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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태곤의 분석과 전망)국기문란 다음에는 국시(國是)훼손 나오나
2016-08-21 15:43:02 2016-08-21 15:43:02
우병우 민정수석에 관한 논란이 무성하게 가지를 치고 있다. 어쨌든 이석수 특별감찰관은 우 수석을 검찰에 수사의뢰했다. 그리고 다음날 청와대는 김성우 홍보수석이 직접 나서 “특별감찰관의 본분을 저버린 중대한 위법행위이고 묵과할 수 없는 국기를 흔드는 일”이라고 긴급히 입장을 발표했다. 우 수석의 문제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언급이 없었다.
 
흥미로운 것은 청와대 입장 발표 전날 새누리당이 “특별감찰의 활동 내역이 사전에 공개되는 것은 사실상 국가원수의 국정수행을 마비시킬 수 있는 국기문란 행위”라는 대변인 공식 논평을 내놓은 것이다. 그 직전 김재원 청와대 정무수석이 새누리당 지도부를 접촉한 것도 언론에 포착됐다. 찰떡같은 당청관계다.
 
그런데 청와대의 ‘국기문란’ 발언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2014년 12월 수석비서관 회의를 주재하면서 ‘정윤회 국정 농단’을 담은 청와대 문건이 유출된 사건에 대해 “찌라시에나 나오는 그런 얘기들에 나라가 흔들린다는 것은 정말 부끄러운 일”, “결코 있을 수 없는 국기문란 행위”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1년 9개월 여의 시차가 있지만 상당히 유사하다. 출발은 대통령의 측근으로부터 시작된 일인데, 대통령은 그 측근이 아니라 측근을 문제삼은 ‘워치독’들을 문제 삼는다. 게다가 그 일을 ‘국기문란’이라고 규정한다.
 
그런데 과연 ‘국기문란’이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 국기(國紀) 혹은 국기(國基)를 훼손했다는 뜻인 것 같긴 하다만. 전자는 국가가 유지되는데 필요한 법도와 질서, 즉 기강을 말하는 것이고 후자는 국가를 이루는 기초나 근본을 말한다.
 
지난 20일자 <동아일보>기명 칼럼은 청와대가 ‘국기(國紀)문란’이라고 했을 거라 가정하고 청와대에 죽비를 들었고 같은 날 <조선일보> 사설은 ‘국기(國基)문란’이라 가정하고 청와대를 비판했다.
 
사실 그게 무엇이든 황당하기 짝이 없기 마련이다.
 
예컨대 현 정부 첫 대변인이 첫 해외 순방에서 상상키 힘든 사고를 쳤을 때, 법무부 차관이 성접대 동영상 논란으로 사퇴했을 때, 제주지방검찰청 검사장이 공연음란 혐의로 옷을 벗었을 때, 그리고 지금 구속 중인 검사장이 수백억을 부당하게 꿀꺽한 정황이 드러났을 때, 최신 군함부터 사병들의 군복 심지어 대북확성기까지 빠지지 않고 ‘해먹는’ 방산비리가 터져도 청와대는 ‘국기(國紀)문란’을 언급하지 않았다.
 
만약 청와대와 새누리당이 ‘국기(國基)문란’이라 말했다면 더 황당한 일이다. 대통령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고, 백번 양보해서, 측근을 어려움에 빠뜨리는게 국가의 근본을 훼손하는 일인가?
 
적어도 ‘국기(國基)문란’이라면 자유민주주의 질서와 헌법정신을 훼손하는 수준은 되야 한다. 선거를 앞두고 북한에 도발을 청탁한다던가, 국가기관이 조직적으로 선거에 개입한다든가, 멀쩡한 공무원을 증거까지 조작해가며 간첩으로 몰아간다든가, 불법적 로비로 안보를 훼손해가며 높은 빌딩을 올린다던가, 노동자를 사찰해서 ‘결사’의 자유를 침해하는 등의 일 말이다.
 
그런데 어찌됐건 청와대나 여당한테서 더 이상은 ‘국기(國紀)문란’이나 ‘국기(國基)문란’ 같은 말은 듣고 싶지 않다. 일단 ‘국기(國紀)’가 됐건 ‘국기(國基)’가 됐건 눈에서 레이저광선 쏴서 지킬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리고 일반적 민주공화국에서, 우리 헌법 테두리 내에서 어떤 개인이나 기구도 ‘국기 해석권’을 위임받은 바 없다.
 
물론 아주 오래전엔 국기도 아니고 ‘국시(國是, 국민 전체가 지지하는 국가의 이념이나 국정의 근본 방침)’를 규정한 사람들도 있었지만 말이다.
 
“첫째, 반공을 國是(국시)의 제1義(의)로 삼고 지금까지 형식적이고 구호에만 그친 반공체제를 재정비 강화할 것입니다”, 1961년 5월 16일 새벽 ‘군사혁명위원회’가 발표한 ‘혁명공약’의 첫부분이다.
 
윤태곤 더모아 정치분석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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