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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국가정보위원회 설립으로 미래전략 준비해야
국정원 개혁, 본질을 놓쳤다
2017-09-15 07:00:00 2017-09-15 07:00:00
임채원 경희대 교수
북한이 6차 핵 실험을 강행, 사실상 핵 보유국이 됐다. 북한은 경제제재를 감수하는 등 어떤 희생을 치르고라도 핵 보유국의 지위를 인정받으려 한다. 한반도에서 핵을 둘러싼 게임의 법칙이 바뀌었다는 평가도 나온다. 한국 정부가 이런 상황을 예측하지 못하고 미리 대응책을 만들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북한이 핵 보유국 지위를 차지하려고 지난 20년 이상을 일관되게 한 방향을 고집했음에도, 한국 정부는 왜 이 흐름을 놓치고 있었는가.
 
국가정보원을 비롯한 정보기관들의 국가미래전략 부재가 눈에 들어온다. 국가미래전략을 20년 이상 장기적인 관점에서 일관된 흐름으로 추진할 수 있는 정부 기구가 있었다면 지금처럼 하루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우를 범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현 정부 들어 국정원의 적폐청산이 중요한 방향으로 설정됐지만 다음 단계의 국정원 개혁 방향은 무엇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은 놓치고 있다. 불법사찰이나 정치개입을 금지한 다음에 국정원은 어떤 일을 담당해야 할지를 고민해야 한다. 국정원 등 정보기관에 대한 문민 통제의 제도적 장치도 마련돼야 한다. 국정원은 국회 정보위원회의 통제를 받는다지만, 이보다는 상시적으로 민간이 국정원을 통제할 수단을 갖고 있어야 정치개입이나 불법사찰이 근절될 수 있다.
 
미국 국가정보위원회(National Intelligence Council)와 글로벌트렌드(Global Trend) 보고서는 국정원 개혁 방향에 많은 시사점을 준다. 미국 국가정보위원회는 FBI, CIA 등 40여개 정보기관들의 국내외 정보를 바탕으로 20년을 내다보는 미래전략을 수립하고 있다. 학계의 개별적인 미래전략 보고서와 달리 구체적인 현장 정보를 바탕으로 만들어지는 미래전략은 20여년 이상 일관된 흐름의 북한 핵 정책을 놓치지 않았을 것이며, 이를 공론화해 한국사회에 끊임없이 경각심을 제기했을 것이다.
 
물론 미국 정보기관들도 역사적으로는 불법사찰과 정치개입의 오명에서 자유롭지 않다. 1950년대 매카시 광풍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지금 적폐청산 문제로 국민적 지탄을 받는 한국 국정원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미국 정보기관들을 1970년대 말 인권 대통령으로 평가받는 지미 카터가 국가정보위원회를 만들어 문민 통제의 기틀을 잡았다. FBI, CIA 등 전 세계에 걸쳐 있는 미국 정보기관들에 대해 대통령 직속의 국가정보위원회를 통해 통제를 강화했다. 그리고 1990년대부터 이 위원회는 글로벌트렌드 보고서를 발간, 국가전략을 수립하는 기본적인 자료를 세상에 공개했다.
 
글로벌트렌드 보고서는 4년마다 미국 대통령 선거가 있는 해에 발간된다. 11월 미국 대통령 당선자가 확정되고, 12월 국가정보위원회는 글로벌트렌드 보고서를 당선자에게 보고한다. 그리고 다음해 1월 백악관 홈페이지 등을 통해 이를 전 세계에 공개된다. 2016년 11월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되자 12월에는 '글로벌트렌드 2035'가 당선자에게 보고됐다. 이 보고서는 미국 국가정보위원회가 출간한 글로벌트렌드에 관한 6번째 보고서다. '진보의 역설(Paradox of progress)'이라는 부제를 달았다. 지금까지 발간된 보고서 가운데 가장 완성도가 높다.
 
이번 보고서를 만들기 위해 국가정보위원회는 2014년부터 학계와 정보기관 출신 등을 모았다. 프린스턴 대학교의 국제정치학자인 아이켄베리가 좌장을 맡았다. 전 세계에 나가 있는 미국 정보기관 종사자 등 2500명이 보고서를 만드는데 동원됐다. 2년 간의 작업 끝에 보고서가 트럼프 당선자에게 보고됐지만, 트럼프는 민주당의 정치적 경향에 가깝다는 이유로 이를 외면한 것도 사실이다.
 
미국의 국가정보위원회와 글로벌트렌드를 통한 국가미래전략 수립은 한국의 정보기관 개혁 방향에 밑그림을 제공한다. 지금은 국가정보원과 국군기무사령부, 경찰정보국 등 정보와 첩보기관들의 문민 통제가 제도화되어야 할 시점이고, 제도의 설계 방향은 미국 국가정보위원회 모델을 고려할 수 있다. 위원회 구성은 정치적 중립을 위해 정당 추천 방식 등을 진지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 만성적인 불법사찰과 정치개입에 대한 통제를 위해서는 여야가 모두 참여하는 방식이 되어야만 국민적 공감을 얻을 것이다. 그리고 정보기관들이 실제 발로 뛰어 수집한 주변국 정보 내용들을 기초로 글로벌트렌드 보고서와 같은 국가미래전략 보고서를 작성, 이를 국가정책의 기초자료로 삼는 것이 시대적인 과제다.
 
한국에 국가정보위원회가 구성되어 있고 독립적이고 중립적인 미래전략 보고서를 청와대와 국회에 제출할 수 있었다면, 북한이 20년 이상을 일관되게 추진한 핵 정책의 동향을 놓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지금의 정보보고와 같은 일회성이 아닌 미래전략 보고서로 북핵을 모니터링하고 국가정보위원회가 이를 공식적으로 문제 제기했다면, 진퇴양난의 북핵 사퇴는 미연에 방지했을 수 있다. 가장 늦었을 때가 가장 빠른 때다. 국가정보위원회 설립으로 국가미래전략을 제도화할 때다.
 
임채원 경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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