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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게이션)‘다크 워터스’, 자본권력이 심은 ‘무의식의 패배감’
전 세계 인류 99% 노출된 독성 물질 PFOA 고발…‘실화’ 담아내
정부와 언론까지 동원한 자본 권력 횡포, 대중과 진실 지배한 ‘힘’
2020-03-10 00:00:00 2020-03-10 00:00:00
[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힘 있는 사람은 빼앗는다. 힘 없는 사람은 빼앗기고 굴복 당하고 지배 당한다. 인류 역사 이래 이 논리는 명확하다. 가진 자의 힘은 권력이고, 못 가진 자의 무의식은 피지배의 정당성을 부여한다. 그래서 힘, 즉 권력은 세월이 흐르면서 그 모습을 바꾸고 다른 의미로 해석되고 또 존재하지만 태생적 논리는 변하지 않는다. 힘은 지배를 위해 수단이고, 소수의 특권이다. 이 같은 해석은 현대 사회에서 금권(金權)의 핵심 논리가 되고 있다. 영화 ‘다크 워터스’는 세계적인 거대 기업이 단 한 사람의 신념을 말살하는 과정, 그리고 나아가 다수의 시민을 피지배의 무의식에 잠식시키는 자본시장 이면을 들춰낸다. 우리가 보지 못했고, 보려 하지 않았던 그 다른 얼굴은 우리의 무의식을 지배하던 불편한 진실이다. 현대 사회는 어느덧 ‘돈’이란 가치판단 기준이 선악 개념까지 정리 해버리고 있다. 세계 최대 화학기업 듀폰은 인류를 상대로 돈의 힘을 과시한다. 그들은 인류에게 편리함을 제공하고, 그 편리함을 선의의 검은 속내로 포장했다. 이제 지구상 전 인류의 99%는 듀폰의 이 새빨간 거짓말과도 같은 선의에 속고 있으며 지금도 속아 넘어가고 있다. 불편한 진실은 그저 고요함을 방해하는 소수의 시선과 목소리에 대한 불쾌함일 뿐이다. 그저 모르고 살았다면 지금의 불쾌함은 우리에겐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이게 바로 ‘다크 워터스’가 고발하는 20년 간의 추적이며 한 사람의 신념이 파괴의 폭력 앞에서도 굴복하지 않고 버텨 낸 진짜 ‘불의 속의 하얀 속내’다.
 
 
 
‘다크 워터스’는 놀랍게도 실화다. 이 영화 속 거대 기업 ‘듀폰’ 역시 실제 미국에 존재하는 회사다. 주인공 롭 빌럿(마크 러팔로)도 실제 인물이다. 이 얘기가 실제라면 이 영화 속 핵심이 되는 PFOA(과불화화합물의 일종)도 실제 존재하는 독성 물질이다. 이 물질은 우리 실생활에 아주 가깝게 있다. 프라이팬에 칠해 진 검은 물질이 바로 PFOA다. 인류의 99%가 이 물질에 노출된 상태다. 사건의 시작은 꽤 오래 전이다. 하지만 수면 위로 드러난 것은 1998년. 롭은 미국의 거대 로펌 파트너 변호사로 승격돼 성공의 길 문턱에 섰다. 그 순간 한 사람이 찾아온다. ‘윌버 테넌트’란 이름의 농부. 롭의 고향 사람이다. 롭의 할머니와는 이웃. 할머니의 소개로 찾아온 그는 VHS테이프 박스를 건냈다. 자신의 농장 소가 이유를 모른 체 떼죽음을 당했단다. 롭은 그저 무시한다. 거대 기업 듀폰과 계약 직전이었다.
 
영화 '다크 워터스' 스틸
 
그는 기업 담당 변호사다. 미국 사회 상류층 입성을 눈앞에 두고 있다. 그저 공명심이었을까. 아니면 호기심이었을까. 오랜만에 할머니도 볼 겸 고향에 찾아가는 롭이다. 그 마을은 자신의 기억 속 그 모습이 아니다. 을씨년스럽다. 할머니와의 만남 이후 그는 테넌트를 만난다. 그의 농장 한 켠에 마련된 묘지. 무려 190마리의 소가 떼죽음을 당하고 묻힌 거대한 무덤. 롭은 그때까지도 그저 우연의 일치라고 믿고 싶었다. 듀폰사에 요청했다. 테넌트의 농장 근처에 있는 듀폰사의 쓰레기 매립지. 그 매립지에 대한 정확한 서류를 요청했다. 미국 환경관리국의 ‘문제 없음’ 답변도 받았다. 롭은 테넌트를 설득하기 시작한다. 관리 책임일 뿐이라고. 하지만 그러기엔 상황이 심각하다. 테넌트의 동생까지 듀폰사 쓰레기 매립지 인력으로 고용돼 일을 하다 죽었다. 암이었다. 마을 사람 다수가 암으로 죽었다. 모두가 듀폰사와 연계된 인력들이다. 롭은 의문을 품기 시작한다.
 
