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신다인 기자] 임신 36주차에 제왕절개로 태아를 출산된 뒤 사망에 이르게 한 사건을 두고, 살인죄의 고의가 인정될 수 있는지가 법적 쟁점으로 떠올랐습니다. 낙태죄 헌법불합치 이후 임신중절의 허용 범위가 공백인 상황에서, 검찰은 낙태에 이어 태아를 죽음에 이르게 한 산모에게 살인 혐의로 징역 6년을 구형하면서입니다. 앞서 대법원은 과거 판례에서 산모가 '태아가 살아서 출산했다'라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했다면, 영아살해의 고의를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한 바 있습니다.
여성단체와 보건단체 등 낙태죄 폐지 1년 4.10 공동행동이 2022년 4월10일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집회를 열고 유산유도제 즉각 도입, 임신중지 의료행위에 대한 건강보험 적용, 재생산 및 성에 관한 건강과 권리 포괄적 보장 등을 촉구했다. (사진=뉴시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3부(재판장 이진관)가 26일 연 결심공판에서 검찰은 낙태 후 태아를 사망케 한 산모 권모씨에겐 징역 6년을, 수술을 집도한 병원장과 의사에겐 각각 징역 10년과 6년을 구형했습니다. 이들은 지난해 6월 임신 34~36주차인 권씨에게 제왕절개 수술을 해 태아를 출산하게 한 뒤, 미리 준비한 사각포로 덮어 냉동고에 넣어 살해한 혐의를 받습니다. 사건은 권씨가 스스로 유튜브에 수술 후기를 올리면서 불거졌습니다.
이 사건은 낙태죄에 대한 입법 미비와 엮여 있습니다. 2019년 4월 헌법재판소가 낙태죄에 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후 아직까지 입법이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이에 임신중절에 관한 명확한 처벌 규정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검찰은 이 사건을 임신중절이 아닌 살인으로 규정했습니다. 결심공판에서 이종혁 검사는 "제왕절개 수술에서 마취나 처치가 시작되면 '분만'으로 본다는 것이 기존 판례 취지"고 했습니다. 분만 이후의 태아는 형법이 보호하는 '사람'이라는 겁니다.
반면 권씨 측은 입법 공백 속에서 발생한 사건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살인의 고의를 부정했습니다. 권씨의 변호인은 최종변론에서 "권씨는 수술 시작과 동시에 전신 마취 상태였고, 살아서 태어난 아이를 죽이려는 고의가 없었다"며 "이 사건은 2019년 헌재의 낙태죄 헌법불합치 판결 이후에도 방치된 제도적 공백과 임신·출산 체계 부재의 상황에서 벌어졌다"고 주장했습니다. 권씨 역시 "수술 과정에서 아이가 살아서 나올 것이라고 알았다면 미혼모 시설에서 출산했을 것"이라며 "(임신중절 수술에 대해) 태아에게 약물을 투입해 사산시킨 뒤 출산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었다"고 했습니다.
결국 사건의 핵심 쟁점은 살아서 태어난 아이를 살해하려는 인식과 의도가 있었는지 입니다. 앞서 2021년 대법원은 태아가 살아서 출산됐다는 사실을 산모가 인식하지 못했다면 영아살해죄의 고의를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한 바 있습니다. 당시 의사 A씨는 34주차에 제왕절개로 태어난 아기를 살해한 혐의로 1심에서 징역 3년6개월을 선고받았습니다. A씨는 2020년 항소심에서 임신중절을 의뢰한 산모와 모친 역시 영아살해죄의 공동정범으로 처벌돼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는 "산모와 그 모친 모두 이 사건 태아가 살아서 출산된 사실을 모르고 있었으므로, 그들에게 영아살해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사건은 대법원까지 올라갔지만, 원심이 유지됐습니다.
한편, 22대 국회에서는 낙태죄 헌법불합치 이후의 입법 공백을 메우기 위한 논의가 이어지고 있지만 속도가 나지 않고 있습니다. 현재 국회에는 4건의 모자보건법 개정안이 발의됐으며, 이 가운데 3건은 수술뿐 아니라 약물에 의한 임신중지를 허용하고, 임신중절에 있어 주수에 제한을 두지 않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신다인 기자 shin123@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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