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성휘기자] 대표적인 크리스마스트리 ‘구상나무’(Abies koreana WILS.)의 원산지가 한국이라는 사실을 아는가? 지금으로부터 약 100여년 전 프랑스 선교사들에게 채집돼 유럽에 소개된 구상나무는 지금은 한국 전나무(Korean Fir)로 불리며 크리스마스 시즌마다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고 있다. 모양이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목재 재질도 훌륭해 가구재 및 건축재 등으로 애용된다. 서양에서 개량종만 100여개 가까이 나오면서 상품성도 인정받았다. 그러나 정작 원산지인 한국에서는 온난화 등을 이유로 멸종위기에 처해있다. 오히려 로열티를 주고 해외에서 수입하는 형편이다. 한국고유식물연구소는 국내에서 자생하고 있는 다양한 토종식물(고유식물)들의 잠재력에 주목해 지속가능한 이용모델 개발과 보존을 목표로 하는 산림형 사회적기업이다. 회사를 이끌고 있는 윤준 대표는 “우리나라에 유전은 없지만, 고유식물의 유전은 있다”고 강조한다. 윤 대표를 지난달 31일 경기도 수원 사무실에서 만나봤다.
1974년생인 윤준 한국고유식물연구소(이하 한고연) 대표는 경희대 조경학과를 졸업하고 쌍용엔지니어링과 동부건설에서 13년 동안 근무한 조경산업 분야에서 잔뼈가 굵은 베테랑이다.
윤준 한국고유식물연구소 대표가 작업 도중 앉아있는 모습이다. 사진/한고연
윤 대표는 “회사에 재직할 당시 아파트 단지 정원 등을 디자인하면서 조경소재(식물소재)의 고갈을 많이 느꼈다”면서 “대체소재 발굴을 위해 돌아다녔는데 그때 고유식물이라는 것을 알게 됐고, 그 가치와 잠재력에 눈을 뜨게 됐다”며 한고연 창업배경을 설명했다.
고유식물은 특정지역에만 분포하는 식물의 종으로 지리적으로 격리돼 있고 전파나 이동능력이 약한 식물을 뜻한다. 그러한 고유식물의 진정한 가치를 알려면 먼저 ‘나고야의정서’(Nagoya Protocol)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지난 2010년 국제연합기구(UN) 생물다양성협약 총회에서 채택돼 2014년 발효된 나고야의정서는 생물자원(동·식물, 미생물 포함)에 대한 각국의 주권적 권리를 인정하고, 어느 한 나라가 타국의 생물자원을 이용할 경우 발생이익 일부를 공유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비준여부와 관계없이 외국의 생물자원을 이용할 경우 강제효력이 발생한다. 생물자원뿐만 아니라 관련 전통지식도 보호대상에 포함된다. 현재 한국을 포함해 92개국이 의정서에 서명했다.
최근 각광받는 바이오·헬스케어 산업을 비롯해 농업, 원예 등 영향력이 미칠 범위가 무궁무진하다는 평가다. 자칫 잘못하면 ‘글로벌 소송전’에 휘말릴 위험성도 있다. 자국에 있는 생물자원 발굴과 정보 획득, 전통 자료 정리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진 이유다.
윤 대표는 “그 동안 선진국은 저개발국의 생물자원을 반출해 많은 이익을 얻었다. 우리나라의 생물자원도 이런 식으로 많이 유출됐다”면서 “나고야의정서가 발효된 상황에서 우리 고유식물이 본격적으로 상업화되면 국내뿐만 아니라 글로벌 경쟁력도 가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고유식물연구소가 2016 서울정원박람회에서 대상을 받은 고유원 ‘내남자의정원’의 모습이다. 사진/한고연
“고유식물의 지속가능한 모델…상업화로 보존해야”
한고연의 가장 큰 목표는 고유식물의 지속가능한 이용모델을 만들어 고유식물 보존을 돕는 일이다. 윤 대표는 “따로 보존만 하는 것은 사회적 비용만 소모된다”며 “고유식물을 상업화해 널리 보급하면 사람들이 많이 사용하게 되고 개체수도 자동적으로 늘어난다”고 말했다.
한고연은 크게 3가지 방향으로 지속가능 모델을 만들어가고 있다. 우선 고유식물을 사람들이 직접 체험할 수 있는 ‘고유원’ 브랜드를 보급하는 일이다. 대표적으로는 먹거리나 차, 약재, 방향, 방충 등의 기능을 가진 고유식물을 소재로한 정원 설계다. 공공기관이나 기업 등의 의뢰를 받아 건물 외부공간이나 유휴지 등에 조성하고 있다.
한고연은 매해 다양한 주제의 고유원을 경진대회에 출품해 높은 평가를 얻고 있다. 지난 2014년 ‘드림파크 국화축제’ 우수상, 2015년 ‘코리아가든쇼’ 국립수목원장상, 2016년 ‘서울정원박람회’ 대상 등을 수상해 실력을 인정받았다.
