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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게이션)무관심과 외면이 만든 이 세상의 ‘소년들’
‘삼례 나라 슈퍼 사건’ 그리고 ‘약촌 오거리 살인사건’ 더한 창작
‘재심’에 대한 존재론적 가치 그리고 사법 체계 자기 모순 ‘지적’
2023-10-30 06:02:22 2023-10-30 06:02:22
[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재심’(再審). 분명 낯선 단어이면서도 반대로 낯이 익습니다. 일단 낯선의 개념, 사법적 판단에 따른 처벌을 받은 대상자가 아니라면 평생 마주할 일이 없는 단어입니다. 반대로 사법적 판단, 하지만 억울한심정을 토로할 길이 없는 대상자라면 이 단어는 동아줄, 아니 희망의 줄이 됩니다. 어느 누구도 들어주지 않는 억울함, 하지만 자신에게 찍힌 낙인을 지워줄 실낱 같은 희망. 그 희망의 다른 말이 바로 재심입니다. 2000년대 이후 재심에 의한 잘못된 사법적 판단 인정은 몇 차례 있어왔습니다. 그 가운데 재심을 언급할 수 있는 대표적 사건, 바로 19992월 발생한 전북 완주 삼례읍에 위치한 슈퍼 살인 사건, 세상에는 삼례 나라 슈퍼 사건으로 불리는 강도 살인 사건. 시골 마을 허름한 슈퍼에 3인조 강도가 침입해 잠을 자고 있던 할머니를 살해하고 금품을 훔쳐 달아난 사건이었습니다. 사건이 벌어진 뒤 경찰은 10대에서 20대까지의 저소득층 가정의 남성 세 명을 진범으로 붙잡았습니다. 그들은 각각 징역 3~6년을 선고 받았습니다. 이들은 2015년 재심 사건 전문 박준영 변호사의 도움을 받아 억울함을 호소했습니다. 이들 세 명은 이듬해 대법원에 의해 최종 무죄 선고를 받았습니다. ‘삼례 나라 슈퍼 사건은 현재의 사법 체계가 만들어 낸 대표적인 오심사건으로 기록돼 있습니다. 이 내용, 국내 대표적 사회파 연출자 정지영 감독에 의해 소년들이란 제목의 영화로 만들어 졌습니다.
 
 
 
소년들삼례 나라 슈퍼 사건을 모티브로 하지만 극적 효과를 위해 여러 영화적 장치가 투입됐습니다. 대표적으로 이 사건을 끌어가는 극중 인물 황준철(설경구) 반장. 그는 또 다른 재심 사건의 대표적 케이스가 된 약촌 오거리 살인사건을 진두지휘한 황상만 형사가 모티브입니다. ‘약촌 오거리 살인사건역시 영화 재심으로 극화가 됐고, 이 사건도 삼례 나라 슈퍼 사건재심을 담당한 박준영 변호사가 맡은 바 있습니다.
 
영화 '소년들' 스틸. 사진=CJ ENM
 
소년들에선 삼례에 위치한 우리 슈퍼가 사건의 현장입니다. 한적한 시골의 한 마을에 있는 이 작은 슈퍼에서 살인 사건이 벌어집니다. 전북 완주경찰서는 이 사건 발생 뒤 일사천리로 해결을 하면서 관련 형사들이 특진을 합니다. 경찰대 출신 최우성(유준상)과 그의 수하 두 명은 각각 사건 해결을 인정 받아 포상으로 승진하게 됩니다. 그리고 1년 뒤 미친개로 불리는 강력 사건 해결 전문가 황준철 반장이 완주경찰서 강력반에 새로 부임하게 됩니다.
 
영화 '소년들' 스틸. 사진=CJ ENM
 
황 반장은 부임 며칠 뒤 한 통의 제보 전화를 받습니다. 1년 전 발생한 우리 슈퍼 사건이 조작됐다는 내용입니다. 진범이 따로 있답니다. 옥살이를 하고 있는 진범 세 명은 범인이 아니랍니다. 황 반장은 제보 내용을 바탕으로 의례적인 조사를 해 봅니다. 큰 기대를 갖진 않았습니다. 하지만 완주경찰서 내부 그리고 전북경찰청으로 자리를 옮긴 최우성의 훼방에 이상함을 느낍니다. 서류를 검토하고 기본적 재조사 만으로도 이 사건이 부실 수사에 따른 조작이 있었음을 인지하게 되는 황 반장입니다.
 