영화 '다크 워터스' 스틸
 
의문은 더욱 커지면서 확신이 됐다. 롭과 듀폰은 서로 파트너 단계에서 대립 관계로 뒤바뀌어지기 시작한다. 영화에서 롭이 듀폰을 상대로 의문을 갖기 시작하면서 점차 모든 것의 수위도 높아진다. 변호사로서 직업적 소명이나 일종의 사명감은 드러나지 않는다. 그는 그저 의문으로 시작을 한다. 듀폰과 정부 그리고 그 뒤에 보이지 않는 힘을 느끼면서 그의 의문은 점차 확신으로 변해간다. 그 과정은 드라마틱하지도 않고 극적이지도 않다. 그저 한 꺼풀씩 벗겨지는 양파껍질처럼 속살을 드러내고 검은 민 낯을 드러낼 뿐이다. 검은 민 낯은 부끄러워하지도 무서워하지도 않는다. 진실 앞에서 당당해 하지도 않는다. 그저 존재할 뿐이다. 이 영화가 말하는 진짜 힘은 바로 듀폰이 롭을 굴복시키고 농장주 테넌트가 사는 마을 사람들에게 주입한 ‘절망’이다.
 
영화 '다크 워터스' 스틸
 
우선 마을 사람들은 오랜 시간 동안 듀폰의 자본 권력 아래에서 살아왔다. 그들은 자신들의 먹거리로 존립 자체를 유지시켜 온 듀폰의 검은 속내에는 관심이 없다. 고요한 강물에 돌을 던진 테넌트와 롭의 선택을 멸시하고 증오하고 손가락질 할 뿐이다. 마을 사람들은 자신들도 모르고 누구도 모르는 사이에 듀폰의 자본 권력에 지배되고 길들여진 속성의 근본을 드러낼 뿐이다. 이건 완벽한 절망이고, 패배의 두려움이고 생존의 불합리성이다. 그들은 살기 위해 듀폰의 검은 속내를 불편한 진실 너머에 숨기고 싶어한다. 이 모든 현실이 롭의 지금을 뒤흔들고 압박했다. 단 한 사람이 버티고 막아서기엔 듀폰의 자본 권력은 그 시절 미국 사회를 넘어 언론과 정부까지 쥐고 흔들었다. 연간 10억 달러 이상 수익을 내는 듀폰의 자본 권력은 우리 사회 맥락과 맞닿아 있는 점도 있다. 한 거대 기업이 나라의 경제 자체를 좌우하고, 그것을 빌미로 선악 경계를 자본 권력 아래 깔아 무너트리는 방식은 완벽한 기시감을 가져온다.
 
영화 '다크 워터스' 스틸
 
영화 속 롭이 불꺼진 주방을 뒤지고 프라이팬을 꺼내든 장면은 ‘불편한 진실’이 우리의 삶을 좀 먹고 죽음으로 이끌어 가고 있단 사실을 가리키는 소름 끼치는 장면이다. 이 장면에서 롭의 얼굴과 그의 아내 사라(앤 헤서웨이)의 표정은 두려움과 경악 그리고 마주한 불편한 진실이다. 이건 두 사람의 얼굴이 아니라 우리의 속내고, 우리의 진심이다.
 
영화 '다크 워터스' 스틸
 
‘다크 워터스’는 검은 속내이고 검은 진실이다. 이건 아직도 우리와 함께 한다. 우리 삶이 지배되고 우리 현실이 조종되고 있단 점에서 자본 권력 핵심이 갖는 야만적 이중성은 분명히 치러야 할 죗값을 깨우쳐야 한다. 그게 이 영화의 질문이다. ‘다크 워터스’가 어떤 감정도 드러내지 않고 상황과 현실을 바라보고 있었는지를 깨우쳐야 한다. 이건 끝나지 않은 싸움이다. 개봉은 3월 11일.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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