 붙는다. 통상 선거를 앞두고 변화의 모멘텀이 생긴다. 변하지 않으면, 변하는 척이라도 하지 않으면 정당이든 후보든 심판받기 때문이다.
 
최근 정치권을 보면 본격적 변화는 아니라도 변화의 조짐 정도는 보이고 있다. 전염성이 눈에 띈다.
 
조국 전 장관 사태 이후 표창원, 이철희 두 여당 초선 의원의 불출마 선언이 시작이었다. "법사위는 하루 하루가 지옥이었다"는 고백과 "내로남불을 견디기 힘들었다"는 자책 "젊은 사람들이 더 많이 국회에 들어와야 한다"는 제언이 여럿의 입에서 쏟아졌다. 주로 초선들이었다.
 
청와대와 민주당 지도부에 직접 화살이 날아가지는 않았지만 “화살이 날아갈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는 많았다.
 
그리고 민주당이 총선기획단을 발족시켰다. 여성, 청년의 배치가 두드러졌고 입바른 초선들도 눈에 띄었다. 단장을 제외하곤 중진이라 할 사람은 없었다.
 
"어차피 선대위 출범 전까지 한시적 기구인데 의미를 크게 부여하는 것 자체가 포장일 뿐이다"거나 "대표 책임론을 피하기 위한 기획이다"는 뒷말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쇼면 어떠냐? 이런 쇼는 환영이다"는 반응이 지배적이었다.
 
이 움직임은 야당에게 전염됐다. 조국 정국에서 거둔 반사이익을 고스란히 반납하는데 그치지 않고 인재영입 헛발질로 이자까지 토해낸 황교안 대표는 보수 통합 추진을 선언하면서 "빅텐트의 대표를 맡을 생각은 없다"고 공언했다.
 
한국당 초선 의원들은 토론을 했고, 성명을 냈다. 이들은 여당에 대한 거친 공격 대신 "철저한 자기반성을 통해 스스로 기득권을 내려놓는 아름다운 자기희생에 앞장서야 한다. 그 흐름의 물꼬를 트기 위해 누군가의 헌신과 용기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중진들을 압박했다. 그러면서 "우리 모두의 희생이 필요하다면 초선 의원들도 주저하지 않고 동참하겠다"고 다짐했다.
 
이른바 친박계 초재선도 별도 성명을 통해 탄핵 등 과거에 대한 책임공방이 보수 통합의 걸림돌이 되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급하긴 급했나 싶긴 하지만 어쨌든 간에 정치권의 언어가 바뀌고 있다. 쟁취, 투쟁, 심판, 척결 같은 단어들이 춤추던 자리에 변화, 혁신, 통합, 희생 같은 단어들의 빈도가 높아지고 있다.
 
조국 국면의 좋은 나비효과다. 한국당의 반사이익이 민주당을 자극했고 초선들의 외침이 총선 기획단 구성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민주당의 위기의식이 한국당으로 전염됐고 역시 초선들이 먼저 움직였다. 대표들은 움직이는 '척'은 했다.
 
하지만 이 흐름은 아직은 약하다. 언제라도 사그라들 수 있다. 사그라들기를 바라는 사람들도 많다. 양당 중진들이 그렇다. 상대 당 초선들의 움직임에 중진들이 호응해 불출마나 험지 출마를 선언하는 순간 그 흐름이 곧바로 자신들에게 전염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이다. 상대가 변치 않을 것을 믿지만 불안하기 짝이 없다.
 
이 신뢰 동맹은 깨지는 순간 변화와 혁신의 전염성이 극대화되고 선순환이 관성을 타게 될 것이다. 퍼스트 펭귄, 혹은 배신자의 출연을 기대해 마지않는다.
 
윤태곤 더모아 정치분석실장(taegonyou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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