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토칼럼)도광양회
2026-05-22 06:00:00 2026-05-22 06:00:00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연이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만났다. 복잡한 국제 정세 속 '글로벌 패권'의 상징과도 같은 지도자들이 연쇄 회동에 나서면서 세간의 시선은 중국으로 향했다. 코로나19 팬데믹을 전후로 잠시 주춤하는 듯한 중국의 '대국 굴기'가 다시금 기지개를 펴는 듯한 모양새였다.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의 정상회담은 이란 전쟁으로 개최 시기가 다소 늦춰지면서 더 큰 관심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첫 중국 방문이자 8년6개월 만의 중국행이라는 의미 자체도 컸지만, 예상치 못한 장기전 국면으로 돌입한 이란 전쟁의 출구를 찾을 수 있을 지에 대한 기대가 모아졌기 때문이다. 
 
미중 정상회담 날짜가 다시 설정된 이후 중국의 준비는 차분하고 냉정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연일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트루스소셜과 여러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중동 정세에 대해 전혀 일관성이 없는 내용들을 쏟아내는 사이 중국은 자신들의 안방으로 주요국 정상들을 불러들였다. 중국의 우방국으로 꼽히는 남미와 아프리카, 동남아 국가들은 물론 스페인, 독일, 영국 등 유럽 국가들도 자신 편에 세웠다. 
 
동시에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UAE) 등 중동 국가와도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파키스탄의 중재 뒤에 중국이 있다는 점은 트럼프 대통령의 입을 통해서도 확인됐다. 이란 외무장관의 중국 방문은 화룡점정이었다. 
 
한 달여 기간 동안 중국은 "중동 지역의 무력 충돌에 반대한다. 호르무즈 해협과 중동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촉구한다. 조속한 평화 회담을 개최해야 하다" 정도의 원론적 입장을 내보여왔지만 물밑에서는 치열한 외교전을 펼쳐온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국빈 방문이란 본무대는 그간 중국이 차곡차곡 모아온 패를 단번에 공개하는 자리가 됐다. 중국의 영향력이 가감 없이 드러났다. 양자 회담 모두발언에서 '투키디데스의 함정'을 거론하며 중국이 '신흥 대국' 반열에 올랐음을 공식화 한 시진핑 주석은 트럼프 면전에서 대만 문제에도 개입하지 말 것을 경고했다. 또한 이란 문제 논의를 강조한 백악관과 달리 중국 정부의 공식 발표에서는 '이란'이라는 글자가 보이지 않았다. '중동 문제'라는 네 글자로 러·우 전쟁, 한반도 문제와 동등하게 다뤄졌다. 
 
중국의 외교전은 푸틴 대통령의 방문으로 완성됐다. 한 달 내에 미국과 러시아 정상이 국빈 방문을 하는 유례가 없던 상황은 자연스레 두 정상에 대한 예우를 비교하게 했다. 
 
국가 부주석이란 직함을 갖고 있지만 당내 서열로는 8위에 불과한 한정 부주석이 트럼프 대통령을 맞이한 것과 달리, 푸틴 대통령은 왕이 외교부장이 영접했다. 왕 부장은 중국 공산당 정치국 일원이자 대외정책 최고 실권자다. 또한 푸틴 대통령과는 다극화 공동성명을 채택하고 공동 언론 브리핑도 가졌지만, 트럼프 대통령과의 양자회담은 서면 브리핑으로만 전해졌다. 미국 중심의 글로벌 패권주의에 도전하는 중국의 자신감이 묻어난 장면으로 평가된다. 
 
글로벌 빅 이벤트들을 치밀하게 준비해 온 중국을 지켜보면서 '도광양회'란 단어가 떠오를 수밖에 없었다. 도광양회는 '빛을 감추고 어둠 속에서 힘을 기른다'는 뜻으로 냉전 종식 이후 중국의 외교정책을 대변한다. 국력이 부족하다 싶을 때는 국제 무대에서 머리를 숙이고 내실을 다지는 데 집중하는 전략으로, 미국과의 정면 충돌을 피하면서 힘을 비축했다. 
 
이후 급격한 경제 성장으로 G2 반열에 오른 중국은 '유소작위'로 외교 전략을 수정했다. '필요한 역할은 적극적으로 한다'는 기치 아래 '대국 굴기'를 천명하고 국제사회에서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왔다. 
 
그러던 중 중국은 미국의 견제라는 암초를 만났다. 코로나19 팬데믹은 중국의 고립을 가속화시켰다. 자의반, 타의반 내실을 다질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도광양회란 외교적 DNA가 발현된 것이다. 
 
이를 바라보던 한 국제관계학 전문가는 혀를 내둘렀다. '우리나라 외교도 기존의 틀을 깨야 할 때가 왔다'고 개탄했다. 국가 위상은 달라졌는데, 여전히 외교의 수는 너무 얕다는 게 그의 걱정이었다. 
 
빛을 숨긴 채 때를 기다리든(도광양회), 필요한 제 목소리를 내든(유소작위) 결국 외교의 핵심은 국익을 극대화할 '치밀한 전략'과 '유연함'에 있다. 주변국들의 외교 DNA가 이토록 진화하는 정세 속에서, 우리 외교 역시 기존의 낡은 틀을 깨고 나와 매서운 현실을 직시해야 할 시점이다. 변화된 국가 위상에 걸맞게, 우리 외교의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재설계하기 위한 치열한 고민과 결단이 시급하다.
  
김진양 산업2부 팀장 jinyangkim@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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