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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그룹조정기능 상실…"터널에 갇힌 느낌이다"
2017-03-01 17:27:20 2017-03-01 17:43:21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해 12월6일 국회 청문회에서 미래전략실 해체를 약속했다. 사진/뉴시스
 
[뉴스토마토 이재영기자] 삼성이 미래전략실을 해체하고 계열사별 자율경영체제에 돌입했다. 그룹 조정기능이 상실돼 당분간 시행착오 등 각종 부작용과 혼란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다만, 미전실 해체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의심의 눈초리도 많다. 삼성의 그간 말 바꾸기와 컨트롤타워의 필요성 등을 감안할 때 전대미문의 현 체제는 '한시적'이라는 의견이다. 
 
삼성은 당장 미전실이 해왔던 인사, 채용, 경영진단 등의 공백을 각오해야 한다. 최순실 사태로 문제가 드러난 대관업무 조직도 해체키로 했다. 삼성 관계자는 1일 “미전실을 해체하는 대원칙만 있고 세부적인 방안에 대한 지침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며 "경영에 관한 모든 의사결정은 각 사별 대표이사와 이사회를 중심으로 이뤄진다"고 말했다. 
 
모든 게 안갯속이다 보니 두려움도 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창립 이래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대변혁"이라며 "새로운 체제가 정착되기까지 상당한 부작용과 혼란은 감수해야 할 부분"이라고 말했다. 한 계열사 사장은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터널과도 같다”는 심경을 전했다. 이건희 회장이 쓰러지고, 뒤를 이을 이재용 부회장은 구속됐다. 미전실마저 해체되면서 구심점이 사라졌다는 설명이다. 지시와 이행에 길들여진 각 사들로서는 답이 없는 느낌이다. 대규모 M&A 투자 등이 보류될 가능성이 커졌고, 건설, 플랜트 등 실적이 부진한 계열사들은 그룹 차원의 지원이 막히는 부담이 크다. 독자생존하기 위해 실적에만 집중하다 보면 앞날에 대한 투자 대신 비용절감 등 당장의 숫자에만 치우칠 수도 있다.
 
이를 우려해 삼성 내에서는 삼성전자 이사회 산하 사무국 설치 등 미전실 해체에 따른 대안을 내놨으나 이재용 부회장의 의지가 워낙 강해 좌절됐다는 후문이다. 한 고위관계자는 "그 어떤 대안도 꼼수로 비칠 수 있다는 게 이 부회장 생각"이라며 "일단 해체하고 모든 걸 새로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최순실 사태를 거치면서 선대회장 조직인 미전실 해체에 대한 필요성을 더욱 크게 절감한 것으로 전해졌다. 삼성이 수차례 재확인한 국회 청문회에서의 약속도 지켜야 한다. 이는 밑그림 없이 삼성을 새로운 체제로 내모는 실험이 됐다.
 
 
급박한 주요 현안에 대해서는 옥중경영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특히 안정에 방점을 찍고 현상유지에만 힘쓸 전문경영인의 특성을 고려하면 이 부회장의 재가가 필수적이다. SK가 '따로 또 같이 3.0'을 통해 최태원 회장의 공백을 메웠지만, 전문경영인의 단점만 부각시키면서 실패한 체제로 전락한 것도 '오너경영'에 익숙한 한국 기업문화의 독특한 관습 때문이란 평가가 많다. 더욱이 삼성의 경우 매주 수요일 열리던 사장단회의마저 폐지키로 했다. '의존'이 '자율'로 변화될 때까지 이 부회장의 인내가 길어질 수 있느냐도 시험 대상이다. 때문에 보석 등 이 부회장의 빠른 복귀만이 해답이라는 게 삼성의 속내다.
 
 
일각에선 그룹 해체를 의심하는 시각도 있다. 당장 삼성은 지주회사 전환 등 지배구조 개편 과제가 절실하다. 계열사간 인적분할, 합병 등 그룹 차원의 의사결정 없이는 어렵다. 지체되고 있는 인사만 해도 계열사간 인력 이동 등 사전조율이 필요하다. 전날 조남성 삼성SDI 사장이 사임하면서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장인 전영현 사장이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됐다. 삼성전자와의 조율 없이 삼성SDI 이사회 결정만으로 성립될 수 없는 인사다. 여기에다 삼성이 2008년 특검 때 전략기획실을 폐지했다가 2010년 미전실로 부활시킨 전력은 이런 의심을 부추긴다.
 
삼성전자, 삼성물산, 삼성생명 3개 회사가 동종 업종 계열사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할 것이란 전망이 제기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특히 이 부회장이 등기이사에 오른 삼성전자의 역할이 커질 것이란 관측이 높다. 종국에는 지주회사 체제 전환 후 자연스럽게 지주사가 컨트롤타워가 될 수 있다. 최종 지주사는 삼성물산이 유력하다. 경제개혁연대는 “미전실 해체가 액면 그대로 컨트롤타워 기능을 없애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는 없다”며 “이는 문제의 해결이 아니라 기존의 미전실 문제, 즉 법적 실체가 없기 때문에 권한과 책임이 괴리되는 문제가 반복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각 계열사 이사회가 자율 판단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며 “컨트롤타워 기능이 분산 배치될 것으로 예상되는 핵심 계열사에 외부주주가 추천한 독립적 사외이사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재영 기자 leealive@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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