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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성공에 중독된 그들, 유리 상자 속의 판·검사들
2016-09-12 06:00:00 2016-09-12 08:45:57
1997년 의정부지법 판사 출신 이순호 변호사가 전, 현직 판사 15명에게 금품과 ‘룸살롱 향응’을 제공하면서 사건을 싹쓸이한 것으로 드러나 사법사상 최초로 9명의 판사가 징계위에 회부되었고, 의정부지원 판사 전원이 교체됐다. 사건은 말 그대로 법조계의 재앙 그 자체였다. 그 후 대검찰청은 1998년 4월18일 법조비리에 대한 일제단속을 실시해 변호사 115명을 적발해 52명을 기소(불구속공판 10명, 구약식기소 42명)했다.
 
그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인 1999년, 대전지검 부장검사 출신 이종기 변호사의 사무장인 김현씨가 수임료 일부를 횡령했다가 해고되자 앙심을 품고 당시 현직에 있던 판검사들을 포함한 검찰과 법원 직원, 경찰관 등 300여명이 이 변호사에게 사건 수임을 알선하고 소개비를 받았으며, 검사 25명이 금품을 수수했다고 폭로했다. 검사장급 2명을 포함해 검사 6명의 사표를 수리하고 7명은 징계 조치하거나 인사상 불이익을 줬는데 대전지검 검사장을 역임한 심재륜 당시 대구고검장도 이 사건과 관련해 조사를 받았으며 김태정 검찰총장을 비롯한 검찰 수뇌부의 동반 퇴진을 요구하는 항명 사태를 촉발시키기도 했다.
 
2005년에는, 노회찬 의원(1956년생, 현 정의당 의원)이 삼성으로부터 장기적으로 떡값을 받아 왔던 삼성 장학생 검사 명단을 발표하고, 곧이어(2007년) 김용철 변호사 자신이 그 떡값을 전달했다고 증언하기도 했다. 2006년에는 법조 브로커 윤상림과 김홍수 사건이 터졌고 당시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였던 조관행 변호사가 구속돼 대법원장이 대국민 사과를 하기도 했다.
 
2009년부터는 본격적으로 ‘스폰서 검사’ 사건이 터져 현재까지도 진행형으로 남아 있다. 용산 철거화재 사건과 MBC 광우병 보도 수사를 지휘하며 승승장구하던 천성관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이 2009년 3월 사업가 박경재로부터 뒷돈 15억5000만을 받은 혐의 등으로 검찰 총장 후보에서 낙마했다. 2010년 4월에는 건설업자 정모씨가 부산, 경남 지역의 전·현직 57명 검사들에게 지속적인 금품 제공 및 성 상납 등의 스폰서 행위를 해왔다고 폭로해 박기준(1958년생, 사법연수원 14기) 당시 부산지검장과 한승철(1963년생, 연수원 17기) 당시 대검감찰부장이 비리 의혹에 휩싸였다. 같은 해 10월에는 이른바 '그랜저 검사' 사건이 터졌다. 2008년 1월 30일 경, 서울중앙지검 부부장검사로 재직하던 정인균이 건설업체 대표로부터 사건 청탁과 함께 그랜저를 받고 1600만원을 받은 혐의(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알선수뢰)로 구속 기소돼 징역 2년6개월을 확정 받았다.
 
2011년에는 부장판사 출신 최모 변호사가 현직 여검사에게 벤츠 등을 제공하며 부정한 관계를 맺고 사건청탁까지 했다는 '벤츠 여검사'사건이 있었고, 5조원 대 다단계 사기를 벌인 '조희팔 사건'에 연루돼 실형을 확정 받은 김광준 전 서울고검 검사(55) 사건도 있었다.
 
2016년 9월 현재, 최유정 변호사의 정운호 게이트, 홍만표 변호사와 우병우 수석의 수상한 공조 관계, 진경준 검사장과 넥슨의 김정주 대표 사건 및 작금의 김형준 부장검사 스폰 사건까지 줄줄이 비엔나 소세지 처럼 엮인 법조 비리는 출구가 따로 없을 지경이다.
 
그런데 이들의 스캔들에는 일종의 공통점이 있다. 비리에 연루된 법조인들이 각 조직에서 매우 잘나가던 엘리트들이었다는 점. 또한 그들은 엄청난 권력욕을 가지고 있었지만 가난하거나 어중간한 중산층으로 태어났기에 남부럽지 않은 생활수준을 유지하며 조직의 수장으로 남기에는 경제적 뒷받침이 필요했었다는 점, 공명심이 크고 자존심이 매우 세며 과시욕이 있었다는 점, 그리고 무엇보다 머리가 지나치게 좋아 자만심 과잉의 전형으로 살아왔다는 점 등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사법시험에 합격할 때까지는 자신들의 노력과 타고난 부지런함, 명민한 두뇌만으로 충분히 가능하다. 순전히 자신만의 힘으로 1등을 하고 칭찬의 꽃가마를 탈 수 있으며 국내 제일의 시험에서 탑에 오를 수 있다. 하지만, 그 이후부터는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이 세상에 공짜는 없다. 성공에 중독된 이들은, 비록 후폭풍이 염려되더라도 비싸게 거래될 무언가를 얻기 위해 자신만이 가진 것을 내놓을 수밖에 없다. 결국 비리 검사는 기소 독점권이나 배타적 수사지휘권을, 비리 판사는 그 심급에 한해서는 내 맘대로 판결할 수 있는 무소불위의 판결권을 거래의 대상으로 삼을 수밖에 없다. 검찰이나 법원에서 내놓는 개혁안들이 전부 공염불이 되는 이유 중의 하나는,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본질적인 권한은 내주지 않은 채 변죽만 울리려고 했기 때문이다. 그들도 알고 있을 것이다. 문제의 해결이 어떻게 가능한지를.
 
노영희 법무법인 '천일'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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