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진희 기자] 전세사기 피해자의 보증금 회수를 돕기 위해 도입된 은행권 '할인배당'이 시행 약 5개월이 지났음에도 실제 집행은 한 자릿수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애초 적용할 수 있는 대상 자체가 제한적인 데다 수혜 범위를 넓힐 현실적인 방안도 마땅치 않아, 피해자 지원책으로서 역할이 제한적이라는 지적이 나옵니다.
애초부터 좁았던 대상…적용도 제한적
16일 <뉴스토마토> 취재를 종합하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 등 4대 은행이 전세사기 피해 주택을 대상으로 할인배당을 집행한 사례는 현재까지 한 자릿수에 그친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이마저도 A은행에서만 집행됐고, 나머지 세 은행에서는 집행 사례가 없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할인배당은 전세사기 피해 주택이 경·공매에 넘어갔을 때 선순위 채권자인 은행이 받을 배당금 일부를 포기해 후순위인 피해 임차인의 보증금 회수액을 늘려주는 방식입니다. 통상 은행이 선순위 근저당권자로 먼저 배당받고 남은 금액이 임차인에게 돌아가는데, 은행이 받을 몫을 줄여 피해자가 보증금의 일정 수준을 회수할 수 있도록 돕겠다는 취지입니다.
금융당국과 은행권은 지난 3월 할인배당 추진에 뜻을 모았습니다. 당시 국회에서 논의되던 전세사기 피해자 지원 방안 등을 고려해 피해자가 보증금의 3분의 1에서 절반가량을 회수할 수 있도록 은행이 배당을 양보하는 방안이 추진된 겁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4대 은행도 간담회 직후 잇따라 내부 의사결정을 마쳤습니다. 하나은행은 4월22일, 우리은행은 24일, 신한은행은 30일 각각 이사회를 열고 '은행권 공동 전세사기 할인배당 추진안'을 결의했습니다. 국민은행은 같은 달 이사회 안건으로 올렸다가 한 차례 보류한 뒤 28일 다시 상정해 가결했습니다.
은행이 정상적으로 회수할 수 있는 금액 일부를 포기하는 방식인 만큼 제도 도입 과정에서는 배임 가능성 등 법적 문제도 쟁점으로 거론됐는데요. 은행권은 법률 검토와 이사회 의결 등을 거쳐 관련 절차를 마련했지만 정작 제도 시행 이후 실제 적용 사례는 제한적이었습니다.
집행이 저조한 가장 큰 이유로는 애초 할인배당을 적용할 수 있는 채권 자체가 많지 않았다는 점이 꼽힙니다. 전세사기가 주로 발생한 빌라·오피스텔 등의 경우 은행보다 상호금융·저축은행 등 2금융권 대출이 얽힌 사례가 많지만, 정작 할인배당 논의와 실제 참여는 은행권을 중심으로 이뤄졌습니다.
은행권이 보유한 전세사기 관련 채권이라고 모두 할인배당으로 이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이미 부실채권으로 넘어간 경우가 있는 데다, 은행이 배당을 양보하지 않더라도 피해자가 경·공매 과정에서 이미 보증금의 일정 수준 이상을 돌려받을 수 있다면 추가로 배당액을 조정할 필요성이 떨어집니다. 여러 조건이 맞아야 하는 만큼 실제 할인배당이 작동할 수 있는 범위 자체가 좁은 셈입니다.
실제 B은행이 할인배당 대상으로 파악한 채권은 2건, 29억1000만원 규모에 불과했습니다. 은행권 전체를 놓고 봐도 제도 도입 당시 대상이 100건·100억원에 미치지 않는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한 은행 관계자는 "할인배당은 전세사기 피해자가 보증금의 절반 정도를 회수할 수 있도록 은행이 받을 배당을 조정하는 것"이라며 "지금까지 살펴본 결과 은행이 별도로 배당을 조정하지 않더라도 피해자가 보증금의 50% 이상을 회수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일부 배당을 포기해 회수액을 늘려줄 만한 사례가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2금융권 확대도 난항…'좁은 안전망' 한계
실제 할인배당 대상이 많지 않을 것이란 점은 당국도 제도 도입 당시부터 예상했던 부분입니다. 금융위 관계자는 "이미 부실채권으로 매각된 건들도 많았고, 은행권에서 해당 채권이 많지 않았다"며 "전세사기 피해자를 조금이라도 더 돕기 위해 상대적으로 여력이 있는 은행권이 자발적으로 힘을 보태자는 취지에서 추진된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문제는 적용 범위를 넓혀 피해자가 체감할 수 있는 지원책으로 확대하기도 쉽지 않다는 점입니다. 전세사기 관련 대출이 상대적으로 많은 상호금융·저축은행 등 2금융권까지 참여한다면 수혜 범위를 넓힐 수 있지만 당국은 참여를 강제하기는 어렵다는 입장입니다. 정상적으로 회수할 수 있는 채권 일부를 금융사가 자발적으로 포기하는 방식인 데다, 은행권과 비교해 손실을 감내할 여력이 상대적으로 크지 않다는 이유에서입니다.
금융위 관계자는 "2금융권까지 참여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있을 수 있지만 2금융권은 은행권에 비해 여력이 많지 않고 참여를 강제하기도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부연했습니다.
결국 할인배당 자체의 적용 범위를 넓히기 어려운 상황에서, 은행권의 관심은 제한된 대상 안에서라도 지원의 실효성을 어떻게 높일지로 옮겨 가는 모습입니다. 할인배당만으로는 전세사기 피해자 전반을 구제하기 어려운 만큼, 개별 피해자가 처한 상황에 맞춰 소액임차보증금 우선변제 등 다른 수단까지 함께 살펴 실질적인 지원을 돕는 방향으로 접근하고 있다는 설명입니다.
또 다른 은행 관계자는 "은행이 추가 지원을 할 수 있는 안전망을 마련했다는 데 의미가 있지 않겠냐"며 "단 한 명의 피해자라도 실제 주거 안정과 보증금 회수 혜택을 체감할 수 있도록 정밀 타깃형 구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고, 할인배당에 앞서 소액 임차보증금 등 법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는 부분이 있는지도 면밀하게 살펴보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금융위원회. (사진=금융위원회)
이진희 기자 ljh@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의중 금융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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