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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밥 한번 먹읍시다!
2024-02-02 06:00:00 2024-02-02 06:00:00
“때론 말보다 음식이 필요한 순간이 있어.”
 
켄 로치 감독의 <나의 올드 오크>는 영국으로 이주한 시리아 난민들이 더럼(Durham) 동네의 주민들과 진정한 이웃이 되어가는 과정을 그린 영화다. 위의 말은 주인공인 TJ가 유일한 가족인 반려견을 끔찍한 사고로 잃은 뒤 슬픔에 빠져 있을 때 야라의 엄마가 손수 만든 음식을 건네며 한 말이었다. 야라와 그의 엄마는 TJ가 음식을 다 먹기 전엔 일어서지 않겠다며 식탁 앞에 마주 앉아 그가 억지로라도 음식을 먹도록 유도한다. 영국인인 TJ에게 시리아의 음식이 입에 맞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 음식은 위장을 채우는 것이라기보다 그의 영혼을 데우는 것이었으므로 짐작건대 그 음식은 세상에서 가장 맛있었을 게 분명하다.
 
97세대(90년대 학번, 70년대 생)인 나에게는 ‘밥 한번 먹자’는 말이 일상어였다. “밥 먹었어?”는 “잘 지내니?”냐는 뜻이었고 끼니를 챙기는 말들은 서로의 안위를 걱정하는 마음이었다. 그래서 음식으로 위로를 전하는 야라 엄마의 말에 나는 깊이 공감했는데, 극장을 나오며 가만히 생각해보니 요즘은 예전만큼 밥 한번 먹자는 말이 자주 사용되지 않는 것 같았다. 이 말이 공수표처럼 남발되는 게 싫어서 상대가 밥을 먹자고 말하는 순간 바로 날짜를 잡는다는 사람도 있다는 얘기를 우스갯소리처럼 하던 것도 다 옛날이었다. 이제는 누구도 이 말을 가볍게 던지지 않는다. 약속이행률이 높아졌다고 긍정적으로 이해할 수도 있지만 그만큼 함께 밥을 먹는 일이 흔하지 않다는 말도 된다. 약속을 잡고 같이 한 끼 밥을 먹는 일이 특별하고도 어려운 일이 된 것이다.
 
코로나 시절을 겪고 물가가 오른 탓만은 아닐 것이다. 인심이 각박해진 탓이다. 밥을 같이 안 먹어서 인심이 사나워진 것인지, 인심이 말라서 밥을 덜 먹게 된 것인지 인과는 알 수 없으나 중요한 건 밥과 인심 사이에는 분명한 상관관계가 있다는 사실이다. 데면데면했던 사람과 밥을 한번 먹는 것만으로 관계의 질이 향상됐던 경험을 누구나 갖고 있을 것이다. 대체 그런 힘은 왜 생기는 걸까. 
 
이 영화는 하나의 답을 알려준다. ‘함께 먹을 때 더 단단해진다’고. 리얼리즘 영화의 거장 켄 로치 감독은 같이 밥 먹는 일의 의미를 이렇게 말한다.
"희망은 다른 게 아니라 각자 처한 상황이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서로를 지지할 방법을 찾는 것에 있습니다. 그 방법 중 하나가 음식을 나누는 것이죠."
함께 밥을 먹는, 어쩌면 별 것 아닌 이 작은 행위가 연대감을 낳고 그렇게 연결된 마음이 거칠고 팍팍한 우리네 인생살이를 견디게 하는 희망이라는 것이다.
 
나는 이 답이 ‘먹는다’ 이전에 ‘본다’는 것에 있다고 생각한다. 맹자의 곡속장(??章)의 교훈처럼 말이다. 제선왕은 제물로 끌려가는 소를 보고 측은한 마음이 들어 소를 양으로 바꾸라고 명령하는데 맹자가 왜 양에게는 측은지심이 없는지를 반문하자 왕이 스스로 그 마음을 알지 못하여 맹자가 알려주기를 “소는 보았고 양은 아직 보지 못하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본다’는 것은 ‘만난다’는 것이고 만나면 서로를 ‘알게 된다’는 신영복 선생님의 말씀처럼 본다는 것은 그 자체로 매우 중요하다. ‘용서(容恕)’의 의미와도 같다. 서(恕)에 이미 용서한다는 뜻이 있는데도 그 앞에 얼굴용(容)이 쓰인 이유는 얼굴을 직접 보고 잘못을 빌 때 진정한 용서가 이루어진다는 걸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바야흐로 정치의 계절이 돌아왔다. 비단 정치인뿐 아니라 범인들끼리도 서로 뜻이 다르다고 반목하기 쉬운 이 때에 정치색으로 얼굴 붉힌 사람들이 있다면 ‘밥 한번 먹자’는 말을 건네보면 어떨까. 뜨끈한 음식 한 그릇에 힘이 있을지니.
 
이승연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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