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 기자
(칼럼)박완규의 봄비, 그리고 통합진보당에 주는 충고
자기만의 신념 아닌 대중과 소통할 수 있는 신념이라야 한다
2012-05-15 11:02:01 2012-05-17 09:05:15
지난 13일 일요일 저녁 <MBC>의 <나는 가수다>에서 가수 박완규가 부른 '봄비'라는 노래가 화제다.
 
마침 이 노래가 화제가 된 바로 그 다음날인 14일 월요일에는 촉촉하게 봄비가 내렸다. 낭만적인 분위기에 빠져들기 좋은 봄비 내리는 날, 봄비를 듣는 즐거움은 남달랐다. 가수 박완규의 덕분이라 할 수 있다.
 
이날 방송에 나온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박완규의 말은 그냥 빈 말로 들리지 않는다. '장인정신'을 가진 사람이 할 수 있는 말이다.
 
박완규가 부른 봄비는 나도 몇 번 들어 본 노래이긴 하다. 하지만 인식하지 못하고 지낸 그런 노래였다. 어떤 노래인지 정확히 모른다는 이야기다.
 
궁금했다. 그래서 원곡을 찾아봤다. 
 
이 노래는 1967년에 '한국 록(Rock)의 대부'라고 불리우는 신중현씨가 만든 것이었다. 내가 태어난 게 그 이듬해인 1968년이니까 나보다 나이를 한 살 더 먹었다.
 
가수 이정화씨가 가장 먼저 불렀고, 이어 김추자, 박인수씨도 이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이쯤에서 원곡을 한번 들어보는 것도 좋겠다
 
 
 
 
이슬비 내리는 길을 걸으면
봄비에 젖어서 길을 걸으면
나 혼자 쓸쓸히 빗방울 소리에
마음을 달래던
 
외로운 가슴을 달랠 길 없네
한 없이 적시는 내 눈 위에는
빗방울 떨어져 눈물이 되었나
한 없이 흐르네
 
봄비
나를 울려주는 봄비
언제까지 내리려나
마음마저 울려주네
봄비
 
가사는 한 편의 시처럼 들리고, 곡은 운율을 타고 흐른다. 소박한 시대를 살았던 인생 선배들의 감성을 느낄 수 있는 노래였다.
 
하지만 물씬 풍겨오는 60년대와 70년대의 올드(old)한 느낌은 어쩔 수 없다.
 
그런 노래가 록커의 자부심을 한껏 갖고 있는 박완규에 의해 다시 태어났다. 록의 전성시대라 부를 수 있는 80년대를 관통한 록 선배들의 세례를 받은 박완규에 의해 2012년에 새로 태어났다.
 
 
나도, 그리고 어쩌면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들도, 그저 무심하게 지나치듯 들었던 봄비라는 노래가 2012년 지금, 여기에서, 연령을 뛰어넘어 수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고 감동을 주는 이유는 무엇일까?
 
최근에 많이 알려지고 있듯이 록커의 자부심으로 똘똘 뭉친 박완규는 대중매체에 출연하는 것을 극도로 꺼렸다고 한다. 대중에 영합하는 노래를 부르는 록커는 록커로 대접하지 않았을 정도로 자신의 음악에 대한 자부심으로 배고픔을 견뎠다고 한다. 그러니 여기서 그의 불행한 가정사에 대해서는 굳이 언급할 필요는 없겠다.
 
그가 걸었던 록커의 길은 80년대를 관통하는 저항정신과 맥을 같이 한다.
 
오랜 군사독재정권 통치 하에서 조국에 대한 자부심을 잃고 울분을 가졌던 수많은 선량한 학생들이 새로운 세상을 꿈꾸며 저 마다의 길을 모색했듯이, 그리하여 마침내는 주사파니 민중파니 제헌의회파니 하는 수많은 노선으로 갈라져 자신의 신념을 관철하기 위해 배고픔을 견뎌내며 80년대를 그야말로 '학생운동의 전성시대'로 만들었듯이, 그 시대는 또한 '록의 전성시대'라고 부를만한 시대였다.
 
지난해부터 새롭게 재조명받고 있는 전인권의 들국화, 김태원의 부활, 유현상의 백두산은 486세대에게는 아주 친숙한 록의 대명사들이기도 하다.
 
