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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 북리뷰)88만세대, 저항하거나 만족하거나..'표백'
장강명 지음, 한겨레출판 펴냄
2011-09-05 15:10:56 2011-09-05 15:11:53
[뉴스토마토 송종호기자] 누구나 한번은 읽어 본 이양하의 <신록예찬>의 배경이 되는 연세대 청송대는 아직도 싱그러운 ‘청춘’이 그 신록을 뽐내고 있다. 신록 사이사이 젊은 연인들은 사랑을 속삭이고, 또 누군가는 책을 통해 미대륙과 유럽을 누빌 꿈을 꾼다. 다른 이들은 막걸리에 기타를 벗삼아 노래를 부르며, 다시 시작된 새학기의 새 출발을 즐거워한다. ‘88만원세대’담론과 대학등록금이 그들의 짐이더라도 그들은 여전히 싱그럽고 활기차다.
 
▲ <표백> (장강명 지음,
한겨레출판 펴냄)
그런 그들이 어느날 약속이나 한 듯 자살을 한다고 가정하자. 매일같이 자살을 선언하고, 자살은 유행이되고, 한국서 시작된 연이은 청춘들의 자살은 일본과 중국에 이어 헝가리에서도 이뤄진다. 어느 일간지에는 “88만원세대,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워라”라는 칼럼이 실린다. 그래도 죽음의 행렬은 계속된다.
 
갈 길을 잃은 그들에게 죽음을 그만둬라, 자살선언에 맞서 정교하고 치밀한 논리를 준비한다. 그렇다면 자살을 막을 논리는 무엇일까?
 
동아일보 기자로서 제16회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한 장강명의 <표백>은 우리 시대의 젊은이들이 부딪치는 한계에 대항하는 극단의 행동을 소설로 형상화했다. 그러나 자살을 막을 논리는 말하지 못한다.
 
“1980년대에는 대학생들이 정치의 상당 부분을 담당했고, 1990년대에는 대학생들이 대중문화의 중심이었지. 지금 우리는 뭘까? 아무것도 아니야. 작은 유행 하나 만들어내지 못해. 이렇게 형편이 어려운데도 반항 정신이나 독립심조차 이전 세대에 못 미치지.”(p40)
 
작가는 지금 청년들에게 꿈도 없이 살아간다며 질타하고 있다. “청년 연대니 청년 노조니 하는 단체가 우스워 보인다..(중략)..나중에 그런 단체를 만들 수는 있겠으나 단체를 만들기 전에 먼저 새롭고 강력한 강령을 정해야 했다”(p331)
 
광화문에서의 촛불시위도 열패감 때문이라고 꼬집는다. “열패감을 극복하기 위해 붉은 티셔츠를 입고 국가 대표 축구 선수들을 응원하거나 촛불을 들고 광화문에 모였던 게 아닌가.(p19)”
 
소설의 등장인물인 세연이 내놓는 잡기의 내용을 통해 작가는 정확하게 현 상황을 묘사한다. “돈을 얼마나 많이 버느냐를 놓고 벌이는 시합에서도 ‘표백 세대’는 좌절할 수밖에 없다. 완성된 사회는 가능성이 그만큼 고갈된 사회기 때문에, 부를 창출하는 능력에서도 성숙한 단계에 있다. ...(중략)...완성된 사회의 경제성장률은 이론적으로 0퍼센트에 가까워야 한다. 즉 표백 세대들은 아주 적은 양의 부를 차지하기 위해 이전 세대들과는 비교도 안 되는 경쟁을 치러야 한다”(pp195~196)
 
꿈이없이, 기성세대가 만들어놓은 규칙에 따라 표백되어가는 표백세대. 꿀 꿈이 없고, 넘어서야 할 고지도 안보인다.
 
어렵사리 7급 공무원 시험에 합격한 주인공은 현실에 적응해 살아가고 있고, 6개월안에 주요 언론사 합격을 장담하던 주인공의 친구는 이름없는 주간지 기자로 타사 기자들로부터 노골적인 무시를 당하면서도 만족한 기자의 삶을 살아간다. 두 사람만이 죽음의 행렬에 동참하지 않았다.
 
작가는 여전히 주인공을 통해 삶을 버리기보다는 다시 오는 '태풍'을 기다리자고 메시지를 보낸다.
 
“세상을 완전히 바꿔버리는 힘은 이제 없을 수도 있지만 우리시대에 태풍은 곧 몇 번 들이치리라 생각한다. 그때 그 에너지를 이용하면 여러 가지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아주 많은 일을. 그건 그 에너지를 어떻게 이용하느냐에 달려 있다”(p332)
 
그러나 일제시대, 군부 독재시절에 시대에 맞서지(자살하지) 말고 '태풍'을 기다리라고 한다면 공감을 얻을수 있었을까?
 
작가(작가는 연세대 출신이다)가 거닐었던 연세대의 백양로를 20여년 전 걸으며, 같은 세대를 위로하고, 아파할 줄 알았던 시인 기형도가 무척이나 그립다.
 
나무의자 밑에는 버려진 책들이 가득하였다.
은백양의 숲은 깊고 아름다웠지만
그곳에서는 나뭇잎조차 무기로 사용되었다
그 아름다운 숲에 이르면 청년들은 각오한 듯
눈을 감고 지나갔다. 돌층계 위에서
나는 플라톤을 읽었다. 그때마다 총성이 울렸다
목련철이 오면 친구들은 감옥과 군대로 흩어졌고
시를 쓰던 후배는 자신이 기관원이라고 털어놓았다
존경하는 교수가 있었으나 그분은 원체 말이 없었다
몇 번의 겨울이 지나자 나는 외톨이가 되었다
그리고 졸업이었다. 대학을 떠나기가 두려웠다
기형도, <대학시절>
 
나뭇잎조차 무기로 사용될 수 밖에 없던 시절로부터 20여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대학을 떠나기가 두려운 청춘들에게 작가가 말하는 '태풍'이 무슨의미로 받아들여질지 궁금하다. 
 
 뉴스토마토 송종호 기자 joist1894@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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