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항공이 모두의 예상대로 이스타항공 인수 파기 수순을 밟기로 했다. 다만 이번에도 여지는 남겼다. '정부의 중재 노력에 따라 계약 해제 최종 결정과 통보 시점을 정한다'고 말이다.
앞서 제주항공은 이스타항공에 불가능한 미션을 던졌다. 10일 안에 체불임금을 포함해 각종 세금 등 빚 1000억원가량을 해결하지 않으면 계약을 파기하겠다고 했다. 현재 제주항공은 빚더미인 이스타항공을 감당할 여력이 없는 상황이다. 인수를 위한 초기 계약을 맺을 땐 코로나19가 터지기 전이었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고, 이스타항공은 물론 제주항공도 정상 운영이 힘든 시기다.
코로나19로 전 노선 운항을 중단하고 직원 월급 줄 여력도 없어 250억원을 체불한 회사가 당장 1000억원을 마련할 리는 만무했다. 결국 제주항공은 미션 해결을 위해 준 시한이 지난 바로 다음 날 '계약을 해제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다만 '계약을 해제하겠다'고는 확언하지 않았다.
모든 인수가 그렇지만, 제주항공과 이스타항공 딜에는 수많은 이해관계가 얽혀있다. 이스타항공은 기업의 존폐가 걸린 문제며, 정부는 포화한 항공 시장 재편을 위해서라도 제주항공이 이스타항공을 사주길 바라고 있다. 이 때문에 지원을 더 해서라도 딜을 성사시키려 하고 있다. 이스타항공 창업자이자 실소유주가 더불어민주당 이상직 의원이라는 점도 이번 딜이 복잡해진 요소 중 하나다.
인수자인 제주항공은 이스타항공을 통해 거대 저비용항공사로의 도약을 꿈꿨다. 하지만 지금은 인수 파기에 대한 책임을 최대한 지지 않고, 앞서 지급한 계약금 115억원을 돌려받는 게 가장 큰 목표가 됐다. 이 때문에 '이스타항공이 미션을 완수하지 못해 계약을 접는다'고 말하기 위해 10일을 기다린 것으로 보인다.
시국이 시국인지라 제주항공이 인수할 수 없게 된 것과 포기에 대한 명분을 쌓아야 하는 상황은 이해한다. 다만 계약 해지를 이미 결정한듯한 행보를 보이면서도 통보는 질질 끄는 태도에 이스타항공 직원들이 지쳐가고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이스타항공 직원들은 올 초부터 제주항공으로의 인수만을 기다리며 체불임금을 반납하겠다는 쉽지 않은 결정까지 했기 때문이다. 애매한 말로 직원들을 더 이상 희망고문하진 말아야 한다는 말이다. 정부와 지원 규모를 놓고 아직 협상 중이라 최종 결정을 미뤘다고 해도 이는 비겁한 태도다. 결국 이스타항공 직원들을 볼모 삼은 꼴이기 때문이다.
흔히 만남만큼 중요한 게 헤어짐이라고 말한다. 애정이 식어버린 연인에게 온갖 싫은 티는 다 내면서 헤어짐을 고하지 않는 것은 상대방을 더 힘들고 비참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인수 포기를 위한 명분 쌓기는 이만하면 됐다. 이제 남은 건 빠른 결정과 통보. 바로 '매너 이별'이다.
김지영 산업부 기자 wldud91422@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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