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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사람) “책무처럼 복원해야만 했던 탄실의 삶”
김별아, 신작소설 '탄실' 출간…근대 최초 여류소설가 '김명순' 조명
2016-09-01 06:00:00 2016-09-01 10:58:18
[뉴스토마토 권익도기자] “근대 최초 여성소설가면서도 가련한 삶을 살았고 그럼에도 문학사에서 누락된 선배 작가를 복원해 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실제로 이분은 작가로 데뷔한 이후 전 방위적으로 공격 받았는데 저조차 피가 싸늘하게 식는 듯한 느낌이었어요.”
 
베스트셀러 '미실'로 유명한 소설가 김별아가 이번에는 '탄실(해냄)'을 통해 한국 최초의 근대 여성 소설가인 김명순을 세상에 끄집어냈다.
 
탄실 김명순(1896∼미상). 한국 최초 근대 여성 소설가였던 그의 생애는 몸부림으로 점철된 아우성이었다. 기생 출신 어미의 ‘나쁜피’를 물려받았다는 이유로 조롱 당했고 성폭행 피해자면서도 타락한 여자로 입방아에 올랐다. 자신의 삶을 왜곡 묘사한 수많은 소설들 앞에서 마음은 갈기갈기 찢겨졌다. 그럼에도 늘 정신을 꽉 동여맸다. 정신병으로 죽기 전까지 문학으로 진실을 알리며 계속해서 일어서고 일어섰다.
 
김별아의 ‘탄실’에는 그렇게 억척같던 김명순의 삶이 그대로 녹아있다. 전지적 시점에서 일제감정기 전후를 배경으로 전개되는 이야기는 마치 김별아 자신이 탄실의 내면세계에 들어와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유년기에서 사춘기를 지나 어른으로 성장해가는 탄실의 성장 굴곡이 여과 없이 전달된다.
 
지난 30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탄실'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 직후 김별아를 만나 올해로 탄생 120주년을 맞은 김명순과 작가의 표현 방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봤다.
 
먼저 김명순의 삶에 주목하게 된 자세한 배경이 궁금했다. 소설적 욕심보다도 일반인에게 낯선 탄실의 삶을 알리고픈 갈증이 컸다고 했다.
 
“김명순 작가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작가에요. 저 역시 국문학을 전공했는데 학교에서 이분의 이름을 듣지 못했었거든요. 나중에 근대사를 개인적으로 공부하는 과정에서 이런 인물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어떻게 보면 선배작가인데 이름 석자조차 제대로 남아있지 못한 현실이 안타깝게 느껴졌죠. 그래서 책무처럼 복원을 해야 된다는 생각이 들었고요. 소설적인 재미를 떠나서 저한테도 의미가 굉장히 컸던 것 같아요.”
 
일종의 사명을 갖고 시작한 일이었다고 한다. 탄실의 숨소리가 들리는 자료들을 모두 샅샅이 찾아내야 했다. 김명순을 보는 김별아는 소설가였지만 한편으론 역사가적 관점에 서 있었다.
 
“현재 근대어로 쓰인 전집이 두 권 나와 있는데 원본 전체를 다 보면서 앞뒤 맥락을 이해하려 노력했어요. 그 내용을 기본적인 팩트로 삼고 썼죠. 근데 나머지 사적인 부분은 남아있는 게 거의 없어요. 그래서 현존하는 자전소설과 기타 시, 수필, 희곡의 부분 부분들을 모아서 재조립했습니다. 물론 작품 자체를 객관적으로 해석한다고 해서 온전히 그 사람이라고 볼 순 없지만 그래도 그 사람이 묻어나올 수는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띄엄띄엄 역사적 공백이 있는 곳들은 작가 자신이 채워갔다. 물론 상상으로만 메꾼 것은 아니었다. 여성 작가로서의 뼈저린 공감과 주변 동료 작가들의 경험이 바탕이 됐다.
 
“실존 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쓸 때는 그 사람이 돼서 살아요. 그 과정에서 감정 이입을 해가면서 표현하는 거죠. 근데 김명순은 사실 저와 살아온 환경이나 성격이 많이 다르거든요. 그런 점에서 주변의 동료 분들이 많이 떠올랐어요. 특히 배우자가 없거나 일가친척이 없는 상태에서 글을 쓰는 분들이 계신데 그런 삶을 보면서 생활 방식 자체에 대한 고민이 깊어질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김명순도 상처투성이지만 작가 중에도 상처를 입는 사람들이 많거든요…”
 
김명순의 상처 하나하나를 보듬다 보니 ‘목발’이란 표현도 다시금 생각났다. 탄실 역시 작가 자신처럼 문학이 인생에서 전부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목발이란 표현은 제가 평소에 문학에 대해 늘 쓰는 단어였어요. 이분의 삶을 전체적으로 보면 참으로 안타깝고 가련했죠. 동인에 있던 사람들에게까지 배척당했으니까요. 그런데 그렇게 상처를 입고 절룩거리면서도 문학을 쓰죠. 탄실의 유일한 받침대가 돼줬던거죠.”
 
탄실은 그렇게 불의에 맞서 싸우며 역경의 삶을 보냈다. 하지만 오늘날에도 여전히 힘 없는 약자로서 고립된 채 자신만의 목발을 짚고 걷는 여성 작가들도 많다. 그런 작가들에 대한 김별아의 생각은 어떨까.
 
“물론 오늘날은 김명순의 시대에 비해 상황이 많이 달라지긴 했죠. 실제로 여성 작가들의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고 그만큼 출판시장에서 영향력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여전히 유명하지 않거나 발언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은 사람들은 그때와 다르지 않은 게 현실이죠. 남성 중심의사회는 여전히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존재하고 있고 그 안에서 자신의 밥그릇을 뺏으려는 순간 싸움이 시작되는 거거든요. 이건 단순히 작가 영역 만이 아닌 모든 사회적 약자들에게 해당되고 있는 문제이기도 하죠. 이런 분들을 위해 보다 제대로 된 사회가 갖춰지고 더 나은 경제 환경이 만들어져야 된다고 생각해봅니다.”
 
'탄실'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김별아 작가. 사진/해냄출판사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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