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남윤서 기자] "난민으로 인정됐다는 통보를 받자마자 가자지구에 계신 아버지에게 가장 먼저 전화했습니다. 가족 모두가 3년 넘게 이 소식을 기다려왔으니까요."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출신 살레 알란티시(29)씨는 지난 16일 법무부로부터 난민 인정 결정을 통보받았습니다. 2023년 3월 난민 신청서를 낸 지 약 40개월 만입니다.
살레씨는 가자지구에서 네 차례가 넘는 전쟁과 장기간의 봉쇄를 겪었습니다. 안전한 삶을 찾아 2022년 말 한국에 왔고, 이듬해 3월 난민을 신청했습니다. 하지만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체류와 취업이 불안정해 미래를 계획하기 어려웠습니다.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했지만, 일자리를 구하는 건 엄두도 내지 못했습니다.
기나긴 터널 끝에 마침내 난민 지위를 얻으면서 그의 삶에도 희망이 비치기 시작했습니다. 한국에서 안정적으로 일할 제도적 기반이 생겼고, 국민건강보험 적용도 받게 됐습니다. 현재 살레씨는 가자지구 밖에 머무는 아내를 한국으로 데리고 오기 위한 가족 결합 절차를 밟고 있습니다.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출신 살레 알란티시씨가 지난 16일 난민 신청 40개월 만에 난민 지위를 인정받았다. (사진=살레 알란티시씨 제공)
살레씨는 지난 29일 <뉴스토마토>와 화상으로 만나 40개월에 걸친 심사 과정의 기다림과 앞으로의 계획 등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그는 "면접 한 번을 보기 위해 3~4년을 기다리는 것은 불합리하다"며 "난민에게 필요한 건 동정보다 이해와 존중이다. 한국에서 일하고 함께 살아갈 기회가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다음은 살레씨와의 일문일답.
2023년 3월 신청서를 낸 뒤 난민 지위를 얻기까지 40개월이 걸렸습니다. 심사 과정은 어땠나요.
난민 신청 절차를 직접 찾아보고 한국인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신청서를 작성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가자지구를 떠날 때까지 저와 가족이 겪은 일을 상세히 설명하고 입증해야 해 신청서 작성에만 일주일 넘게 걸렸습니다. 이후 인천출입국·외국인청에 신청서와 관련 증거자료를 제출했습니다.
하지만 1년쯤 지나서 진행 상황을 물었지만 당국은 '기다리라'는 답변뿐이었습니다. 심사가 지연된 사유나 향후 일정에 대한 설명은 전혀 없었어요. 결국 지난해 10월 첫 면접, 12월 두 번째 면접을 거쳐 올해 7월에야 비로소 난민 인정 통보를 받았습니다.
첫 면접까지 무려 2년7개월이 걸렸습니다. 결과를 알 수 없는 불확실성 속에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무엇이었습니까.
난민 인정 여부와 결정 시점을 알 수 없다는 점이 가장 힘들었습니다. 결과가 언제 나올지 모르는 상태에선 미래를 계획하거나 안정적인 생활을 시작하기 어렵습니다. 2023년 10월 가자지구 전쟁이 본격화된 뒤에도 심사는 눈에 띄게 빨라지지는 않았습니다. 당국을 찾아가 진행 상황을 물을 때마다 '기다려야 한다'는 말만 들었습니다.
법무부가 살레씨를 난민으로 인정한 결정적 사유는 무엇이라고 보시나요.
최근 발생한 전쟁 자체가 직접적인 요인은 아니었다고 봅니다. 다만 전쟁으로 가자지구의 집이 완전히 무너지고 친척 여럿이 목숨을 잃은 사실은 '귀환 시 생명의 위험'을 입증하는 객관적 정황이 됐습니다. 제가 이해하기로는 한국에서 해온 정치·인권 활동이 난민으로 인정된 가장 중요한 이유였습니다. 당국은 팔레스타인 주민의 권리를 옹호해온 제가 가자지구로 돌아갈 경우 직접적인 위험에 처할 수 있다는 점을 중요하게 본 것 같습니다.
지난 16일 난민 인정을 받은 가자지구 출신 살레 알란티시씨가 국제앰네스티 행사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살레 알란티시씨 제공)
심사가 지연돼 변호사도 알아봤지만 수백만 원에 달하는 비용 때문에 선임하지 못했다고 들었습니다.
다행히 공익법센터 어필 소속 변호사께서 법률 검토를 맡아주셨습니다. 제가 한국에서 펼친 정치·인권 활동과 가자지구로 돌아갈 경우 직면할 위험성을 난민 인정 요건에 맞춰 정교하게 정리한 법률 의견서도 제출해 줬습니다. 면접을 준비하고 당국에 제 사건의 핵심을 설명하는 데도 도움을 줬습니다.
난민으로 인정된 이후 구체적으로 무엇이 달라졌나요.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입니까.
한국에서 안정적으로 일하고 소득을 얻을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됐습니다. 난민 인정 전엔 선택할 수 있는 일자리가 제한적이었습니다. 경영학을 전공했지만 관련 분야의 일자리를 구하기도 어려웠습니다. 이제 국민건강보험에 가입할 수 있고 아내를 초청하기 위한 가족 결합 절차도 준비할 수 있게 됐습니다. 절차를 마치면 아내와 함께 한국에서 안정적인 삶을 시작하고 싶습니다.
이번 난민 인정엔 어떤 의미가 있나요. 또 한국의 난민제도가 개선돼야 할 점은 무엇인가요.
한국 정부가 가자지구 출신인 저의 상황과 귀환할 경우의 위험성을 살폈고, 난민으로서 보호할 필요하다고 판단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이번 결정이 가자지구로 돌아가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희망이 됐으면 합니다.
하지만 면접 한 번을 보기 위해 3~4년을 기다리는 건 불합리합니다. 심사를 더 빠르게 진행해야 하고, 난민 신청자에겐 진행 상황을 분명히 알려줘야 합니다. 한국 사회도 난민을 '도움을 받으러 온 사람'으로만 보지 않았으면 합니다. 난민에게 필요한 건 동정보다 이해와 존중, 그리고 한국에서 일하며 함께 살아갈 기회입니다.
남윤서 기자 nyyyseo@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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