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포커스)회의적 낙관론자 디턴 "세상은 더 나은 곳으로 진보한다"
올해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불평등은 양날의 칼…성공 유인되지만 빈곤 고착화는 악"
"개도국에 대한 무조건적 원조보단 자립의 길 터줘야"
2015-10-27 15:36:22 2015-10-27 15:36:22
얼마전 세계은행은 전세계의 절대적 빈곤 인구 비율이 올해 처음으로 10%를 하회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지난 2012년 약 9억200만명이었던 절대 빈곤 인구가 올해에는 7억명 내외로 줄어들 것이란 예측이다. 최근 몇 년간 개발도상국들이 급속한 경제 성장을 이룩한 결과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세계은행은 2030년에는 전인류의 역사적 염원인 빈곤 종식을 실현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졌다고도 평가했다. 김용 세계은행 총재는 "우리는 극단적인 빈곤을 끝내는 역사적인 세대가 될 수 있다"는 낙관론을 펼치기도 했다.
 
그러나 절대적인 빈곤 해소가 불평등의 완화까지 포괄하는 것은 아니다. 개도국 성장의 대명사로 불리는 중국의 소득 불평등은 미국보다 더 심각한 상황에 이르렀고, 선진국과 개도국간의 격차도 점차 확대되고 있다. 불평등과 저성장의 악순환이라는 새로운 문제가 등장한 것이다. 올해의 노벨 경제학상이 오랜 기간 가난의 본질을 연구해 온 앵거스 디턴에게 돌아간 점이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올해의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앵거스 디턴(가운데)은 소비 이론과 복지, 불평등에 대한 연구로 유명하다. (사진/뉴시스)
 
현재 미국 프린스턴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 중인 앵거스 디턴은 스코틀랜드 태생의 경제학자다. 소비 이론과 복지, 불평등에 대한 연구로 유명하다. 그 중에서도 개인과 가계의 소비를 꼼꼼히 살폈는데, 이 같은 연구는 경제를 성장시키고 가난을 줄이는 정책의 핵심이 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노벨위원회가 그를 수상자로 낙점한 이유로 "빈곤을 줄이고 복지를 키우는 경제 정책을 수립하기 위해서는 우선 개인의 소비 성향을 이해해야 한다"며 "소비, 빈곤, 복지에 관한 디턴의 분석은 매우 뛰어나다"고 밝힌 점도 이런 맥락이다. 
 
◇이론과 실제의 괴리 짚어낸 '디턴의 역설'
 
노벨위원회에 따르면 디턴의 수상은 그의 세 가지 연구 성과를 모두 아우르는 결과다. 이는 시기별로도 분류되는데, 첫 번째는 1980년 존 무엘바우어 옥스퍼드대 교수와 공동으로 고안한 '준이상적 수요 시스템(AIDS: Almost Ideal Demand System)'이다. 서로 다른 재화와 서비스에 대한 소비자의 수요를 나타내는 수요 예측 시스템은 이미 다수의 경제학자들에 의해 이론적 기반을 마련했다. 이는 부가가치세 인상이나 특정 집단에 대한 소득세 인하 등 정책의 영향을 평가하는 도구로 사용됐다. 그러나 문제는 현실이 이론을 완벽히 반영하지 않는다는 데에 있었다. 소비자들의 선택이 가설처럼 언제나 합리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디턴의 연구는 이 점에서 착안했다. 개별 상품에 대한 수요를 모든 상품 가격, 개인 소득과 연결시키는 접근법을 적용해 통계적으로 예측할 수 있으면서도 단순한 모델을 만들어 냈다.
 
두 번째는 1990년대에 수행한 소비와 소득의 상관관계 연구다. 소득이 증가함에 따라 가계의 소비와 저축이 어떻게 변화하는 지를 실제 데이터를 기반으로 살핀 것이다. 출발은 밀턴 프레드먼의 '항상소득가설'과 프랑코 모딜리아니의 '생애주기가설'에 대한 의구심이었다. 모든 개인은 장기간 원활한 소비를 하기 위해 소득이 줄어들 때를 대비해 저축을 한다는 것이 널리 통용되던 이론이었지만, 디턴은 소비가 소득을 상회하는 경우도 존재한다는 점을 증명했다. 미래의 소득 증가를 예측한 소비자들이 현재의 소비를 늘린다는 것이다. 이처럼 이론과 실제 데이터의 모순을 지적한 '디턴의 역설'은 전체 데이터에 의존한 기존의 거시경제학 이론들이 개별 데이터로 분석했을 경우 수정이 가능하다는 사실도 보였다. 오늘날의 연구에서 개인적인 행동이 전체 경제에 어떤 작용을 하는지가 많은 부분을 차지하게 된 배경이기도 하다.
 
◇죽음과 빈곤에서의 탈출…극심한 불평등은 나빠
 
2000년대 이후 디턴은 개발도상국에서의 삶의 기준과 빈곤 측정에 주력했다. 앞선 연구에서 얻은 수요 시스템과 개인적 소비에 대한 고찰들이 발판이 됐다. 그는 다양한 재화에 대한 소비 데이터를 광범위하게 수집하는 행위의 중요성을 수 차례 강조했는데, 특히 개도국 가계들로부터 모은 소비 데이터들은 빈곤을 측정하고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여겼다. 국내총생산(GDP) 같은 국가 단위의 통계 수치를 이용하기보다 가계 조사에서 얻은 구체적인 문제들을 지적하며 빈곤과 복지 수준을 파악하고 해당 국가들의 정책 행동들을 평가했다. 국가적인 트렌드나 이론에 주목하지 않는 대신 개별 가계 행동에 직접 주목하며 개발경제학의 부흥을 뒷받침했다.
 
