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만 공무원·1000만 흡연자는 증세..40만 종교인에는 눈치
2014-11-26 16:40:40 2014-11-26 16:40:40
[뉴스토마토 최병호기자] 공무원연금 개혁과 담뱃값 인상을 밀어붙이며 기세등등하던 정부의 증세논의가 종교인 과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한풀 꺾인 모양새다.
 
그러나 정부가 공무원과 흡연자의 증세에는 강경하고 종교인에는 눈치를 보는 상황은 만만한 국민만 봉으로 삼아 서민 증세를 추진한다는 지적을 낳는다. 아울러 담뱃값 인상 등 다른 증세논의까지 힘을 잃게 만들고 조세정의 자체까지 흔들 수 있다는 지적이다.
 
26일 기획재정부와 새누리당에 따르면 정부는 내년부터 종교인의 소득 중 80%는 종교 활동비로 인정하고 나머지는 주민세 등의 명목으로 걷는 소득세법 개정안을 추진 중이다.
 
전국의 직업 종교인은 2012년 기준으로 약 38만명인데, 소득세법 개정안대로 과세할 경우 재정부족 해결에 도움이 될 전망이다. 이에 박근혜정권은 정권 초기부터 종교인 과세를 적극 검토하면서 지난해 9월에는 종교인 과세안이 담기 소득세법 개정안도 마련했다.
 
◇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조세소위원회(사진 왼쪽)과 정부세종청사(사진 오른쪽)(사진=News1, 뉴스토마토)
 
하지만 개신교를 중심으로 한 종교계의 반발이 심해 개정안 처리가 1년째 미뤄졌다.
 
정부와 여당은 최근에도 천주교, 개신교, 불교계와 간담회를 열고 종교인 과세 문제를 논의했으나 속 시원한 합의안을 도출하지 못했다. 자칫 개정안 처리가 올해를 넘기면 사실상 이번 정권에서는 종교인 과세 논의가 공론화되기 어렵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참여연대 관계자는 "종교인 과세는 조세정의를 실현한다는 측면에서 민주주의와 헌법질서의 유지와 관련되는 중요한 문제"라며 "올해도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내년부터는 총선과 다음 대선을 의식해 종교인 과세 논의가 싹 사라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문제는 종교인 과세를 둘러싼 정부와 여당의 태도가 공무원연금 개혁과 담뱃세 인상을 추진할 때와는 판이하게 다르다는 점이다. 만만한 공무원과 국민에는 증세를 밀어붙이더니 종교인에는 눈치를 보며 정부가 알아서 비위를 맞춘다는 지적이 나올 정도다.
 
우선 정부와 여당이 종교인 과세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종교계와 간담회를 자청한 모습부터가 그렇다. 더구나 정부와 여당은 지난해 제시한 종교인 과세안에 대해 종교들인이 반발하자 '원천징수'를 '자진 신고·납부'로 변경하고 일부 세목을 바꾼 수정을 제출했다.
 
올해 9월 기습적으로 담뱃값 인상안을 발표하고 공무원연금 개혁에서는 공무원의 의견수렴을 배제한 연금 개편안을 제시하며 연내 처리를 강행하는 모습과는 정반대인 셈.
 
정부와 여당이 줄기차게 공무원연금 개혁과 담뱃세 인상을 주장했고 재정효과를 인정한 새정치민주연합도 이에 동조한 것과 달리 종교인 과세에는 정부와 여당, 심지어 야당도 언급을 삼가고 있다. 혹시라도 종교인의 심기를 건드리고 표를 잃을까 눈치를 보는 것.
 
실제로 지난 23일 새정치민주연합 우윤근 원내대표는 "종교인 과세를 당론으로 논의한 적 없다"며 종교인 과세에 대해 유보적인 태도를 내비쳤고, 새누리당의 강석훈 의원도 "정부가 종교계를 설득하는 방향으로 종교인 과세 논의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이처럼 정부와 여·야 정치권이 종교인의 표심과 후원금 등을 의식해 종교인 과세에 우유부단하게 대처하면 담뱃값 인상 등 다른 증세논의 역시 힘을 잃는 다는 지적이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 관계자는 "지난해 9월 정부가 낸 소득세법 개정안과 종교인의 지적을 반영한 수정안을 비교하면 내용적으로 크게 후퇴했다"며 "종교인 과세가 저지되면 근로자의 소득도 과세할 수 없고 국가의 세금 징수가 불가능해진다"고 주장했다.
 
종교인의 약 83%가 연 소득 3000만원 이하인 상황(개신교 기준)에서 과세에 따른 재정수입은 어차피 크지 않지만 조세정의 차원에서 이 문제를 다뤄야 한다는 설득도 나온다.
 
국회예산정책처 관계자는 "종교인 대부분이 교단에 속했고 여기서 나오는 급여가 매우 적다는 점을 고려하면 과세에 따른 세수효과는 미미할 것"이라며 "그러나 국민개세주의(國民皆稅主義) 실현과 미래 과세기반 확충이라는 점에서는 결단이 필요하다"이라고 말했다.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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