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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기태의 경제편편)회계사와 의사들의 자세
2020-09-02 06:00:00 2020-09-02 06:00:00
올해 공인회계사 시험에서 1110명이 최종합격했다. 지난해보다 101명 늘었다. 공인회계사 선발인원은 지난 2018년까지는 900명대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 또 다시 100명 넘게 증가한 것이다.
 
기업의 분식회계 근절을 위한 감사제도가 최근 바뀌었기 때문이다. 감사인 지정제와 표준감사시간제가 도입됨에 따라 기업의 감사시간이 늘어난다. 따라서 더 많은 회계사가 필요하게 됐다.
 
이에 대한 기존 회계사의 반발이 작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회계사가 늘어나면 경쟁이 심해지고 감사보수 하락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우려하는 것이다. 회계업계에서는 선발인원을 축소하거나 최소한 더 이상 늘리지 말아야 한다는 요구가 크다. 지난 6월 실시된 공인회계사회 회장 선거에서도 회계사 선발인원 축소가 큰 화두였다고 한다.
 
또 다른 엘리트집단인 법조인도 과거에는 사법고시라는 좁은 문을 통해 제한된 인원만 선발했다. 그렇지만 사법고시가 없어지고 법학전문대학원 제도가 도입된 이후 선발인원은 해마다 1000명 안팎으로 크게 늘었다. 그 결과 법조인 자질이 저하됐다거나 변호사 시험에 합격해도 일자리 구하기가 어렵다는 목소리가 간혹 들린다.
 
의사는 이과계 학생이 가장 선망하는 엘리트 직종이다. 법조인과 의사는 나란히 먼 옛날부터 인류 역사와 함께 했다. 이에 비해 회계사는 자본주의 경제의 발전에 따라 각광을 받게 된 현대적 전문직이라고 할 수 있다. 역사는 짧지만 기업의 운명을 좌우할 정도로 회계사의 위상과 영향력은 계속 커지고 있다. 이를테면 아시아나항공이 매각절차를 밟게 된 것은 지난해 회계감사의 '감사의견 거절'이라는 치명타를 입었기 때문이다.
 
의사는 물론이고 법조인이나 회계사는 각기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중차대한 역할을 떠맡고 있다. 이들은 모두 법적으로나 관습적으로 각별한 지위와 권능을 부여받고 있다. 한국의 경제와 사회가 발전하면서 이들 전문직의 역할이 커지고 수요도 증가한다.
 
이들의 선발인원이 늘어난 것은 바로 한국 사회와 경제의 발전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물론 이들은 선발인원 증가를 찬성하지 않는다. 결코 흔쾌하게 수용하지는 않는다. 일종의 기득권 장벽을 지키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자신들의 입장을 기회 있을 때마다 개진하고 요구한다. 그것은 그들의 당연한 권리다. 그렇지만 집단행동까지 벌인 적은 없다. 집단행동에 자신들을 내맡기는 것은 오직 지금 의사들뿐이다.
 
사실 한국의 경제성장이나 인구변동 규모 등을 고려할 때 의사 역시 늘리는 것은 거스를 수 없는 일이다. 한국의 인구는 2005년 4728만명에서 2019년 5178만명으로 증가했다. 같은 기간 국내총생산(GDP)은 9350억달러에서 1조6460억달러로 성장했다. 1인당 국민총소득(GNI)은 1만9262달러에서 3만2115달러로 높아졌으니, 매년 평균 918달러의 증가를 실현했다. 그 사이 의료서비스의 수요는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크게 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실손의료보험의 성장이 이를 뒷받침한다.
 
그럼에도 의과대학 선발인원은 매년 3000명으로 묶여 있었다. 그러니 의사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다. 게다가 인구 고령화 현상이 깊어짐에 따라 의료수요는 앞으로 더욱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경쟁심화에 대한 의사들의 우려는 충분히 이해된다. 그렇지만 정부가 제시한 증원규모로 볼 때 경쟁이 걱정만큼 심해질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지금처럼 정원을 계속 묶어놓을 경우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의사가 없어 큰일이라는 아우성이 곳곳에서 들리고, 의사를 속성으로 양성하는 기관이라도 세우자는 주장이 제기될지도 모르겠다.
 
설사 다소 경쟁이 다소 치열해진다고 해도 그것은 더 큰 발전을 위한 발판이 될 수 있다. 이를테면 오늘날 영화와 드라마 등 한류 콘텐츠가 세계로 뻗어가고 있는 것도 사실은 치열한 경쟁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의료분야에서도 그런 도약이 생기지 말라는 법이 없다. 올해 코로나19 사태를 거치면서 해외에서 가능성이 어느 정도 입증됐다. 시야와 마음을 조금만 넓혀 동굴 밖을 내다보면 무한히 넓고 새로운 가능성이 열린다. 19세기 독일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가 "그대의 동굴로부터 걸어나오라. 세계는 마치 꽃밭인 양 그대를 기다리고 있다"고 외쳤듯이.
 
더욱이 의사들에게는 당장 돌봐야 할 환자들이 있다. 이들에 대한 직업적 책임을 다하는 것이 우선이다. 모든 직업에는 상응하는 책임이 있지만, 의사의 경우 환자의 생명을 다루는 것이므로 특히 신성한 책임이다. 따라서 파업이라는 극단적인 행동은 자제돼야 마땅하다.
 
차기태 언론인 (folium@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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