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백겸 기자] 정부가 삼성전자 파업을 막고자 긴급조정권 행사를 검토하고 있지만, 법조계와 노동계에선 '파업 이전 긴급조정이라는 선제적 조치는 위법하다'고 주장합니다. 역대 긴급조정은 모두 파업이 벌어진 뒤 나온 데다 헌법재판소 역시 '긴급조정은 파업이 진행되고 난 이후 발동될 수 있다'고 판단한 바 있어서입니다.
최승호 삼성그룹 초기업노조 위원장이 18일 정부세종청사 중앙노동위원회에서 열린 삼성전자 노사 간의 2차 사후조정 회의 중 오전회의를 마치고 회의장을 나서고 있다. (사진=뉴시스)
18일 삼성전자 노사는 초기업노조 삼성전자지부가 파업을 예고한 21일을 앞두고 사실상 마지막 교섭에 들어갔습니다. 이번 교섭마저 결렬될 경우 정부는 긴급조정권을 행사하겠다는 입장입니다.
이날 이재명 대통령도 엑스(X·옛 트위터)를 통해 "노동권만큼 기업 경영권도 존중돼야 한다"면서 "모든 국민의 기본권은 보장되지만 본질적 내용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공공복리 등을 위해 제한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전날(17일) 김민석 국무총리가 대국민 담화를 통해 긴급조정권 발동을 예고한 것과 같은 맥락으로 풀이됩니다.
긴급조정권은 노조의 파업·쟁의행위가 국민의 일상생활을 위태롭게 할 위험이 있거나 국민경제를 해칠 우려가 있을 때 발동되는 조치입니다. 고용노동부 장관이 긴급조정권을 발동하게 되면 중앙노동위원회는 30일간 강제조정 절차에 들어갑니다. 그동안 노조는 쟁의행위를 할 수 없게 됩니다. 사실상 정부가 파업을 중단시킬 수 있는 조치인 셈입니다.
정부는 마지막 교섭마저 결렬될 경우 긴급조정권을 행사하겠다는 입장입니다. 한국경영자총협회 등 재계도 파업으로 공장이 멈출 경우 하루 최대 1조원 규모의 생산 차질이 발생할 수 있다고 주장, 정부가 긴급조정권을 발동해야 한다면서 거들고 있습니다.
그러나 법조계와 노동계는 선제적 긴급조정은 법적 요건에 맞지 않다고 지적합니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76조(긴급조정의 결정)엔 "쟁의행위가 공익사업에 관한 것이거나 그 규모가 크거나 그 성질이 특별한 것으로서 현저히 국민경제를 해하거나 국민의 일상생활을 위태롭게 할 위험이 현존하는 때에는 긴급조정의 결정을 할 수 있다"고 규정했습니다. 즉, 삼성전자 노사가 갈등하는 현재 상황은 '공익사업'에 해당하지도 않고, '위험이 현존하는 때'도 아니라는 말입니다.
전국삼성전자노조를 대리하는 안우혁 변호사(법률사무소 지담)는 "긴급조정은 '위험이 발생할 우려'가 아닌 '위험이 현존하는 때'가 요건인데, 사전 발동은 요건을 불충족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습니다.
실제로 역대 긴급조정은 파업이 벌어진 후 발동됐습니다. 역대 긴급조정이 발동된 건 네 차례입니다. △1969년 대한조선공사 파업 △1993년 현대자동차 파업 △2005년 아시아나항공 파업과 대한항공 파업 등입니다. 대한조선공사 긴급조정은 파업 후 78일 만에, 현대자동차의 경우엔 파업 40일이 지나서 발동됐습니다. 아시아나항공 긴급조정은 파업 24일 만이었습니다. 가장 빨리 발동됐던 대한항공 파업도 3일이 지난 시점에서였습니다.
헌재도 지난 2011년 노조법의 필수유지업무 관련 조항에 대한 위헌 소원 결정문을 통해 '긴급조정은 파업 등이 진행되고 난 이후에나 발동될 수 있다'고 판단한 바 있습니다.
노동계에선 정부가 긴급조정권을 행사할 경우 대정부 투쟁에 나서겠다는 입장입니다. 이번 사태가 노·정 관계 전체로 확산될 가능성이 큰 겁니다. 금속노조는 지난 14일 성명을 통해 "노동 3권을 난도질하는 행태를 용납할 수 없다"며 "정부가 노동자의 쟁의권을 파괴할 경우 투쟁에 나설 것"이라고 했습니다.
김백겸 기자 kbg@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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