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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감형 판결 열받네”…시민단체 집단소송제·징벌제 촉구
“기업 책임성 강화 입법은 당연”
2020-09-28 15:48:56 2020-09-28 15:55:44
[뉴스토마토 이재영 기자]주요 시민단체들이 근래 기업 경제사범에 대한 감형 판결에 불만을 표하며 집단소송제와 징벌적손해배상제 입법을 촉구했다. 이들 판결이 기업 범죄예방 준법취지를 떨어뜨리고 이사회를 무력화하는 것이라며 근본적인 대책 입법을 요구한 것이다.
 
경제개혁연대는 28일 지난 17일 있었던 4대강사업 담합 등으로 발생한 과징금 손해에 대한 주주대표소송 1심 판결에 대해 항소를 제기했다고 밝혔다. 대우건설은 20094대강 담합행위로 446억여원 과징금을 부과받았는데 이에 대해 경제개혁연대와 소액주주들이 서종욱, 박삼구 전 대표이사를 비롯해 당시 사내외이사 10명에 대해 주주대표소송을 제기한 건이다.
 
1심 판결은 여러 담합 사건 중 4대강 사업에 대해서만 법령 위반 책임을 인정했고 여러 이사 중 서종욱 전 대표이사에 대해서만 배상책임이 있다고 판단했다. 서 전 대표이사에게는 과징금 손해액 중 5%(48000여만원)를 배상토록 했다. 이에 원고 측은 사실상 책임을 덜어준 판결이라며 비판했다.
 
1심 판결은 민간 사업자로 구성된 컨소시엄이 있었고 발주방식이나 입찰공고 자체가 담합 빌미를 제공했다고 봤다. 원고 측은 그러나 정부가 무리하게 사업을 추진했다고 하더라도 담합이 정당화되거나 참작할 사유가 안 된다고 반발했다. 서 전 대표에 대해서도 전체 손해 95% 감경은 타당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결국 1심 판결은 담합으로 회사와 주주가 입은 피해회복은 뒷전으로 미루고 중대 경제범죄를 저지른 이사 책임만 대폭 완화해줬다는 지적이다. 또 이로 인해 이사 감시·감독 의무 수행을 통한 회사 및 주주 이익 보전 상법 취지는 무색해진다고 평가했다.
 
1심 판결은 또 4대강 사업 이외 나머지 담합에 대해 사내외이사인 피고들이 담합 관련 위법행위에 직접 참여했다는 증거가 부족하고 회사에서 담합이 일어나고 있음을 인식했다고 볼 증거도 없다고 판단했다. 원고는 이런 판결에 대해 증거확보 수단이 부족한 사건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지나치게 과도한 입증을 요구했다고 비판했다. 아울러 대표이사가 아니라면 사건에서 문제가 된 대규모 공사계약에 관한 최종의사결정을 누가 내릴 것인지, 또 이사회가 아니라면 건설사의 고질적 담합을 누가 감시·감독할 수 있다는 말인지 반문했다. 이런 판결에 따라 이사회 구성원은 회사 경영활동에 대해 어떠한 정보도 얻지 않고 관심도 갖지 않는 게 현명할 것이라고 꼬집기도 했다.
 
참여연대는 지난 1월 이중근 부영그룹 회장 항소심에서 그룹이 준법감시실을 만든 점이 참작돼 1심 선고 징역 5년 판결이 징역 26개월로 감경된 것을 문제로 본다. 이와 관련 최정학 한국봉송통신대학교 법학과 교수의 판결 비평을 최근 소개했다. 최 교수는 미국 연방조직 양형 가이드라인에서 컴플라이언스 및 윤리 프로그램 존재 이유로 한 책임점수 감점 예외규정을 들었다. 규정은 범죄가 발생한 부서 고위임원 혹은 프로그램 운영 책임자가 범죄행위에 가담했거나 묵인한 경우 감점사유가 적용되지 않도록 했다. 미국에서라면 이 규정만으로 감형대상에서 제외된다는 설명이다. 또 최 교수는 범죄행위 후에 이런 사유를 만들어 감형받게 되면 범죄 사전예방이라는 준법감시제도 취지에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이중근 회장에 대한 판결은 이재용 삼성 부회장의 뇌물공여사건 파기환송심 판시 내용과 유사해 관심을 끌고 있다. 이재용 부회장도 비슷한 참작 사유로 감형될 수 있다는 관측에서다.
 
경제개혁연대는 이처럼 기업 책임성을 약화시키는 판결들에 반해 최근 법무부가 입법예고한 집단소송제와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지지했다. 재계가 주장하는 남소 우려에 대해서는 집단소송 제기 시 인지대 상한액 5000만원이 필요하고 신문 공고 비용까지 막대한 비용이 든다며 무조건 제기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원고 대리인 변호사가 성공보수를 받기 전까지 소송 비용을 대는데 패소 시 상환받지 못할 뿐만 아니라 수년간 소송에 투입한 시간을 낭비하는 등 위험부담이 크다는 얘기다. 참여연대도 대규모로 발생하는 소비자피해를 효율적으로 구제하고 고의 중과실로 인한 기업 위법행위가 재발하지 않도록 집단소송제와 징벌손배제를 하루 빨리 도입해야 한다고 법무부를 거들었다.
 
이재영 기자 leealive@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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