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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발생 9년, '가습기 참사'는 아직 진행 중
책임자들 형사공판 지지부진…'허위표시 방관' 조사도 제자리
2020-07-31 02:00:00 2020-07-31 16:26:03
[뉴스토마토 왕해나 기자] 가습기 살균제 참사가 세상에 알려진 지 9년이 지났지만 가해자 처벌과 피해자 보상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그 동안 건강피해 인정 범위가 넓어지고 화학물질관리법 등이 시행되긴 했지만 피해자 구제와 재발방지책 마련까지는 갈 길이 멀다는 지적이다.
 
30일 환경부와 참여연대 등에 따르면 지난 24일 기준으로 6823명이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건강피해를 신고했고 이 중 사망한 사람은 1553명에 달한다. 하지만 이 수치는 신고자로 극히 한정돼 있다. 사회적참사 특별조사위원회(사참위)는 1994년부터 2011년까지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한 사람은 약 627만명이며 이 중 건강 피해를 경험한 사람도 67만여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했다.
 
가습기살균제 피해자와 가족들이 지난 7월3일 정부세종청사 앞에서 환경부 항의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피해를 인정받은 이들은 더욱 적다. 대부분은 자신들이 가습기 살균제로 피해를 입었는지도 알지 못하며 신고를 하더라도 인과관계를 인정받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2016년 11월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하다 숨지거나 다친 피해자들에게 제조업체가 적게는 1000만~1억원의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는 첫 법원 판결이 나온 이후로 피해자들의 승소 사례는 지속하고 있다. 이 역시 제품 사용으로 사망이나 심각한 질병에 이른 1, 2등급 피해자들 위주이고 상대적으로 피해가 경미한 3등급 피해자는 지난해 9월에야 처음으로 승소, 500만원을 배상받았다. 
 
피해사실 입증 책임이 피해자들에게 있는 점, 가습기 살균제 제조업체들에 대한 형사재판이 아직 진행 중인 점 들이 피해구제를 더디게 하고 있다. 지난 2016년 가습기 살균제 피해에 관한 1차 수사 당시 기소된 옥시와 롯데마트·홈플러스의 경우에는 재판이 마무리됐다. 2018년 대법원은 독성화학물질인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을 넣은 가습기 살균제를 제조·판매한 혐의를 받은 신현우 전 옥시레킷벤키저 대표에게 징역 6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검증 절차를 제대로 거치지 않은 채 유독물질이 함유된 가습기 살균제를 판매한 혐의 등을 받은 조병용 전 롯데마트 대표에게는 금고 3년을, 김원희 전 홈플러스 그로서리매입본부장에 대해서는 징역 4년을 확정했다. 검찰이 가습기살균제 피해 사건 수사를 시작하자 별도의 대응 태스크포스(TF)를 꾸려 조직적인 증거인멸을 지시한 고광현 전 애경산업 대표에게도 징역 2년6개월이 선고됐다.
 
처벌을 피한 이들도 있었다. 존 리 전 옥시 대표는 주의의무 위반 혐의에 대해 검찰의 입증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최종 무죄를 선고받았다. 가습기살균제 제조·판매사로부터 수백만원을 받고 환경부 내부자료를 넘긴 공무원은 1심에서 집행유예를 받고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2018년 2차 수사 때 기소된 SK케미칼과 애경산업의 임직원들에 대해서는 아직 1심이 진행 중이다. 이들은 피해 발생 당시 책임자들로서 사회적 책임을 통감한다고 하면서도 양사가 제조·판매한 가습기살균제 원료의 유해성이 입증되지 않았고 피해자들의 건강피해와 인과관계도 확인되지 않았다며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지난 9년 동안 정부와 국회는 가습기살균제피해구제법을 통과시켜 피해자 구제 범위를 넓혔고 화학물질등록및평가등에관한법과 화학물질관리법을 시행해 화학물질 안전기준을 높였다. 그러나 여전히 수많은 피해자들이 구제 받지 못한 채 남아있다. 장동엽  참여연대 선임간사는 "애경과 SK케미칼은 아직 피해자들에게 사과도 하지 않았다"면서 "코로나19와 일본 무역규제 등을 이유로 화학물질관리법 등에 대한 규제들을 일시적으로 완화해달라고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와 같은 사태의 재발을 막기 위해 지속적으로 주장해온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징벌적보상제도, 피해자 집단소송제도 등도 아직 논의 단계"라고 덧붙였다. 
 
해소되지 않은 의혹들도 남아있다. 2011년부터 관련 질병이 발생했지만 검찰은 왜 2016년이 돼서야 피고기업들이 기소했는지, 공정거래위원회는 피고기업들의 '인체무해, 쾌적한 실내환경' 표시와 관련해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았는지 등이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소속 송기호 변호사는 "공정위는 피고기업에 허위 기망 표시에 대한 법률조항을 묻지 않았고 헌법재판소에 부실조사를 지적한 사참위 의견에 대해서도 타당하지 않다고 주장하고 있다"면서 "일차적인 원인인 허위 표시를 방관해 참사를 초래한 책임을 지고 면죄부 조치를 사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왕해나 기자 haena0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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