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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병원 'MRI 비용 과다청구' 꼼수 첫 제동(종합)
보험사가 환자 대신해 직접 소송 허용…유사 소송 잇따를 듯
2017-08-16 16:58:05 2017-08-16 17:44:26
[뉴스토마토 최기철 기자]병원이 환자를 상대로 건강보험 적용 대상인 MRI촬영을 ‘비급여 항목’이라고 속여 진단비를 받은 경우, 환자가 계약을 맺은 보험사가 환자를 대신해 병원을 상대로 직접 손해배상금을 지급받을 수 있다는 대법원 첫 판결이 나왔다. 이번 판결로 유사 사례에 있는 보험사들의 병원들을 상대로 한 소송이 잇따를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 2부(주심 조희대 대법관)는 A보험사가 “피보험자를 속여 받은 진단비를 배상하라”며 B병원 원장 서모씨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서씨의 상고를 심리불속행 기각하고, "서씨는 163만5천302원을 반환하라"고 원고승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16일 밝혔다.
 
이번 판결은 두 가지 측면에서 의미가 깊다. 첫째는 일부 병원이 MRI진단 비용의 경우 촬영 부위별로 건강보험 적용을 받을 수 있는데도 환자들이 이를 잘 모르는 것을 악용해 비급여로 진단비용을 받아온 관행에 대법원이 제동을 걸었다는 점이다. 둘째는 종전까지 유사사례의 경우 병원 측에 책임을 물으려면 보험사가 피보험자에게, 피보험자가 병원 측에 순차적으로 소송을 제기해야 했지만, 보험사가 직접 병원 측에 소송을 낼 수 있도록 민법상 채권자대위(제삼자가 다른 사람의 법률적 지위를 대신해 그가 가진 권리를 얻거나 행사함) 요건 판단 기준을 넓게 본 것이다.
 
법원에 따르면, A보험사와 실손보험 계약을 맺은 김모씨는 2010년 10월 조기 축구를 하다가 상대방 선수와의 몸싸움에서 무릎을 심하게 다쳐 B병원으로 후송됐다. B병원은 MRI 촬영이 건강보험급여 대상인데도 김씨에게 “MRI 촬영이 필요한데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기 때문에 한번 촬영에 40만원이 든다”고 속여 1회 촬영 당 진단비를 3배 더 받아 챙겼다.
 
김씨는 일단 자기 돈으로 MRI 촬영 진단비를 낸 뒤 A보험사에 보험금을 청구했고, A보험사는 김씨가 청구한 바에 따라 B병원에 진단비를 지급했으나 이후 B병원이 김씨를 속인 사실을 확인 한 뒤 B병원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다. 이에 1, 2심 재판부는 B병원이 A보험사에게 손해배상금을 지급하라고 판단했지만 대법원은 B병원과 A보험사 사이에 직접적인 계약관계가 없다며 원고승소 판결한 원심을 파기환송했다.
 
그러자 A보험사는 자사와 직접 계약관계에 있는 김씨를 대위해 B병원을 상대로 다시 손해배상을 청구했고, 결국 대법원이 이를 받아들였다.
 
대법원 재판부는 “원고가 채권자 대위로 보전하려는 피보험자에 대한 부당이득반환채권은 피보험자들이 피고에 대해 가지는 부당이득반환채권과 서로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데, 원고가 수십명의 피보험자들을 상대로 일일이 반환청구를 한다면 그 보험금의 회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수 있다”고 판시한 원심 판결을 수긍했다.
 
또 “원고가 피보험자들을 대위해 피고가 부당하게 수취한 부당이득 반환을 구하는 것이 원고 채권의 현실적 이행을 유효 적절하게 확보하기 위해 필요해 보이고, 원고의 채권행사가 피보험자들의 자유로운 재산관리행위에 부당한 간섭으로 보이지 않는 사정까지 감안하면, 채무자인 피보험자들이 무자력이어야 한다는 채권자대위 요건을 엄격하게 적용할 수는 없다고 봄이 상당하다”고 본 원심 판단 역시 그대로 유지했다.
 
그동안 의료업계에서는 MRI 비용에 대해 ‘눈먼 돈’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의료정책에 대한 지식이 적은 환자들은 병원이 요구하는 대로 진단비를 내왔기 때문이다. 보험 업계에서는 일부 병원들이 이 같은 불법행위로 얻는 부당이득금을 수백억으로 추산하고 있다. A보험사 관계자는 “고객들이 매월 MRI 비급여로 청구하는 금액만 해도 월 500~600억 수준”이라며 “이 중 상당수는 건보적용이 됨에도 불구하고 병원들이 비급여로 환자에게 청구한 건으로 분석 된다”고 말했다.
 
이번 소송에서 A보험사를 대리한 법무법인 지평 보험팀의 배성진(사법연수원 28기)·김영수(33기) 변호사는 “이 판결로 병원의 불법행위의 직접 피해자인 환자들이 소송의 부담을 덜게 된 것은 물론, 지급절차가 간단하다는 점을 악용해 먼지 부당이득금을 챙긴 뒤 환자에게 실손보험처리를 강권한 병원들의 탈법행위를 막을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대법원 조형물 '정의의 여신상'. 사진/뉴스토마토
 
 
최기철 기자 lawch@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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