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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MB가 너무 많은 `우수(憂愁)`의 시대
2012-11-15 16:00:00 2012-11-15 16:00:00
바람이 차다. 올해도 기울어감을 실감한다. 송년 기분을 내는 게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매년 이맘때 발표되는 `올해의 단어`나 `올해의 사자성어`도 그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올해의 첫 '올해의 단어'는 영국에서 나왔다. 2011년에 '쥐어짜인 중산층(squeezed middle)'을 선정했던 옥스포드대 출판사는 올해는 'omnishambles(총체적 난맥상)'이라는 단어를 지난 12일(현지시간) 발표했다. 준비가 미흡했던 런던올림픽, 최근 BBC방송의 오보 사태 등을 비꼬는 데 두루 쓰였다는 것이 선정의 근거다.
 
지난 몇 년간 추이를 볼 때, 미국의 '올해의 단어'도 그다지 긍정적인 말이 뽑힐 것 같지는 않다. 2008년은 '구제금융(bailout)', 2009년은 '훈계하다, 주의 주다(admonish)', 2010년은 '긴축(austerity)'이었고, 2011년에는 '실용적인(pragmatic)'이 뽑혔다.
 
한국은 어떤가. 우리의 `올해의 사자성어`는 우울함을 넘어 절망적이다. 교수신문이 최근 몇 년간 발표해온 사자성어를 보자.
 
2004년 "같은 무리와는 당을 만들고 다른 자를 공격한다"는 의미의 '당동벌이(黨同伐異)', 2005년 "서로 물과 불이 되어 갈등한다"는 뜻의 '상화하택(上火下澤)', 2006년 "짙은 구름이 끼여 있으나 비가 오지 않는다"는 '밀운불우(密雲不雨)', 2007년 "자신을 속이고 남을 속인다"는 '자기기인(自欺欺人)', 2009년 "샛길과 굽은 길로서 많은 사람들이 다니는 큰 길이 아니다"는 의미의 '방기곡경(旁岐曲逕)' 등 모두 탁하고 삭막하기 그지 없다.
 
2010년 머리는 겨우 숨겼지만 꼬리가 드러나는 모습을 비유한 '장두노미(藏頭露尾)'와 지난해 "도둑이 자기 귀를 막고 소리 나는 종을 훔친다"는 뜻의 '엄이도종(掩耳盜鐘)'에 이르러서는 어떻게 이렇게 나쁜 말만 찾아내는지 신기하게까지 느껴질 정도다.
 
여기에 2011년 KBS노조가 사측을 풍자하며 만들어낸 "열심히 일하는 말에게 벌을 내린다는 뜻의 '시벌로마(施罰勞馬)'에까지 다다르면, 그 기발함에 웃음을 뿜으면서도, 씁쓸함을 지울 수 없다.
 
한 해를 대표하는 말들이 이 정도라면, 그 사회 구성원들의 멘탈은 그야말로 붕괴 수준일 터. 요즘 단연 압도적인 사용빈도를 자랑하는 단어 `멘붕`만 해도 그렇다.
 
물론 어느 시대에나 사회를 비판하거나 시대의 우울을 노래하는 언어는 존재했다. 해방공간과 한국전쟁의 소용돌이를 경험한 화인(花人) 김수돈 (金洙敦. 1917~1966)은 1953년에 펴낸 시집《우수(憂愁)의 황제(皇帝)》에서 이렇게 읊었다.
 
"언제부터 가진 버릇인지 모르는 / 나의 비방의 주벽이여 / 지식도 이성도 단절된 세계의식에서 / 전쟁을 노래모양 외운다 / 영웅이 너무 많다 // 절해 가운데 외로운 섬에 살아 / 역정을 되씹는 황제가 되랴. (`우수의 황제` 부분)
 
지식인으로서 느끼는 무력감과 사회상에 대한 비판의식을 담아 자조적으로 내뱉는 시인의 언어에는 반세기 세월을 뛰어넘어 공감이 간다.
 
특히, "영웅이 너무 많다"는 구절이 그렇다. MB정권의 레임덕 라이브무대를 누비고 있는 주역들, MB, MB아들, MB아내, MB형제, MB측근에 이어 MB(문화방송)C까지. 너무도 'MB스러운' 면면을 보면, 'MB가 너무 많아 MB(멘붕)이 오는' 수준이다.
 
수많은 MB들의 영웅놀이가 끝나가고 새로운 리더를 뽑는 신나는 축제가 한창이어야 할 지금, "절해 가운데 외로운 섬에 살아 역정을 되씹는" 수많은 국민들은 예년보다 더 을씨년스러운 겨울을 나고 있다.
 
올해의 사자성어만큼은 밝고 활기찬 단어가 선택되길 기대한다. 고진감래(苦盡甘來. 괴로움이 다하면 좋은 일이 온다)하여 태평연월(太平煙月. 세상이 평화롭고 안락한 시기)이 와서 모두가 `호호호호(好好好好)` 하는 그날을 기다려본다.
 
김종화 생활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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