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보다 가족이 먼저 왔다)①(단독)5년간 '동성 혼인신고' 86건…법원서 전부 '반려'
5년간 86건의 '불수리 증명서'…반려 알면서도 구청 찾는 동성부부들
여성 간 혼인신고는 74건, 남성의 6배…서울·경기 등 수도권이 '80%'
혼인평등 소송 오수·선우비(가명)씨…"20년 같이 살았는데 남인가요?"
2026-06-09 16:52:29 2026-06-09 18:04:46
[뉴스토마토 신다인 기자] 6월은 성소수자 인권의 달인 '프라이드 먼스(Pride Month)'입니다. 세계 곳곳에서는 동성혼이 합법적으로 인정되고 있지만, 한국에서는 여전히 혼인 평등 소송이 진행 중입니다. 그러나 법적 승인보다 먼저 가족을 구성해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뉴스토마토>는 혼인 평등 소송 현황을 점검하고, 이들의 목소리를 듣고, 한국 사회 가족의 변화를 살펴봤습니다. 이를 통해 한국 사회 동성 부부들의 현실과 법적·제도적 한계, 그리고 통계적 변화를 다각도로 조명하고자 합니다. (편집자)
 
"은퇴를 앞두고 나서야 사랑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제 파트너는 부산으로 내려와 20년 넘게 저를 돌보고, 함께 삶을 꾸렸습니다. 그런데 제가 아프거나 먼저 세상을 떠난다면 이 사람은 법적으로 아무런 보호를 받지 못합니다. 상속도, 돌봄도, 병원에서의 결정권도 보장되지 않죠. 그래서 이제는 단순히 '우리끼리 잘 살면 된다'가 아니라 국가가 우리 관계를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20년 넘게 동성 배우자와 함께 산 오수(가명·60대)씨의 고백입니다. 오수씨는 지난 2005년 선우비(가명·50대)씨를 만나 자연스레 연인으로 발전했고, 가족이 됐습니다. 같이 식사를 하고, 휴일에는 광안리 해변을 산책합니다. 반려동물을 키우고, 명절에는 양가를 오가며 인사를 드렸습니다. 여느 이성 부부와 다를 바 없는 일상입니다.
 
하지만 두 사람은 법적으로 가족이 아닙니다. 현행 민법엔 동성 간 혼인을 금지하는 명문 규정이 없지만, 법원이 혼인을 '남녀의 결합'으로 해석한 기존 판례와 관행을 고수하며 동성 간 혼인신고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습니다. 헌법 제36조에 "혼인과 가족생활은 개인의 존엄과 양성(兩性)의 평등을 기초로 성립되고 유지돼야 하며, 국가는 이를 보장한다"고 된 탓입니다.
 
법적으로 배우자 지위를 인정받지 못하다 보니 오수씨는 10년 전 선우비씨에게 재산 공증을 했고, 지난해에는 유언장도 다시 썼습니다. 혹시 모를 장례 절차와 재산 상속 문제에 대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또 괌에서 다른 동성 부부와 함께 합동결혼식을 올리고, 혼인 증서를 받기도 했습니다. 
 
선우비씨는 "공증 비용만 해도 거의 100만원 가까이 들었어요. 괌에 가서 결혼 증서를 받아온 것도 결국 우리가 가족이라는 걸 어떻게든 증명하기 위해서였어요. 한국에선 법이 인정해주지 않으니까 개인이 직접 준비해야 하는 거죠”라고 했습니다.
 
오수씨와 선우비씨가 지난해 다른 동성 부부들과 함께 '혼인 평등 소송'에 참여하게 된 계기도 이런 제도적 소외감 때문이었습니다.
 
