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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칼럼)직장 내 인권, 언제쯤 토론 가능할까
2016-03-17 06:00:00 2016-03-17 06:00:00
[뉴스토마토 김나볏기자] 지난 2014년 말 서울시립교향악단 직원들의 호소문 공개로 촉발된 서울시향 사태가 여전히 난타전으로 흘러가고 있다. 이달 초 박 전 대표의 성추행과 막말 의혹에 대해 서울시향 직원들의 자작극이라는 경찰 수사 결과가 발표됐다. 박 전 대표는 지난해 10월 서울시향 전 직원과 서울시 시민인권보호관 등에 대해 명예훼손에 따른 손배소 소송을 제기했고, 지난 9일에는 정명훈 전 예술감독을 상대로 한 손배소 소송을 내기도 했다. 
 
이제 검찰 조사와 법적 판단을 기다려야 하는 상태다. 아무래도 서울시향 직원들이 불리한 국면에 처한 것으로 보인다. 성추행과 막말 의혹에 대해 증거를 충분히 확보하지 못한 상태에서 시시비비를 가려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내부에서 문제를 푸는 방식이 아니라 호소문이라는 형식으로 문제를 밖으로 공론화했던 점도 부담이다. 당시 서울시향 측은 명예훼손이라는 부메랑이 돌아올 수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지 못한 듯하다. 이제 서울시향이 명예훼손 문제에서 자유로우려면 호소문 공개가 공익적 목적에서 비롯됐다는 법적 판단이 필요하다. 서울시민의 세금이 투입되는 서울시향이지만 직원들의 업무 환경과 관련된 문제까지 공익적 문제로 판단할 수 있는지 가리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법적 공방은 차치하고 이번 사태를 보며 제3자로서 제일 아쉬운 대목은 인권 이슈가 한국 사회에서 여전히 예민하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게 다시 한 번 확인됐다는 점이다. 다른 여러가지 의혹은 법적 판단이 필요한 부분이나 사실 박 전 대표의 폭언은 녹취 형태로 언론을 통해 이미 공개된 바다. 기정 사실이라는 이야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녹취는 휘발성이 강한 가십거리로 소모되는 데 그쳤다. 경찰 조사 발표 이후 여론은 이번 사태가 박 전 대표에 대한 서울시향 직원들의 마녀사냥이라는 쪽으로 돌아섰다. 여론의 향방이 이렇듯 180도 바뀌는 것은 아직 사실 관계를 밝히고 있는 과정 중에 있으니 그렇다 치자. 충격으로 다가오는 것은 오히려 중립을 지키려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관련 기사들의 인터넷 댓글을 살펴보면 '한국 사회에서는 직장인들이 다들 그런 대우를 받지만 참고 살아간다'는 식의 자조섞인 내용이 심심치 않게 발견된다.
 
사실과 진실은 서로 다르고 구별된다. 증거 유무에 따른 영향을 받는 법적 공방과 그에 따른 결과는 엄격히 보자면 진실보다는 사실 관계를 따지는 일에 가깝다. 사실이 쌓이고 쌓여 진실이 되는 경우도 있지만, 역으로 사실(에 대한 증거)이 부족해 거짓으로 매도되는 경우도 있다. 비단 사법 영역뿐만 아니라 언론에서도 비일비재하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렇다면 사실인지 아닌지 증명하기 어려운 감정의 문제, 더 나아가 직장 내 인권의 문제는 과연 누가 어떻게 다뤄야 할까. 당장은 뾰족한 답이 보이지 않는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우리 사회 내 인권의식 혹은 인권 감수성의 개별차가 너무도 크다는 사실이다. 서울시향 사태는 당사자들 간 분쟁을 넘어서서 오랜 시간 인권 교육과 사회적 합의 과정을 생략해온 우리 사회의 또 하나의 민낯을 가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직장 내 인권 문제는 과연 언제쯤 토론의 영역으로 넘어갈 수 있을까. 아무래도 이번에는 어렵지 않을까 싶다. 
 
김나볏 문화체육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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