그러나 80년대를 지나며 학생운동이 퇴조했듯이 록도 퇴조했고, 그들은 자신만의 신념 세계에 빠져들어갔다. 그렇게 90년대와 2000년대를 지나왔다.
 
세상의 변화에 둔감해지고, 세상 사람들의 생각 변화에 무감각해지고, 그렇게 올드한 자신의 신념을 종교 교리처럼 떠받들며 지하로 숨어들고, 골방으로 숨어들었다.
 
자신이 살고 있는 세상과, 그리고 사람들과 소통이 단절되고, 교감이 단절됐음에도 자신의 신념이 옳다는 자기 위안 하나로 배고픔을 견디는 기나긴 세월을 지나왔다.
 
하지만 록커의 자부심때문에 대중매체 출연을 꺼려했던 록커 박완규는 마침내 자신 안에 갇힌 틀을 깨고 대중들 앞에 섰다. 박완규에 앞서 김태원이 그랬고, <KBS2 TV>의 <톱밴드>를 통해 수많은 록커들이 대중 앞에 나타났다.
 
그리고 자신들만의 스타일을 더는 고집하지 않고 대중과 교감을 나누기 위해 새로운 음악을 접목하고, 록을 변신시키고 있다. 80년대에 누렸던 그 정도는 아니지만 바야흐로 '제 2의 록 전성시대'가 도래하고 있는 기운이 흐르고 있다.
 
통합진보당 사태에 눈을 돌려보자.
 
소위 '당권파'가 비판받고 있는 지점은 어디인가? 그들은 비례대표 경선 부정의혹에 대한 진상조사위원회 결과가 부당하다고 비판한다. 물러난 이정희 전 공동대표는 "억울함이 없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맞다. 억울함이 있을 수 있다. 어떤 악의를 갖고 의도적으로 부정선거를 저지른 것이 아닐 수도 있다. 진상조사가 완벽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이건 통합진보당에 지지를 보낸 200만이 넘는 유권자의 시각이 아니다. 철저하게 당권파라는 당신들의 시각일 뿐이다.
 
현재 드러난 것만으로도 통합진보당의 비례대표 경선은 국민의 세금을 지원받는 공당(公黨)이라고 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스스로도 부끄럽고 죄송하다고 말하고 있지 않은가?
 
그런 허술한 선거관리와 선거진행, 대표단 합의에 의한 비례대표 순번 교체, 당원명부의 진실성조차 통합진보당 스스로 자신할 수 없는 상황에서, 어떻게 200만이 넘는 유권자들의 지지로 선출된 비례대표를 국민의 대표라고 부를 수 있는가 말이다.
 
통합진보당 비례대표는 당원들이 선출한 것이 아니다. 당권파는 단단히 오해하고 있다. 당원들은 단지 순번만 정했을 뿐이지, 그들을 국회의원으로 당선시킨 것은 200만이 넘는 유권자들이다.
 
지금 통합진보당을 지지했던 유권자들이 화가 나 있다. 허술하기 짝이 없고, 엉터리같은 선거관리로 선출된 비례대표 후보들을 도저히 국민의 대표로 내세우기 싫다는 것이다. 통합진보당을 지지한 것이 부끄러울 지경이라고 한다.
 
그런데도 마치 '당원투표'로 선출된 것인냥 우기는 것은, 당권파 스스로 80년대식 운동권의 조직논리에 갇혀 있음을 스스로 자인하고 있는 것이다.
 
케케묵은 이념의 틀을 벗어던지라고 감히 조언하지는 않겠다. 당신들이 생각을 바꾸든 바꾸지 않든 그건 내가 간섭할 수 없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헌법은 양심의 자유와 사상의 자유를 보장하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중의 사랑을 받을려는 대중정당을 한다면 스스로 변화하기 바란다.
 
정통 록커의 자부심을 갖고 대중과 격리되었던 록커 박완규가, 60년대의 올드한 노래에 록의 기운을 한껏 불어넣어 2012년 지금 여기 대한민국의 수많은 대중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이유를 되새길 필요가 있다.
 
5만 남짓한 당원이 200만표를 몰아준 유권자를 배신해서는 미래가 없다. 박완규에게 배워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박완규의 봄비를 꼭 들어보기를 바란다.
 
그리고 이석기, 김재연 당선자는 반드시 사퇴하기 바란다. 그건 당신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잘못해서가 아니라, 총체적으로 통합진보당이 잘못했기 때문이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지난 뉴스레터 보기 구독하기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