고유원 브랜드는 정원에만 그치지 않는다. 현재 개발 중인 상품은 ‘고유원 Mini’다. 사무실이나 집안에 둘 수 있는 환경정화용 화분으로 공기청정기와 자연가습기 역할을 한다. 벽면녹화를 활용한 수직정원 타입의 대형 제품도 개발 예정이다.
두 번째는 고유식물의 정보를 체계적으로 정리해 민간 사업을 보조하는 일이다. 한고연은 지난 2014년 ‘식물정보제공시스템’ 특허를 받았다. 식물정보데이터베이스 서버와 단말기를 통한 환경정보 및 사용자정보를 교환해 맞춤형 식물정보와 시장정보를 매칭하는 시스템이다. 또 2015년에는 경북 김천에 재배기술 연구를 위한 부설연구소도 설립했다.
마지막은 고유식물에 대한 대중의 인식을 넓히고 저변을 확대하는 일이다. 종종 심포지엄을 개최해 고유식물에 관심이 있는 전문가와 생산자들을 연결해 정보를 교류하고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다. 고사리(고유식물을 사랑하는 이들) 서포터즈 모집, 고유식물을 귀여운 캐릭터로 만든 ‘고유몬’ 제작 역시 그러한 노력의 일환이다.
윤 대표는 “환경부나 산림청 등 국가기관이 관련 정보를 정리해 데이터베이스화는 하고 있지만 가치의 발굴이나 상업화는 잘 안 되는 것 같다”며 “그러한 부분을 민간이 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한국고유식물연구소 사무실에 걸려있는 이끼(모스) 현판이다. 사진/한고연
“사회적기업가의 길, 경연대회로 뚫어라”
사업 시작이 쉽지만은 않았다. 윤 대표는 “창업을 준비하면서 주변에 자문을 구하니 ‘돈이 되겠나’, ‘국가가 할 일을 왜 네가 하나’라는 반응이었다”며 “아내의 반대도 컸다”고 회고했다.
그렇지만 윤 대표는 주변의 반대를 설득하면서 계획을 구체화했다. 그는 “나도 어려울 것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기다린다고 변하는 것은 없었다”며 “사회적으로 가치가 있고 아이들에게 자랑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 꿈이었다”고 말했다.
반전의 계기가 된 것은 2013년 11월 열린 ‘소셜벤처 경연대회’였다. 전국 3000여개 팀이 6개월간 경쟁한 대회에서 윤 대표는 ‘고유식물 보존 및 확대 플랫폼’으로 최우수상과 특별상을 받았다.
윤 대표는 “회사를 그만두고 매달렸다. 입상을 못하면 포기하고 재취업한다고 아내와 약속도 했다”며 “아내조차 설득을 못시키면 어떻게 이 사업을 하겠나라는 생각이 컸다”고 밝혔다.
그 후 윤 대표의 꿈은 차근차근 현실로 이뤄졌다. 2014년 2월 사회적기업가 육성사업에 선발돼 4월 정식 법인을 설립했다. 같은 해 10월 산림청 예비 사회적기업으로 지정됐고, 올해 9월 드디어 정식 사회적기업으로 인증됐다.
윤 대표는 “처음에는 1인 기업도 각오했지만 지금은 제 꿈에 공감해주는 회사 식구들이 6명이나 있다”며 “다른 회사로 가면 충분히 고액연봉을 받으실 수 있는 분들이 저와 뜻을 함께 해주고 있다”고 감사의 뜻을 밝혔다.
그는 현재 회사 상태를 “궤도에 올랐다기보다 시작한 단계”라고 진단했다. 그렇지만 “한고연이라는 회사와 고유식물에 대해 아는 분들이 점점 늘어나는 것에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윤 대표는 “지금은 정원브랜드 회사지만 일종의 연예기획사처럼 스타식물을 발굴·육성하는 식물기획사가 되고 싶다”며 “사람들이 고유식물을 아는 것을 넘어 평소에도 관심을 갖고 즐기게 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사회적기업을 하면서 특별히 힘든 것은 없고 행복하다는 윤 대표에게 비결을 물었다. 그는 “경제적 영리추구와 사회적 공익조화에 힘들어 하는 분들이 간혹 있지만, 그 두 개를 분리할 필요가 없는 방법을 찾으면 된다”고 말했다.
윤 대표는 “사회적기업가를 꿈꾼다면 혼자 고민하지 말고 창업 경연대회에 도전하라”며 “대회를 준비하면서 사업계획은 정교해진다. 입상을 하면 정부 지원도 있고, 주변에서 도와주는 분들이 늘어난다. 홍보도 자연스레 된다”면서 예비 창업자들에게 적극 도전을 추천했다.
이성휘 기자 noirciel@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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