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개혁이 흔들리고 있다. 결정이 유보된다 해도 앞으로도 그럴 공산이 크다. 국회 공론화에 참여한 시민대표단의 다수는 ‘보험료율 13% - 소득대체율 50%(더 내고 더 받기)’를 택했다. 많은 이들이 이런 ‘소득보장안’이 진보고 더 내고 그대로 받는 ‘재정안정안’은 보수라고 착각하지만, 소득대체율 40%를 유지해도 보험료율 15%가 필요하다는 것은 이념이 아니라 산수다. 13-50안을 택하면 사회 부담이 폭증하고 수혜도 취약계층보다 상위층, 중산층에게 쏠린다(굳이 따지면 이것은 진보가 아니라 ‘신보수’다). 시민대표단의 재소집을 요청한다.
첫째, 재표결을 실시해야 한다. 시민대표단이 받은 학습 자료에는 치명적 오류가 있다. 13-50안측은 ‘생애 평균 월소득이 150만원인 가입자가 40년 보험료를 부으면 월 연금이 63만원에서 113만원으로 50만원이 오른다’며 “저소득자가 상대적으로 더 올라가게 설계돼 있다”고 설명했다. 사실이 아니다. 이 사람의 현재 월 연금은 63만원이 아니라 90만원이다. 저소득자 인상율이 더 높은 게 아니다. 그나마 저 금액도 40년을 가입해야 받을 수 있다. 150만원 월소득자 중 40년간 보험료를 내는 사람이 이 얼마나 될까. 명목 소득대체율 인상의 효과는 빈곤 노인이나 단기간 가입자에게는 깊이 닿지 않는다.
한국의 공적연금 소득대체율이 OECD 평균보다 낮다고들 하지만, 이는 상시고용 평균소득자(한국은 월4백만원)끼리 견준 결과다. 한국은 소득 비례 연금이 아니라 소득 재분배 연금이고, 공적연금 중 일부인 기초연금을 상위 30%에게 지급하지 않으니 중상층을 놓고 비교하면 연금 보장성이 낮아 보인다. 그러나 월 250만원쯤 버는 소득자가 38년 가입하면 소득대체율은 38%로 일본과 비슷하다(참고로 일본 보험료율은 18%다). 결국 하위층 연금 보장에서 중요한 것은 명목 소득대체율이 아니라 가입 기간이다.
둘째, 시민대표단은 연금에 투입될 국가 재정의 규모와 재원 마련 방안까지 토론해야 한다. 소득대체율을 그대로 둔다 해도 연금에 대한 국고 지원은 필요한 일이었다. 취약계층의 가입 기간을 늘리는 크레딧도 필요하거니와 보험료율 인상분도 일정 기간 지원하는 것이 좋다. 납부와 수령 사이에는 시간이 걸려 가입자와 기업에게 부담이고, 저소득층, 자영업자 등 홀로 보험료를 내는 사람, 올라간 보험료를 오래 감당해야 하는 청년에게는 더더욱 그렇다.
더구나 13-50안대로 하면 2061년에 기금이 고갈되고, 부과식으로 넘어가고 나면 최대 필요보험료율은 43%로 치솟는다. 고갈을 막거나 늦추는 재정 지원을 해야 한다. 게다가 국민연금이 끝이 아니다. 노인 빈곤 대책으로는 기초연금 강화가 더 시급하다. 시민대표단 다수는 ‘하위 70% 지급안’을 지지했다. 참고로 스웨덴은 절반 이하, 핀란드는 1/3 이하의 노인에게 기초연금을 지급한다. 고부담 고복지 국가도 지급 대상을 좁혔는데, 한국 정부가 70%에게 더 많은 연금을 지급하게 된다면?
안 그래도 돈 들어갈 곳이 많건만 연금 문제를 연금 안에서 최대한 푸는 것을 마다했으니 ‘막대한 국고 투입‘을 치러야 한다. ‘나라빚’, ‘여타 지출 위축’, ‘국민 부담’, 이 3개의 태양 앞에 위기를 맞은 ‘삼체’와 같다. 하나만 고르라면 ‘국민 부담’이 답이고, 보험료율-소득대체율 간극을 크게 좁히지 못했으니 더더욱 증세를 해야겠지만, 이 역시 국민적 합의가 필요하다. 연금 공론화는 이제 시작이다.
김수민 정치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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