30여 년 동안 소비에 대한 다양한 관점을 연구하면서 그가 얻은 결론은 "전 세계는 점점 더 나은 곳으로 진보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같은 관점은 그의 대표 저서인 '위대한 탈출'에서도 드러난다. 이 책에서 그는 "현재 인류의 삶은 역사상 그 어느때 보다도 나아졌다"고 언급했다. 노벨상 수상이 결정된 후 다수의 언론과 진행한 인터뷰에서 이에 대한 부연 설명을 했는데, 민주주의가 더 널리 확산됐고, 학교를 갈 수 있는 기회를 얻은 사람들이 더 많아졌다는 것이 진보의 결과라고 했다. 30~40년 사이에 아프리카 지역의 5세 미만 영유아 사망률이 크게 떨어진 것도 세계가 나아졌다는 증거라고 그는 덧붙였다.
 
그러나 디턴은 많은 사람들이 죽음과 빈곤으로부터 '탈출'했지만 극심한 질병과 불평등의 확대가 여전히 남아있다는 사실을 간과하지 않았다. 다만 불평등에 대해서는 가급적 가치 판단을 유보하며 중립적인 태도를 보였다. "불평등은 종종 진보의 결과물일 수 있다"고 말하면서도 "승자들이 다른 이들의 따라잡기를 가로막고 그들 뒤의 사다리를 치워버린다면 불평등은 나쁠 수 있다"고 평가하는 식이다. 불평등이 사람들에게 성공의 길을 보여주고 따라잡기의 유인을 제공해 도움이 될 수도 있지만 빈곤에서 탈출한 사람들이 탈출로를 봉쇄하고 그들의 지위를 지키는 극심한 불평등은 나쁜 것이라고 거듭 말한다. 
 
이 같은 생각은 노벨상 수상 후 미국의 공영방송 PBS와의 인터뷰에서 더 명확히 나타난다. 이 자리에서 디턴은 "불평등은 양날의 검과 같다"고 잘라 말했다. 불평등은 노력에 대한 보상의 일부이고, 우리 삶의 진보를 촉진하는 새로운 혁신과 모든 것에 대한 보상의 일부라는 측면에서는 긍정적이라고 그는 운을 뗐다. 그러나 부자가 된 이들이 그렇지 못한 사람으로부터 민주주의, 공립학교, 공공 의료시스템을 빼앗아 간다면 불평등은 심각한 위협으로 작용한다고 디턴은 설명했다.
 
불평등의 양면성을 논하는 과정에서 디턴은 토마스 피케티의 연구를 인용해 "소득의 과도한 집중이 부자들의 정치적 지배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하기도 했다. 디턴과 피케티가 대척점에 서지 않았다는 방증이다. 실제로 그는 최근 영국 일간지 텔레그래프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피케티는 소득과 부의 거대한 차이가 그 자체로 끔찍한 것이라 여겼고 나는 소수의 사람들이 경제 체제에 부당한 영향력을 갖는 것을 걱정한다"라고 두 사람의 차이점을 직접 언급했다.
 
◇개도국 원조, 직접적 지원보다는 생존 방법 전수 
 
미국으로 대표되는 선진국의 경제 원조를 강하게 비판한 것은 디턴을 오해할 수 있는 또 다른 부분이다. 그는 "해외 원조는 득보다 실이 더 크다"며 무조건적 원조는 적절치 않다고 주장했다. 부자가 가난한 사람들 '도와준다'는 것은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는 국가 간 격차나 국가 내 격차에 모두 해당되는 것인데, 가난한 사람들이 최저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은 스스로 발전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한다는 논리다. 개발도상국에 대한 금전적 원조가 해당 국가를 성장시키는 기회가 될 수는 있지만 그들 스스로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다'는 의식을 갖도록 하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디턴은 퍼시픽 스탠다드와의 인터뷰에서 개발도상국이 집중돼 있는 아프리카를 예로 들어 자세히 설명했다. 정부 재정의 상당 부분을 해외 원조에 의존하고 있는 아프리카 국가들, 엄밀히 말하면 각국 정부들은 자국민의 삶의 질 개선에는 큰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이들은 자국민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고민하기보다는 국제 원조기구에서 무엇을 더 얻어올 수 있을지를 고심한다. 공공 병원이나 학교 건설에 의지가 없는 상황에서 직접적인 자금 지원은 해당 정부의 부패를 더 악화시킬 뿐이란 얘기다.
 
하지만 그는 해외 원조의 필요성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았다. 직접적 원조를 줄이는 대신 간접적인 방법으로 자립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줄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프리카에서 유행 중인 질병에 대한 기본적인 과학 연구를 진행한다거나, 다자간 무역 협상에서 아프리카 국가들이 대표적인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것, 기술적 조언을 제공하는 것처럼 돈과 직접 연계되지 않은 방법들을 제시했다.  
 
김진양 기자 jinyangkim@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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