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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도시, 아직도 허탕도시)②마음은 서울에, 몸만 지방
2014-07-15 11:04:06 2014-07-15 11:08:37
[뉴스토마토 최병호기자] "미래형 혁신도시는 신 행정수도에서 1시간 거리에 있어 해당 지역의 발전을 이끌 것" - 2004년 6월, 최재덕 전 국토교통부(옛 건설교통부) 차관
 
혁신도시 개념이 세워진 지 10년이 지난 지금, 당시의 기대는 온데간데 없어졌다. 공공기관들이 혁신도시로 옮기고는 있지만 정작 직원들은 현지 정착을 꺼리고 기관의 이전마저 지지부진해서다.
 
마음는 서울에 두고 몸만 지방에 온 셈인데, 혁신도시에서 경제유발 효과를 기대할 수 없는 이유다.
 
◇올해까지 공공기관 이전 완료?
 
14일 산업통상자원부와 국토교통부 산하 공공기관 지방이전추진단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까지 전국 11개 혁신도시에 새 둥지를 튼 기관은 약 40개. 하지만 혁신도시별 지방자치단체에 문의한 결과 공공기관이 이전한 만큼 지역 인구가 늘지는 않았다.
 
실제로 대구 혁신도시에는 지난해부터 한국산업단지공단과 한국감정평가원 등 5개 기관이 이전했고 이들 기관의 총 직원 수는 880여명이지만, 같은 기간 대구 동구청에 전입 신고한 인원은 그에 훨씬 못 미쳤다. 다른 혁신도시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다.
 
신 행정수도로 건설된 세종시만 해도 기획재정부와 산업부 등 12개 주요 부처가 입주했으나 세종시로 이사한 사람보다 서울 집부터 출·퇴근하는 일이 더 많을 정도다.
 
공공기관 이전은 더 심각한데 158개 이전 대상기관 중 이전을 완료 비율은 약 30%에 그쳤다. 애초 정부가 2007년부터 2014년까지를 혁신도시 사업 1단계 기간으로 정하고 이때까지 공공기관 이전을 완료하겠다고 공언한 것을 떠올리면 한심한 수준이다.
 
◇혁신도시별 이전을 완료한 공공기관 현황(자료=공공기관 지방이전추진단)

◇국토균형발전 외치는 정부..이전 직원 고충은 나 몰라
 
문제는 정부가 국토균형발전과 지방경제 살리기를 혁신도시 조성 명분으로 외쳤으나 실제로 내려갈 경제주체에게는 지방에 정착할 어떠한 동기도 주지 못했다는 점이다.
 
혁신도시로 이전한 공공기관 직원들은 스스로를 '실험용 쥐'에 비유했다. 장거리 출·퇴근의 불편과 피로, 업무 비효율성, 정부 정책을 안 따른다는 세간의 눈초리에도 불구하고 현재 혁신도시는 그곳에 사는 사람에 100% 부담을 지우는 구조라는 것.
 
한국감정평가원 직원인 이모씨(32)는 "근처에 감정평가원과 독신자 숙소만 덜렁 있고 주변에 아무것도 없는 데 대중교통까지 불편하다"며 "미혼직원의 불편이 이럴진대 처자식 데리고 내려올 기혼 직원들은 막막함과 불편함은 오죽하겠냐"고 말했다.
 
공공기관들 역시 사정이 다르지 않다. 올해 말 지방이전을 앞둔 공공기관 관계자는 "뺑뺑이도 아니고, 처음 혁신도시 계획을 들었을 때부터 하고많은 지역 중 우리가 거기에 가야 할 이유를 모르겠다"며 "하라니까 급하게 하는 식"이라고 토로했다.
 
◇정부와 지자체의 무관심..혁신도시 사업 줄줄이 밀릴 판
 
사정이 이렇다 보니 정부의 혁신도시 사업 자체가 줄줄이 밀릴 판이다. 정부 계획대로라면 공공기관 이전으로 구축된 혁신도시 인프라를 바탕으로 내년부터는 기업과 대학, 연구소 등을 유치하는 2단계 사업을 시작해야 하지만 기약을 장담할 수 없다.
 
정부는 또 혁신도시를 통해 지역 인구가 늘면 지방에 약 13만개의 고용이 창출되고 연간 9조원의 생산유발 효과가 생기며 쇼핑몰과 병원, 편의·위락시설 등이 조성돼 부가가치 효과도 클 것으로 전망했으나, 현재 상황을 본다면 이것도 요원하다.
 
정부는 혁신도시 조성사업 계획을 세울 때부터 공공기관 이전을 사업의 성패를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판단하고 정권마다 대통령까지 나서 이를 강조했으나 공공기관 이전에 대처하는 정부의 모습은 원칙도 없고 고민도 없는 모양새다.
 
공공기관 이전에 대한 정부의 기본 방침은 이전에 대한 결정과 그에 따른 문제는 전적으로 기관 자체의 일이므로 정부가 거기에까지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겠다는 것.
 
이에 정부는 일부 기관의 부지·청사 매각과 신청사 부지 매입·신청사 준공이 지연되고 직원 숙소가 부족한 문제에 대해 알아서 해결하라는 방관자적 입장을 취했다.
 
그러나 미래창조과학부의 세종시 입주 무산과 해양수산부의 세종시 잔류 등에서 나타나듯 일부 기관의 지방 이전은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결정함으로써 혁신도시 조성과 공공기관 이전의 취지를 퇴색시키고 원칙을 잃었다는 지적을 받았다.
 
◇대구 혁신도시 위치(자료=대구광역시)
 
지방자치단체 역시 기존에 갖춘 교통·환경 인프라를 우선적으로 재활용하자는 방침이어서 혁신도시 주변의 시설여건을 새로 구축하는 데는 무관심하다.
 
대구시는 2007년부터 올해까지 혁신도시 공사비로 6850억원을 쓴 것으로 됐지만 정작 혁신도시 일대는 그 많은 돈을 쓰고 만든 인프라 것 같지 않게 부실해 보인다.
 
이처럼 일만 벌였지 사후 대책과 수습 대안이 전혀 없는 정부와 지자체의 무관심 속에 혁신도시 조성→공공기관 지방이전→공공기관 지원 현지 정착→다음 단계 혁신도시 사업 진행->혁신도시 정착이 통째로 지연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산업연구원 관계자는 "정부가 특별법을 제정하고 정권마다 혁신도시에 대한 정책의 연속성을 이어가려고 했던 점은 높게 평가해야 한다"며 "그러나 정부와 지자체의 어중간한 역할 분담, 현장의 목소리를 외면한 모습 등이 겹치면서 낮에는 일하느라 불 켜진 혁신도시가 밤에는 아무것도 없는 암흑도시가 되려고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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