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토칼럼)'탈팡' 할 용기
2025-12-23 06:00:00 2025-12-23 06:00:00
'아, 맞다. 또 깜빡할 뻔했네.'
 
오늘도 어김없이 쿠팡을 열었다. 주말 아침 식사를 위해, 아이의 유치원 준비물을 사기 위해 로켓배송에 의존했다. "정신 좀 차리는 게 보이면 다시 가입하려 한다"(김의성 배우), "오만방자한 태도를 보이고 있는 쿠팡에 강한 경고가 필요하다"(조국 조국혁신당 대표)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상에는 '탈팡'(쿠팡 탈퇴) 인증이 넘쳐나지만 오늘도 기자는 용기를 내지 못했다. 
 
용기가 없는 자는 기자뿐이 아니었다는 점은 그나마 위안이 됐다. 탈팡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의 기로에서 동료에게, 친구에게 물었다. "쿠팡 탈퇴했어?"라는 질문에 돌아오는 답은 한결같았다. "아니, 자동결제 정도만 막아놨어", "워킹맘이 쿠팡 없으면 어떻게 살려고 해" 등 탈팡을 하지 못하는 혹은 않는 이유들이 나였됐다. 
 
대중들의 삶도 크게 다르지 않아 보였다. "너무 편히 사용했던지라 탈퇴 고민만 하다가 그냥 또 사용 중이다. 스팸 전화 한두 건 더 온다고 달라지는 것도 없고", "잠시 탈퇴 고민했는데 쿠팡 없이는 못 살겠더라", "이러니 저러니 해도 익숙해져 있고 편한 게 사실이라 굴욕적이다" 등 용기 없는 자들의 고백이 이어졌다. 
 
탈팡을 쉽게 선택하지 못하는 기저엔 이미 일상의 일부가 돼버린 쿠팡의 존재감에 있다. 쿠팡이 유통가를 장악할 수 있었던 근원 경쟁력인 로켓배송은 물론 멤버십 회원에게는 무료 배달(쿠팡이츠)과 무료 시청 혜택(쿠팡플레이)을 제공하는 부가 서비스까지 쿠팡을 끊지 못하는 이유는 수없이 많다. "가격, 신속, 편리성 등 쿠팡 대체를 못 찾겠다"는 호소에 공감이 많은 것은 당연지사다. 
 
과거 소셜커머스 쿠폰이나 팔던 쿠팡이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적자를 감수하면서까지 10조원에 가까운 자금을 쏟아부으며 유통 공룡이 된 사이 사람들은 시나브로 쿠팡의 편리함에 젖어들었던 것이다. 쿠팡과 관련한 사회적 논란이 불거질 때마다 '과징금 정도 내고 말지'라며 안일하게 대응하고 있는 배경도 여기에 있다. 
 
노동자들에게 쿠팡은 분명 나쁜 기업이지만 소비자들에게는 마땅한 대체재가 없는 최선의 선택. 쿠팡의 '헤비 유저'가 될수록 쿠팡을 향한 양가감정은 클 수밖에 없는 노릇이었다. 
 
쿠팡은 여전히 오만하다. 국민의 대표인 국회의 질타를 '글로벌 기업'이라는 명분으로 또 피해 갔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기존과는 다를 것이란 분위기가 포착된다. 정치권에서는 '괘씸죄'를 적용하려는 듯 영업정지 같은 초강수 대책들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이달 말에는 5개의 국회 관련 상임위들이 연석 청문회를 개최한다. 쿠팡이 상장된 미국에서는 주주들이 집단소송에 나섰다. 
 
용기 있게 쿠팡을 끊어낸 사람들은 말한다. "쿠팡 없으면 엄청 불편할 듯했는데 크게 불편한 거 없이 살 만해요", "헤비 유저였다가 택배랑 오프라인으로 구매했는데 소비도 줄고 쓰레기도 현저히 적어진다" 등 막상 해보니 괜찮다는 '간증'을 전한다. 이번에야 말로 쿠팡과 헤어질 용기를 낼 수 있을까. 
 
김진양 산업2부 팀장 jinyangkim@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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