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 기자
(토마토칼럼)수면 위로 떠오른 혐오발언 논쟁
2016-08-16 16:39:42 2016-08-16 16:39:42
김치녀, 한남충, 개돼지에 이르기까지 특정 집단을 비하하는 언어들이 판을 치는 요즘이다. 최근 메갈리언 이슈까지 겹치면서 혐오발언(hate speech)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의 문제가 수면 위로 급부상 중이다. 
 
사회적 의제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출판계에서도 이같은 흐름에 주목하고 있다. 한국에서 이제 막 닻을 올린 이 의제를 두고 일단은 해외로 눈을 돌리는 분위기다. 올 여름만 해도 관련 책이 여럿 번역됐다. 간바라 하지메의 '노 헤이트 스피치', 모로오카 야스코의 '증오하는 입', 주디스 버틀러의 '혐오발언' 등이 대표적이다.  
먼저 일본인 저자의 책이 여럿이라는 점이 눈길을 끈다. 국적이나 인종 차별을 부추기는 혐오발언을 억제하기 위한 법안이 올해 일본에서 발효된 게 아무래도 영향을 미쳤으리라 짐작된다. 일본에서는 혐오발언에 대해 규제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아나가고 있다.  
 
최근의 '뜨거운 감자'이기 때문일까. 일본 저자들의 경우 확실히 현재 진행형인 논제를 현장에서 다루는 듯한 느낌을 준다. '노 헤이트 스피치'의 경우 일본 극우파가 가장 증오한다는 인권 변호사 간바라 하지메가 쓴 책이다. 여성과 장애인, 빈곤층, 성소수자, 외국인 노동자 등을 향한 적대나 혐오발언을 사회에서 차단해야 한다는 주장이 담겼다. 혐오발언이 극단적으로 발전할 경우 제노사이드(대량학살)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문제 의식이 바탕에 깔려 있다. 
 
'증오하는 입'도 마찬가지다. 혐오발언을 과연 표현의 자유를 위해 덮을 수 있느냐고 묻는 책이다. 변호사이자 인종차별철폐 NGO네트워크 간사이기도 한 저자 모로오카 야스코는 무고한 소수자를 공격하는 악질적 혐오발언은 법으로 규제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하고 있다.  
 
우리보다 한 발 앞서 관련 논의를 시작한 이웃나라의 사례를 참고로 삼는 것도 기왕지사 나쁘지 않다. 사실 혐오발언을 법으로 규제하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법적 규제에 나설 경우 혐오발언의 폐해 못지 않은 심각한 부작용이 따를 수 있기 때문이다. 일단 법을 집행하는 주체인 국가를 과연 언제나 믿을 수 있느냐 하는 중요한 문제가 있다. 
 
관련된 여러 책들 중 미국 철학자 주디스 버틀러의 오래된 책 '혐오발언'의 한국 출간은 그래서 반갑다. 20년 전에 쓰여진 이 책은 혐오발언 문제를 다루되, 혐오발언도 나쁘지만 그것을 규제하는 것도 옳지 않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상처를 주는 말 자체보다 그 말이 반복된다는 것에 주목하고, 그 반복이 역설적으로 그 말을 전복시키고 재정의할 수 있는 기회일 수 있다고 말한다.
 
혐오발언을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가에 대한 아이디어는 저자들마다 극명하게 갈린다. 하지만 혐오발언의 원인이 무엇이냐에 대해선 의견이 대체로 비슷하다. 정부, 정치인, 매체에 의해 오랫동안 차별에 대한 선동이 이뤄졌고, 이같은 선동에 호응하는 민중들이 있었기 때문에 혐오발언이 활개를 치게 됐다는 게 이들의 공통된 주장이다.
 
한국사회에서 이제 막 시작된 혐오발언 논쟁, 우리는 과연 어떤 결론을 내리게 될까. 혐오발언을 적극적으로 규제하도록 할 것인가, 아니면 민중 스스로 정화해나가길 기대해볼 것인가. 분명한 건 우리에게 남은 시간이 그리 길지 않아 보인다는 점이다. 최근 혐오발언의 급증 흐름이 이같은 상황을 설명해주고 있다.
 
김나볏 코스닥팀장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지난 뉴스레터 보기 구독하기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