오수씨는 "직장에서 상을 받을 일이 있었는데, 파트너는 저한테 축하도 못하고 멀리서 사진만 찍고 있더라"며 "그 모습을 보는데 20년 동안 제 옆을 지킨 사람에게 너무 미안했다"고 털어놓았습니다. 그러면서 "제가 투사여서가 아니다. 그냥 20년간 같이 산 우리 두 사람에 대해 법적 인정을 받고 싶을 뿐"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오수씨와 선우비씨가 지난해 괌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찍은 사진. (사진=선우비씨)
 
전국에서 이어지는 동성 혼인신고…과반수는 여성 간
 
과거 동성 부부들은 구청 창구에서 혼인신고 접수 자체를 거부당하기 일쑤였습니다. 하지만 지난 2020년 김규진 작가가 이 문제를 공론화한 이후, 2022년 가족관계등록 전산시스템이 개편되면서 현재는 동성 간에도 혼인신고서 '접수' 자체는 가능해졌습니다. 다만 동성혼이 인정되지 않기에 예외 없이 '불수리 통지서'로 돌아옵니다.
 
이처럼 여전한 제도적 장벽으로 인해 법적으로 혼인이 인정받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혼인신고를 시도하는 동성 부부들은 꾸준히 늘고 있습니다. 손솔 진보당 의원실이 대법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2년 3월부터 올해 5월까지 접수된 동성 간 혼인신고는 총 86건이었습니다. 
 
연도별로는 △2022년 10건 △2023년 13건 △2024년 35건 △2025년 18건 △2026년(5월 기준) 10건 등입니다. 2023년과 2024년 사이 건수가 급증한 건 이 시기를 기점으로 혼인 평등 소송이 본격 제기됐기 때문입니다. 
 
특히 동성 간 혼인신고는 지역별로 서울 50건, 경기 14건, 인천 5건으로 수도권이 전체 혼인신고의 80.2%를 차지했습니다. 이어 △부산·대구 각 3건 △대전·광주 각 2건 △울산·강원·충북·충남·경북·전북·제주 각 1건 등입니다. 동성 간 혼인신고가 전국적으로 이어지는 셈입니다. 
 
특히 성별 통계에선 여성 간 혼인신고가 74건으로, 남성 간 혼인신고(12건)보다 6배 이상 압도적으로 많았습니다. 혼인 평등 소송을 기획하고 지원한 시민단체 '모두의 결혼'의 이호림 활동가는 "동성혼이 법제화된 해외 사례들을 봐도, 혼인 신고 건수 자체는 레즈비언 부부가 더 많다"며 "결혼 제도를 통해 서로의 관계를 법적으로 보호받고자 하는 필요성을 레즈비언 부부가 더 많이 원하는 경향성이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2024년 10월10일 서울 영등포구 그랜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동성혼 법제화를 위한 혼인 평등 소송 시작 기자회견에서 소송 원고 측 동성 부부들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미 존재'하는 시민, 전향적 제도로 현실 따라잡아야" 
 
동성 부부들이 받아 든 '불수리 증명서'는 역설적으로 이들이 한국 사회에 엄연히 존재한다는 걸 보여주는 가장 확실한 증거가 되고 있습니다. 박한희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 만드는 법' 변호사는 "이성 부부는 혼인신고 한 번으로 국가로부터 모든 권리를 공인받지만, 성소수자들은 건강보험이든 재산 공증이든 매 순간 자신들의 관계를 직접 증명해 내야 한다"며 "국가가 관계를 공적으로 승인하지 않기 때문에 발생하는 구조적 차별"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손솔 진보당 의원은 "반려될 것을 알면서도 구청에 가서 혼인신고를 하는 동성 커플들이 있다. 혼인신고를 수리하지 않는다는 불수리 증명서를 받아 들고 그 서류를 기념으로 간직한다. 어떻게든 제도에 '성소수자가 있다'는 흔적을 남기기 위함"이라며 "동성 부부는 이미 우리와 함께 살아가며 존재하고 있다. 제도가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는 형국이다. 혼인 평등 소송에서 법원이 전향적 판결로 현실을 따라잡기를 바란다"고 했습니다. 
 
법원과 입법부의 시계는 더디지만, 사회는 조금씩 변하고 있습니다. 국가데이터처가 실시하는 인구주택총조사에선 지난해부터 처음으로 동성 커플도 '배우자(사실혼)' 또는 '비혼 동거(함께 사는 연인 등)'로 응답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개선했습니다. 1925년 첫 조사가 시작된 이후 100년 만에 국가 통계가 동성 부부의 존재를 공식적으로 기록하게 된 겁니다.
 
신다인 기자 shin123@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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