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제주 4·3의 기다림
사회학자 정찬대 박사 특별기고
2026-04-05 15:01:42 2026-04-05 16:47:18
한국의 근대성은 국가폭력으로 점철돼 있다. 일제강점기와 해방 후 미군정기, 그리고 한국전쟁과 오랜 독재정권을 거치면서 다양한 형태의 국가폭력 사건이 발생했다. 특히 민간인 피해를 가장 크게 불러온 건 전쟁이란 특수한 상황 속에서 조직적으로 자행된 민간인 집단 희생 사건이었다. 하지만 민간인 학살의 피해가 비단 한국전쟁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이전에도 전쟁과 같은 대규모 학살과 군경의 토벌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무분별하고 무차별적인 학살은 특정 집단을 표적으로 삼아 절멸의 상태로 나아갔다. 해방 후 ‘붉은 섬’으로 낙인찍힌 제주는 국가권력에 의한 폭력의 전유물이었다. 죽여도 되는, 죽여 없애도 되는 존재로 제주는 규정됐다.  
 
제주 4·3사건은 해방과 분단, 전쟁을 온몸으로 관통했다. 1947년 3·1절 기념대회 발포사건에서 촉발돼 1954년 9월21일 한라산 금족령(禁足令)이 모두 해제될 때까지 7년 7개월간 수많은 이들이 죽임의 대상이 됐다. 제주는 단독정부 수립에 온몸으로 항거했다. 때문에 정권의 정통성에 대한 도전으로 인식됐다. 1949년 1월21일 국무회의에서 이승만 대통령이 “가혹한 방법으로 탄압해 법의 존엄을 표시할 것이 요청된다”고 한 것은 그런 이유에서였다. 제주는 그렇게 고립무원의 섬이 됐다. 
 
자주 독립과 민족 해방을 외친 제주는 비토의 민심이 한데 응축된 공간이었다. 그러나 그 외침의 결과는 참혹했다. 군인과 경찰 그리고 서북청년단 등에 의해 제주 도민 3만여명이 목숨을 잃었다. 전체 도민 10분의 1에 해당한다. 극심한 좌우 대립 속에서 제주는 철저히 도륙됐다.  
 
제주 4·3사건 오라리 방화사건으로 인해 불타는 오라리 모습. 항공사진으로 촬영됐다. (사진=제주4·3평화재단)
 
한국의 이행기 정의와 관련해 제주 4·3사건은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김대중정부 시절인 2000년 1월 ‘제주 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돼 국가 차원의 진상조사가 시작됐고, 2003년 10월 노무현 대통령은 국가의 책임을 인정, 정부를 대신해 공식 사과했다. 한국 현대사에서 제주 4·3이 국가폭력에 대한 진상규명과 명예 회복의 중요한 이정표로 평가받는 건 그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과거사 청산 문제는 늘 반쪽짜리에 머문 채 회복적 정의로 나아가지 못했다. 좌우 이념과 정파성에 가려 가해 책임자를 특정하지 못했고, 그들의 통렬한 반성 또한 전제하지 못했다. 피해자는 있는데 가해자는 없는, 사망자는 있는데 발포 명령자는 없는 기이한 규명이 반복됐다. 그런 측면에서 무엇이 진실이고, 또 무엇을 화해했는지 불분명하다. 
 
지난 3월29일 이재명 대통령이 제주 4·3사건과 관련해 국가폭력 범죄에 대한 형사상 공소시효 및 민사상 소멸시효를 배제하겠다고 발표했다. 국가폭력 가담자에 대한 가해 책임을 끝까지 지우겠다며 강경한 입장도 내비쳤다.
 
이 대통령은 이날 제주를 방문하고 4·3 희생자 유족들과 만나 “이념 갈등의 광풍 속에서 벌어진 반인권적인 국가폭력 범죄로 제주도민의 10% 가까운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며 “영구적으로 대한민국에서는 국가폭력으로 국민들이 희생되는 일이 없도록, 그런 일이 생기면 나치 전범 처벌과 같이 영구적으로 책임지도록 반드시 만들어놓겠다”라고 말했다. 
 
또 같은 날 X(엑스·옛 트위터)를 통해 경찰이 최근 창설 이래 수여된 훈포장 7만여개에 대해 공적 사유 전수조사에 착수한 것을 언급하며 군사독재 시절 고문과 사건 조작 등을 자행한 이들에게 주어진 훈포장 박탈은 당연한 조치라고 강조했다. 
 
제주 4·3사건 당시 산으로 피신한 주민과 아이들. (사진=제주4·3평화재단)
 
국가폭력 사건에 대해 공소시효를 없애야 한다는 주장은 시민사회계가 줄곧 요구해 왔던 목소리였다. 하지만 오랫동안 관철되지 못했다. 오히려 보수 정권하에서 공소시효가 악용돼 피해자의 국가배상을 가로막았다.  
 
제주 4·3사건의 희생자들은 그간 모진 세월을 견뎌왔다. 애끓는 심정으로 진실이 규명되고 명예를 회복하는 그날을 기다렸다. 제주 4·3사건의 상징인 동백꽃의 꽃말은 ‘기다림’이다. 지난 4월3일 제주 4·3평화공원에서 열린 제78주년 4·3희생자 추념식에서 “그 긴 세월 기다림이 결코 헛된 시간이 아니었다는 걸 우린 안다”고 유족들을 위로한 김미경 배우의 사연 낭독은 그래서 더 먹먹함을 준다.
 
정찬대(사회학자)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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