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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숙의 파리와 서울 사이)단호함 없으면 적폐청산 어려워
2017-05-30 06:00:00 2017-05-30 06:00:00
지난주 이낙연 국무총리 후보자를 시작으로 국회 인사청문회가 개막됐다. 문재인 대통령의 개혁의지에 많은 사람들이 폭풍 같은 찬사를 보내던 터라 이번에야말로 진짜 깨끗한 인물들이 발탁될 거라 기대했다. 그러나 정작 청문회를 보니 역대 정부와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다르다면 오직 하나, 청와대가 재빨리 흠결을 인정하고 국민의 양해를 구했다는 것뿐이다.
 
그러나 어디 이게 양해를 구해 될 일인가. 이낙연 후보자(또는 가족)의 위장전입과 탈세, 부동산투기 의혹. 이런 흠결이 비단 한 사람에 그치는가. 강경화 외교부장관·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 측도 모두 위장전입을 한 경험이 있는 게 아닌가. 대한민국의 돈 있고 능력 있는 자들은 모두 이렇게 법질서를 파괴했다는 말인가. 곧이곧대로 살아온 대다수 국민들에게는 여지없이 허탈감과 상실감을 맛보게 하는 장면들이다.
 
사정이야 어떠하든 위장전입은 결코 간과할 수 없는 문제다. 위장이란 ‘본래의 정체나 모습이 드러나지 않도록 거짓으로 꾸미는 것’을 말한다. 이렇게 정체나 모습이 드러나지 않도록 위장한 채 자신의 실익을 추구한 부끄러운 사람들이 정녕 우리의 지도자가 될 자격이 있겠는가. 국민은 절대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왜 이번 정부도 이전과 같은 전철을 밟으려 하는가. 새 정부의 목표는 그 동안 한국을 좀 먹게 했던 적폐를 청산하고 새로운 원칙을 세워 ‘나라다운 나라’를 만드는 것이 아니었던가. 적폐를 이용해 사익을 추구한 인사들을 내각에 지명하는 것은 문재인 정부의 정당성을 크게 약화시키고 말 것이다. 게다가 문 대통령은 병역기피, 부동산투기, 세금탈루, 위장전입, 논문표절자는 고위 공직자로 임용하지 않겠다고 공약을 내걸지 않았던가.
 
지난 5월 중순 꾸려진 프랑스의 새 정부도 우리처럼 인사 논란에 휩싸여 소모전을 벌이고 있다. 에마뉘엘 마크롱을 대통령으로 만드는데 일등 공신으로 활약했고, 지난 대선 캠프 본부장을 지냈던 리샤르 페랑(Richard Ferrand)이 새 내각의 영토결속 담당 장관에 임명되었다. 그러나 프랑스의 풍자 주간지 카나르 앙셰네가 페랑 장관에 관한 비리를 터트려 지난 한 주를 뜨겁게 달궜다. 카나르 앙셰네에 의하면 페랑은 2011년 브르타뉴의 상호공제조합이사장 시절 회사 공금을 이용해 사적인 부를 창출했고, 2014년에는 그의 아들을 보좌관으로 거짓 채용해 총 8700 유로(한화 약 1088만원)를 지급했다.
 
이에 프랑스 언론과 각 정당들은 페랑 사건에 대한 답을 내놓으라고 새 정부에 촉구하고 있다. 특히 장 크리스토프 캄바델리 사회당 대표는 마크롱 정부의 법무부 장관 프랑수아 바이루의 대답을 듣고 싶어 한다. 왜냐하면 지난 대선에서 공화당의 피옹 후보가 자신의 부인을 거짓 채용해 공금을 횡령한 혐의로 프랑스가 들끓었을 때 마크롱 후보는 공직생활의 도덕화(moralisation de la vie publitique)에 관한 법 제정을 공약으로 내 걸었고, 새 정부가 들어선 후 바로 바이루 장관에게 이를 실행하도록 지시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이루 장관은 묵묵부답이고 마크롱 대통령 또한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단지 에두아르 필리프 수상이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페랑을 여전히 믿고 있고, 이 사건에 대한 판단은 유권자가 내려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페랑 장관은 2주 후에 벌어지는 총선에서 브르타뉴 지방 피니스테르 지역의 하원의원으로 출마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페랑 사건은 계속해서 프랑스 사회를 소란스럽게 하고 있어 오는 6월11일과 18일 열리는 총선에서 집권 여당 '레퓌블리크 앙마르슈(전진하는 공화국)’에 적잖은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한국도 프랑스도 이처럼 고위 공직자에 관한 엄격한 채용 룰을 대선 공약으로 내건 상태이지만 실행 여부는 뜨뜻미지근한 상태다. 그러나 새 정부들이 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앞으로의 국정 운영은 결코 순탄치 않을 것이다. 이점을 감안해 새 정부는 이제라도 총리·장관 후보자들의 인선에 좀 더 엄중한 잣대를 대주기 바란다. 혹자는 좋은 인물을 더 이상 찾을 수 없어 인사가 이렇게 되었다고 변명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러한 변명은 더 이상 통용될 수 없다. 성경 구절에 이런 말이 있다. “찾아라 찾을 것이다. 구하라 구할 것이다.” 흠결 없고 능력 있는 사람들을 최선을 다해서 찾아라. 반드시 그런 인물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이런 노력 없이 ‘선거 캠페인과 현실은 다르다’고 어물쩍 넘어가려 한다면 적폐청산은 이번 정부에서도 물 건너가고 만다. 적폐청산을 하려는 진정한 의지가 있다면 적폐를 이용한 거짓된 인물들을 인사에서 배제하라. 시간이 걸리더라도 새 정부의 취지에 맞는 인물을 찾겠다는 의지를 보인다면 국민들은 얼마든지 기다려 줄 것이다. 급한 인사보다 신중한 인사가 새 정부 성공의 지름길이다. 이 점을 절대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최인숙 파리정치대학 정치학 박사
 
* 편집자 주 : 필자 최인숙은 파리에서 10년간 체류했고 파리정치대학(Sciences Po Paris)에서 한국, 일본, 프랑스 여론 연구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최근 프랑스 정치현상을 잣대로 한국의 정치현실 개선에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 책 ‘빠리정치 서울정치(매경출판)’를 펴냈다.
‘파리와 서울 사이’는 한국과 프랑스의 정치·사회현상을 비교 분석하는 연재 코너로 <뉴스토마토> 지면에는 매주 화요일자 23면에 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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