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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어주는기자)"한국 정치·사회, '활용도 높은' 두부처럼 바뀌어야"
"흑백 논리 치우치지 말고 시대의 변화에 적응해야"
정치에 빗댄 음식들…"세상도 정치도 좀 푸근해졌으면"
같이 식사합시다|시공사 펴냄|이광재 지음
2023-11-27 10:01:02 2023-11-27 10:01:02
[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먹고 사는 일에는 좌도 없고 우도 없다. 보수도 없고 진보도 없다. 오늘을 살고 내일을 준비해야 한다는 인간의 지극한 본능이 있을 따름이다. 그것이 정치다." 최근 이광재 제35대 국회사무총장의 신간 '같이 식사합시다'를 여는 말입니다.
 
10가지 음식에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버무린 이 에세이집에선,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김 사이로 한국 현대사의 정치와 사회 궤적이 흘러갑니다.
 
"정치와 음식이 같으면서도 다른 점이 하나 있다면, 국민은 정치라는 음식의 요리사이자 소비자이기도 하다는 사실이다. 국민은 정치를 향유하는 N분의 1 소비자이기도 하지만, 정치를 만들어내는 N분의 1 생산자이기도 하다. 물론 때때로 '나는 정치가 왜 모양이냐'라는 반론 또한 충분히 수긍한다. 그러한 목소리를 조화롭게 융화해나가는 것이 정치인의 역할 아닐까 생각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보좌관을 지낸 이광재 국회 사무총장은 지난 2010년 지방선거에서 최연소 강원도지사를 역임하며 정치 한복판으로 들어왔습니다. 책에서는 새우 라면으로 시작해 열무김치에 이르는 과정을 살펴가며, 독재 정권의 몰락부터 민주화, 오늘까지 이르는 여로를 도란도란 이야기해줍니다. 음식을 매개로 삶의 굴곡을 감싸안는 영화 '심야식당'의 장면, 장면처럼 말입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추억이 얽힌 음식으로는 도리뱅뱅이를 꼽습니다. 20년이란 시간을 함께 하며 했던 수천번의 식사 중 이 특이한 이름의 음식을 꺼낸 이유는 무엇일까.
 
도리뱅뱅이는 민물에서 사는 빙어나 피라미를 튀기고 구운 유리입니다. 프라이팬 같은 넓은 냄비에 물고기 수십마리를 뱅글뱅글 돌리듯 배열해 식탁 위에 내놓는다고 해서 이름이 붙은 요리입니다. 내장을 깨끗이 손질하고 길쭉하게 펴서 팬에 둥글게 돌려 깔아 놓고, 기름을 많이 부어 튀기듯 구우면 됩니다. 튀긴 고기에 고추장 양념을 하고 다시 살짝 구우면 완성. 
 
노 전 대통령은 청와대의 밍밍한 음식들(건강을 위해 간이 세지 않은) 사이로 가끔 이런 자극적인 음식을 찾았다고 합니다. '도리뱅뱅이가 먹고 싶은데…(원을 그리며 뭉쳐있는 물고기를 보며) 미안해서 못먹겠군'(노 전 대통령) 저자는 "이 민물고기 음식을 보면 대통령이라는 화려한 이름의 이면에 어려 있던 외로움 같은 것이 떠오른다"며 "음식이나 식재료 하나는 우리에게 여러 장면을 겹쳐 떠오르게 만든다"고 합니다. 
 
같이 식사합시다|이광재 지음. 사진=시공사
 
'음식으로 시간을 뛰어넘는' 다른 일화들도 파노라마처럼 펼쳐집니다. 부산의 한 주물 공장에서 일하다 검댕이 묻은 얼굴로 먹던 용광로 김치찌개에서 군부 독재가 정점을 향해 달려가던 엄혹했던 1986년 겨울과 겹쳐냅니다. '산업화 40년, 민주화 40년'의 궤적을 돌아보며 애덤 스미스가 꺼낸 의문 "국가란 무엇일까?" 다시 질문합니다. 자살율, 노인 빈곤율, 성차별 등의 각 지표가 OECD 국가 최하위 수준인 "어떤 계층도 행복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대한민국"에서 저자는 "문제는 상대 진영을 악마화하기에만 바쁜 우리 정치 현실에 있다. 국가의 역할을 한층 높이면서 복지와 교육 제도를 전반적으로 재정비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탕과 찌개, 조림, 어느 요리에나 잘 어울리는 두루 두부처럼 '활용도 높은 정치'를 제안하기도 합니다. 2027년까지 일자리 8300만개가 지구상에서 사라진다는 2023년 세계경제포럼(WEF)의 경고('AI의 위험성')에 대해 "시대의 변화에 적응하는 일에는 좌도 우도, 보수도 진보도 따로 없다. 두부처럼 무색무취하게 보이지마 어디에나 쓰임이 있는 정치가 돼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래야 국가가 살고 국민이 살고 일자리가 늘어난다. 어느 한쪽 일방적으로 치우친 정치여서는 안 된다. 먹고사는 문제를 우선 해결해야 한다."
 
커다란 무쇠솥에 넣고 달달 볶던 어머니의 미역국 요리를 떠올리며 '국민들이 한솥밥을 먹는다'는 것의 의미를 떠올립니다. "그런 동질감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 정치의 또 다른 목표"이며 "먹는 것과 정치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임을 분명하게 인식하는 것으로부터 정치는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보글보글 미역국이 끓는다. 국 끓을 때의 냄새도 좋지만 보글보글한 소리가 군침을 돌게 만들기도 한다. 어머니 손맛 조리법대로 수십 년 끓여온 소박한 미역국 한 그릇이 여기 있다. 미역국을 끓이면서 정치를 생각한다. 옛 고향 집에서, 신림동 자취방에서, 언제나 가까이 있었던 미역국을 떠올린다."
 
세상을 흑과 백의 관점으로만 보지 않는 것, 조금 더 차분하고 냉정하게 국익의 관점에서 세상을 살펴야 한다는 것, 미래의 정치인들이 그렇게 생각 할 때 이 총장은 "우리는 극단의 시대를 넘어, 함께 먹고살아야만 하는 문제를 고민할 수 있다"고 봅니다. 
 
"신냉전을 운운하는 시대에 역사의 의미를 되짚는다. 적당히 중간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중심에 둘 때, 비로소 우리는 진정한 중용의 역사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앞치마를 둘러매고 조리대 앞에 선다. 혹은 잘 차려진 밥상 앞에 앉는다. 동료들과 둘러앉아 '국물 맛이 시원해서 좋네' 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세상도 정치도 좀 푸근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의 저자인 유홍준 제 3대 문화재청장이 추천사를 썼습니다. "가볍게 정치 이야기를 꺼낸 것처럼 돼 있지만, 3선 국회의원에 도지사까지 지낸 경륜의 정치인이 우리 정치의 과거, 현재 미래를 심도 깊게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오히려 '정치의 정석'에 가깝다. 30년 경력에 맛있는 음식이야기를 곁들이면서 편안한 자세로 우리 나라 정치의 좌표와 희망을 말하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보좌관을 지내고 , 3선 국회의원에 도지사까지 지낸 이광재 국회 사무총장, 사진=뉴시스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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