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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기태의 경제편편)한진은 삼성 흉내내나
2019-01-16 07:00:00 2019-01-16 07:00:00
지난 2004년 참여연대는 삼성을 향해 놀라운 일격을 가했다. 당시 삼성에버랜드가 보유하고 있던 자산 가운데 삼성생명 주식의 비중이 50%를 넘는다는 것이었다. 이 때문에 삼성에버랜드는 ‘금융지주회사’이고, 따라서 금융감독위원회로부터 인가를 받아야 하지만 받지 않았다는 주장이었다. 
 
실제 삼성에버랜드의 2003년말 삼성에버랜드의 자산총액은 3조1749억원이었고, 삼성생명 주식의 평가액은 1조7377억원이었다. 삼성생명 주식의 비중이 삼성에버랜드 자산총액의 55%를 차지했던 것이다. 당시 공정거래법상에 따르면 자산총액 1000억원 이상 기업의 총자산에서 금융사 주식의 비중이 50%를 넘을 경우 ‘금융지주회사’로 분류된다. 따라서 금융감독위원회의 인가를 받아야 한다. 금융지주회사에게 적용되는 규제도 받아야 한다. 이를테면 금융지주회사의 산하 금융사는 비금융사의 지분을 보유할 수 없다. 
 
이 규정대로 하면 삼성생명은 삼성에버랜드의 산하 금융사라는 ‘신분’을 갖게 된다. 따라서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지분을 모두 팔아야 한다. 당시 삼성에버랜드→삼성생명→삼성전자로 이어지는 삼성그룹 지배구조가 일거에 무너짐을 의미했다. 삼성에게는 곤란한 일이었다. 
 
참여연대는 당시 삼성에버랜드가 이런 법규를 지키지 않았으니 금융감독위원회가 검찰에 고발하라고 다그쳤다. 그렇지만 금융당국은 움직이지 않았다. 
 
삼성으로서는 몹시 ‘억울’한 일이기도 했다. 삼성생명의 지분 비중이 그렇게 높아진 것은 단지 삼성생명의 실적이 좋아졌기에 기업가치가 상승해서 빚어진 우발적 결과였을 뿐이었다. 그렇지만 그대로 가만히 있을 수도 없었다.
 
따라서 삼성은 여러 가지 묘안을 짜냈다. 삼성생명이 보유하던 삼성생명 지분 19.34% 가운데 6%를 은행 신탁에 맡기기도 했다. 그렇지만 무의미한 짓이었다. 그러자 삼성은 단기자금을 조달해 자산총액을 늘리기도 했다. 이 역시 삼성생명의 지분가치가 더 오르는 바람에 ‘실패’로 끝났다. 삼성은 결국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삼성생명과 삼성에버랜드의 등기이사를 내놓고, 삼성생명 지분에 대한 평가방법을 지분법에서 원가법으로 바꾸는 방식으로 ‘해결’했다. 사실은 ‘꼼수’에 가까웠지만, 당국은 사실상 묵인했다.      
 
최근 한진그룹의 경우를 보면 15년 전 삼성의 경우가 떠오른다. 행동주의 펀드 KCGI(일명 강성부 펀드)가 지난해말 한진칼 지분율을 10.81%까지 끌어올리며 조양호 회장의 경영권에 ‘도전’하고 나섰다. 한진칼은 대한항공 지분 29%, 한진 지분 22%, 진에어 지분 60%를 보유하고 있는 사실상의 한진그룹 지주회사이다. 조양호 회장 자신의 지분과 우호지분을 합치면 모두 28.93%에 이른다. 
 
이를 바탕으로 조양호 회장은 지금까지 평온하게 경영권을 향수해 왔다. 하지만 이제 평온한 시절은 끝나고 제2대주주로 올라선 강성부펀드의 요구를 들어야 한다. 강성부펀드가 우호지분을 규합해 감사직에 도전할 것이라는 관측도 무성하다. 그러자 한진칼은 단기차입금 1600억원을 늘려 자산을 2조원 대로 불려놓았다. 
 
현행 상법에 따르면 상임감사를 선임할 때 개별주주의 의결권은 각각 3%로 제한된다. 아무리 대주주라도 지분만큼 권한을 행사할 수 없다. 그렇지만 자산 2조원을 넘는 상장회사에 설치되는 감사위원회에는 의결권 제한이 없어 대주주 마음대로 할 수 있다. 한진칼이 단기차입금을 조달한 것은 바로 이 점을 노린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과거 삼성그룹이 사용한 수법과 흡사하다.   
 
그 결과 한진그룹이 감사직 선임권을 지키기 위한 방어벽을 쌓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최종적인 성공여부는 아직 판단하기 어렵다. 정직하다고 하기는 더욱 어렵다. 
 
그런 방법이 꼼수라는 인상이 확산되면 더 곤란해질 수도 있다. 8%가량의 지분을 가진 국민연금을 비롯해 국내외 다른 투자자들이 등을 돌릴지도 모른다. 국민연금을 비롯한 기관투자자들은 최근 ‘스튜어드십코드’를 도입하는 등 주주권 행사를 적극 확대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무엇보다도 지금의 시대가 이를 요구하고 있다. 
 
그러므로 오는 3월 열리는 주주총회에서 한진그룹의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 그래서인지 한진칼도 단기자금 차입에 대한 외부의 관측을 거듭 부인하고 있다. 어쨌든 한진을 둘러싼 포위망은 시시각각 좁혀지고 있다. 과연 한진그룹은 포위망을 탈출할 수 있을까? 탈출한다면 어떻게? 투자자와 국민으로부터 공감을 얻을 수 있는 보다 근본적인 해법을 찾아보는 것이 현명하지 않을까? 
 
차기태 언론인(folium@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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