영화 '소년들' 스틸. 사진=CJ ENM
 
진짜 사건, 은 여기서부터 등장합니다. 부실 수사의 피해자, 다시 말해 현재 복역 중인 가짜 피의자 소년 세 명은 권력이 만들어 낸 피해자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피의자가 돼 있습니다. 그들은 구타와 강압에 따른 두려움으로 자신들의 억울함을 부인합니다. 최우성은 이런 그들의 증언 그리고 권력 구조의 생리와 시스템에 대한 맹신을 바탕으로 황 반장까지 압박합니다. ‘조직에 똥칠하려 작정한 게 아니라면 이쯤에서 그만하라며 황 반장이 사건을 재조사하는 것에 압력을 가합니다. 하지만 황 반장은 진실을 선택합니다. 그는 가장 단순하게 접근합니다. 억울한 피해자들을 위해 경찰이자 형사로서의 본분, 진범 검거에 나섭니다. 사건의 진실이 드러난 뒤부터는 황 반장과 최우성의 권력 대립 구도로 소년들은 방향을 틀고 그 이후에는 법정 드라마로서 장르를 유턴합니다.
 
영화 '소년들' 스틸. 사진=CJ ENM
 
소년들은 권력이 만들어 내는 억울한 심경, 즉 조작 사건의 피해자들이 지금도 여전하고 그 여전함 속에 누군가는 현실의 벽과 그 벽을 만든 권력의 공고한 시스템의 허점을 파고 듭니다. 좀 더 쉽게 풀어내면 이렇습니다. 누구라도 지금의 사법체계 속에서 이 사건의 피해자들처럼 당할 수 있다는 과정의 설득을 보여 줍니다.
 
영화 '소년들' 스틸. 사진=CJ ENM
 
무엇보다 이 과정의 설득 속 핵심은 권력이 먹거리로 노려 보는 약자들입니다. ‘당해야 하는사람들을 노리는 게 아니라 당할 수 밖에 없는누군가를 선택해 자신들의 이익과 득실을 계산하는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실화를 모티브로 그려낸 소년들의 방식은 그래서 영화적 세계 속에만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 여전히 지금도 현실에 존재합니다. 2023년에도 여전히 유효한 부조리의 과정입니다.
 
영화 '소년들' 스틸. 사진=CJ ENM
 
소년들이 말하는 부조리의 과정, 그 과정의 핵심은 바로 침묵입니다. 극중 최우성을 중심으로 그려진 권력의 편취는 아이러니하게도 대중의 침묵에서 출발합니다. 공감을 통한 함께를 외치는 우리 사회의 대중성은 반대급부로 익명성을 더 강조하는 지점으로 흘러가게 만듭니다. ‘나 아니어도 다른 누군가 나설 것이란 명제는 이미 여러 사회적 실험을 통해 증명된 타인에 대한 극도의 무관심, 나아가 자기 중심적 사고에 대한 정의의 재정립으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우린 이런 흐름을 사회적 발전이란 자기 최면으로 스스로를 세뇌시키는 중입니다. ‘소년들에선 이런 흐름이 꽤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습니다. 아무 잘못도, 연관도 없는 소년 3명이 사건 진범으로 지목됩니다. 그 과정이 너무도 어이가 없습니다. 문제는 이 과정 이후입니다. 권력은 그런 소년들을 궁지로 몰아 넣습니다. 세상은 그들을 몰아세웁니다. 누구도 의심하지 않습니다. 누구도 의문을 제기하지 않습니다. 세상의 관점에서 그들은 타인일 뿐입니다. 그들을 제외하면 세상은 올바른 정의로 흘러갈 수 있단 확신을 합니다. 진실은 필요치 않습니다. 이게 바로 소년들속 사법 시스템이 만들어 낸 자기 판단 오류의 근거이면서 핵심이고 또 자기 모순의 함정입니다. 사법은 인간의 믿음 속 두려움의 감정을 파고드는 괴물이 됐습니다. 과거에는 분명 그랬습니다. 그리고 현재까지도 사법은 이런 괴물로서 굳건히 자리하고 있습니다.
 
영화 '소년들' 스틸. 사진=CJ ENM
 
소년들을 연출한 정지영 감독은 이런 점에 주목했습니다. 세상은 분명 이전에도 그리고 지금도 그리고 이후에도 약자의 편이라 주장만 합니다. 그래서 정작 약자들의 아픔과 고통과 외침에 잔인할 정도로 침묵합니다. 그리고 힘을 가진 또 다른 누군가는 그 침묵을 철저히 이용해 약자들을 짓밟습니다. 이 과정의 흐름, 이전에도 존재했고 그 이전에도 있었으며 그 이전의 이전에도 있어왔습니다. 그리고 2023년에도 우리가 모르는 곳에 소년들은 여전히 존재할 것입니다. 우리의 무관심과 외면이 계속된다면. 111일 개봉.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성남 엔터산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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