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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사보도)기업부채 2000조 '사상최대'…10대그룹만 900조
10여년만에 150% 급증…국가·가계 이어 기업마저 '비상'
2015-10-14 09:10:00 2015-10-14 09:10:00
우리나라 민간기업이 짊어진 빚이 지난해 기준 2000조원에 육박했다. 사상 최대치다. 2007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체력이 고갈된 가운데 이명박정부의 비즈니스 프렌들리 정책이 부메랑이 되면서 부채가 급격히 늘었다. 국가·가계와 함께 기업마저 적신호가 켜지면서 기업부채가 경제위기를 촉발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취재팀이 지난 한 달 간 심재철 새누리당 의원, 오제세·홍종학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의 도움을 받아 한국은행과 공정거래위원회, 통계청, 금융감독원 등의 자료를 입수·분석한 결과, 지난해 민간기업의 부채는 2002년 이후 147.7% 늘어난 1918조7440억원으로 집계됐다. 총액으로는 지난해 명목 국내총생산(GDP, 1485조960억원)을 훌쩍 넘는다. 가계부채(1085조2590억원)의 두 배 수준이다.
 
지난해 기준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채무를 더한 국가부채는 531조1000억원으로, 기업부채의 3분의 1 수준이었다. LH공사(부채 138조930억원)와 한국전력(부채 111조6700억원), 도로공사(부채 26조5510억원) 등 주요 공기업의 부채를 더할 경우 국가부채는 1125조2000억원으로 불어나지만, 기업부채에 비하면 절반(58.6%) 수준이다.
 
기업 규모별로는 공정위 기준 자산 5조원 이상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 49곳(공기업 제외)의 부채가 1346조2610억원으로, 전체 기업부채의 70.1%를 차지했다. 시가총액 상위 10대 그룹의 부채는 896조9880억원으로, 전체의 46.7%였다.
 
자료/한국은행, 통계청
 
이에 대해 전국경제인연합회를 비롯한 재계는 기업의 부채가 투자를 위한 대출금이라는 특성을 고려, 부채가 늘었더라도 수익만 꾸준하다면 부채 증가는 걱정할 문제가 아니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기업의 매출과 부채 증가율을 따지면 부채 오름세는 염려 수준을 넘는다.
 
2002년부터 지난해까지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의 매출과 부채를 비교 분석한 결과, 평균 매출액은 114.5% 증가했으나 평균 부채액은 150.9% 늘었다. 같은 기간 자산 상위 10대 기업집단의 평균 매출액은 144.7% 올랐지만 평균 부채액은 160.2% 많아졌다. 
 
특히 2010년부터 지난해까지 5년간 시가총액 상위 10대 기업집단(삼성, 현대차, SK, LG, 롯데, 포스코, GS, 현대중공업, 한진, 한화) 가운데 매출보다 부채가 더 많이 늘어난 곳은 8곳이나 됐다. 반면 매출이 부채보다 더 많이 증가한 곳은 SK와 GS, 2곳뿐이다.
 
이 같은 민간기업 부채는 2000년대 중반 글로벌 금융위기와 이명박정부를 거치며 눈에 띄게 증가했다. 한국은행 자료를 보면, 글로벌 금융위기와 맞물린 시점에서 정부가 인위적인 경기 부양을 위해 고환율 기조를 유지하면서 원화가치가 떨어져 외화환산손익이 급격히 악화됐다.
 
비즈니스 플렌들리를 강조한 이명박정부는 기업의 자금 조달을 돕겠다며 대출 규제들도 완화했다. 그 결과, MB정부에서 기업에 대한 은행권 대출 증가율은 50.6%를 기록해 참여정부 때의 증가율(40.5%)을 크게 웃돌았다. 대기업 중심으로 자금은 풀렸지만 장담했던 낙수효과는 없었다. 되레 기업의 부실화만 앞당겼다.
 
민간기업 부채가 우려 수준을 넘어 부실화 지경에 이르면서 국가경제가 또 다시 휘청거릴 수 있다는 지적이다. 김석기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전체 기업들의 수익성과 성장성이 정체되는 상황에서 부채가 계속 오르면 기업의 건전성을 보장하지 못하고 산업 전반과 경제 전체에도 심각한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최병호 기자 choibh@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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