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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숙의 파리와 서울 사이)환부 도려내야 혁신 이뤄진다
2017-06-27 06:00:00 2017-06-27 06:00:00
새 정부가 들어선지 한 달 하고도 보름이 넘었다. 한동안 문재인 대통령의 액션 하나하나는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우리 국민을 환호성 치게 했다. 그러나 차츰 이러한 탄성은 사라지고 여기저기서 잡음이 난무하고 있다. 그 주범은 아마도 청와대 인사일 것이다. 박근혜 정부의 수첩인사를 맹렬히 비난했던 더불어민주당의 인사도 별반 다를 것이 없다는 이야기다. 일각에선 대통령이 겸손한 것 빼고는 전 정부와 다를 게 없다고 비아냥댄다.
 
인사가 만사라는 말이 절대 과장이 아님을 실감한다. 인사는 어느 조직에서나 잘 다뤄야 하는 중차대한 문제이지만 이번 정부는 더욱 혁신적으로 해야 한다. 그 이유는 올바른 인사는 개혁의 시발점이고, 또한 문 대통령이 지난 대선에서 적폐청산의 일환으로 5대 비리관련자는 고위공직에서 배제하겠다는 공약을 걸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 대통령은 이 약속을 지키려는 노력보다 국민 여론에 의지해 장관 임명을 단행하고 있다.
 
그러나 인사를 여론에 맡겨 할 수 있는 문제인가. 언제부터 대한민국이 여론에 모든 것을 걸었는가. 여론은 우를 범하기 일쑤다. 프랑스 사회학자 귀스타브 르 봉(Gustave Le Bon)은 ‘군중심리(Psychologie des foules)’에서 여론을 맹신하는 것을 경계했다. 그는 여론의 특성을 전염성과 휘발성이 강하며 매우 감정적인 것으로 보았다. 이런 여론을 과신하는 것은 절대 금물이다. 문재인 정부는 높은 여론조사 지지율에 기댈 것이 아니라 대선 공약을 지키는 것으로 국민들의 지속적인 신뢰를 얻어야 한다.
 
한국과 비슷한 시기인 지난 6월 중순 출범한 프랑스의 에마뉘엘 마크롱 정부는 지난 주 개각을 단행했다. 우리는 아직 장관 임명을 마치지도 못한 상태인데 프랑스는 부분 개각을 벌써 단행하고 혁신모드로 들어가 탄력을 얻고 있다. 이번 개각의 주된 이유는 마크롱 대통령이 지난 대선에서 크게 쟁점화한 ‘공직자의 도덕성에 관한 법’ 제정과 함께 일부 신임 장관들의 비리의혹이 국민들의 혁신 욕구를 자극했기 때문이다.
 
마크롱 정부는 사실상 중도 정당인 민주운동당(약칭으로 모뎀(MoDem)이라 부름)과 연합해서 탄생한 정부다. 따라서 내각의 장관들 중 모뎀 출신이 3명이다. 그러나 모뎀은 최근 유럽의회 보좌관 허위채용 스캔들에 휘말려 수사 대상이 되었다. 따라서 도덕성에 관한 법률을 추진하고 있는 모뎀 출신 프랑수아 바이루 법무부 장관의 정당성이 위험에 처하게 되었다. 문제가 일파만파 커지자 바이루 장관은 지난 21일 결국 사퇴했다. 그는 “이 밀고는 법을 만드는 나의 명예를 실추시킬 목적에서 시작된 것이다”라고 말했다.
 
바이루는 지난 2월말 마크롱과 대선 후보 단일화를 이뤄 현 정권 수립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물로, 비록 법무부 장관에서 물러나도 대통령 곁에서 계속 역할을 수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나는 판단의 자유, 표현의 자유를 택했고, 또한 도덕성에 관한 법과 민주주의의 신뢰를 택했다. 나는 내가 지지하는 대통령과 정부를 이 거짓 캠페인에 노출되지 않도록 사퇴의 길을 선택한다”고 밝혔다. 모뎀 출신의 실비 굴라르(Sylvie Goulard) 국방부 장관과 마리엘르 드 사르네즈(Marielle de Sarnez) 유럽문제 담당장관 역시 같은 길을 택했다. 프랑스 렉스프레스 신문은 이 사건을 ‘작은 정치적 격동(Un petit seisme politique)’이라고까지 묘사했다.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마크롱 대통령의 오른팔인 리샤르 페랑 영토결속 담당장관도 정부를 떠났다. ‘레퓌블리크 앙마르슈(전진하는 공화국)’의 사무총장이었던 페랑은 지난 5월 말 총선 때 프랑스 풍자 주간지 카나르 앙셰네에 의해, 브르타뉴의 상호공제조합 이사장 시절 회사 공금을 이용해 사적인 부를 창출한 사실이 폭로됐다. 이 때문에 수사 대상이 되었고 이는 국정 추진에 악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어 마크롱 대통령이 사퇴를 요구했다.
 
이러한 마크롱 대통령의 단호한 결정은 스캔들을 둘러싸고 확산되는 모든 비난에 자물쇠를 걸기 위한 전략에서 비롯되었다. 마크롱 대통령은 이 같은 스캔들로 국정이 동력을 잃고 쇄신의 기회를 놓칠 수 있다는 판단을 했고, 그러한 불행한 사태를 차단하기 위해서는 사전에 환부를 도려내고 정부를 청소해야 건설적인 사람들을 규합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처럼 혁신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희생이 필요하고 약속을 이행하는 단호함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렇지 않다면 개혁은 이루어 낼 수 없다.
 
민주당도 지난 대선에서 최대의 이슈로 삼았던 적폐청산을 이행할 진정한 의지가 있다면 우선 공약에 맞는 인사를 고르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인사가 지리멸렬해진다면 지금의 지지율은 어느새 물거품이 될지도 모른다. 프랑스의 마크롱 대통령이 혁신의 신호탄으로 비리에 연루된 4명의 장관을 희생시켰듯이 한국 정부도 개혁에 걸림돌이 되는 장관 후보들이 있다면 이들을 감싸지 말고 과감히 희생시켜라. 적절한 타이밍에 환부를 도려내는 용단이 없다면 혁신은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법이다.
 
최인숙 파리정치대학 정치학 박사
 
* 편집자 주 : 필자 최인숙은 파리에서 10년간 체류했고 파리정치대학(Sciences Po Paris)에서 한국, 일본, 프랑스 여론 연구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최근 프랑스 정치현상을 잣대로 한국의 정치현실 개선에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 책 ‘빠리정치 서울정치(매경출판)’를 펴냈다.
‘파리와 서울 사이’는 한국과 프랑스의 정치·사회현상을 비교 분석하는 연재 코너로 <뉴스토마토> 지면에는 매주 화요일자 23면에 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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