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이병태씨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2026-07-09 06:00:00 2026-07-09 06:00:00
서울 배재고 야구선수들의 광주 조롱 응원에 대한 비판이 격화될 무렵, ‘광주와 5·18이 성역화되고 있다’는 취지의 글을 쓰고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들먹인 이병태 규제합리화위원회 부위원장(부총리급)이 결국 사퇴했다. 그는 비판이 쇄도하자 언론 인터뷰에서 “내가 사퇴할 이유가 없지 않냐. 흔든다고 흔들리면 그게 더 바보 같은 짓”이라며 국민에 맞선 것은 물론, 자신의 글이 실언이 아니라 소신임을 강조했다. 광주 정신에 대한 그의 인식에 국민들은 경악했다. 비판 여론이 갈수록 커지자 공개 경고 정도로 넘어가려 했던 청와대가 그에게 사퇴를 권고했다고 한다. 해임보다는 자진 사퇴의 모양새로 마무리 지으려 한 듯하다. 
 
이병태씨 사건은 두말할 필요 없는 인사 참사다. 일 개인의 사퇴나 해임 여부가 문제가 아니다. 인사권자인 대통령은 실용과 통합의 관점에서 보수 성향 인사를 등용해 왔으나 번번이 실패로 끝나고 있다. 기재부 장관으로 지명했던 이혜훈씨는 국민들 반발에 부딪혀 결국 낙마했다. 이병태씨는 광주 망언으로 국론만 분열시킨 채 퇴진했다. 규제 합리화에 그가 어떤 적임성이 있는지 모르지만, 부임 석 달도 채 되지 않아 곳곳에 상처만 남긴 채 퇴장당했다. 그는 대학을 거쳐 보수권 모 후보 대선 캠프에 몸담는 등 정치활동 이력이 상당하다. 
 
‘이병태씨가 광주 정신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고 한다면 무책임하기 짝이 없는 변명이다. 그가 정말로 통합에 기여하고팠다면 계엄과 대선을 치르며 확인된 시대정신과 다수 주권자들 뜻에 다가갔어야 한다. 그는 망언으로 일관하다가 ‘내가 왜 사퇴해야 하느냐’고 강변했다. 시대정신에 대해 상식 수준의 인식 체계도 갖추지 못한 사람을 기용한 책임은 인사권자 몫이다. “검증이 불가능했다”고 둘러댈 일이 아니다. 검증은 대상자의 주민등록등본이나 재산 형성 과정, 공직에 부적합한 전과·전력 여부만 살피는 게 아니다. 당사자의 철학이나 기본 관념이 시대정신과 사회상규에 부합하는지를 점검하는 게 더 먼저고, 더 중요하다. 인사 발표 때마다 늘 하는 말이 있지 않나. “국정 철학을 이해하고 같이하는 사람”이라고. 그건 그냥 하는 말이었나. 지난 87년 6월 항쟁 이후 국민들이 피땀 흘려 이룩한 우리 사화의 기본 가치와 공동선에 대한 입장과 관점을 정밀하게 따졌어야 함에도 한자리 주며 통합이라고 간주한 건 아닌지 반성해야 한다. 상징적으로 몇몇 인사를 기용하는 것은 통합 노력의 알리바이가 될 수 없다. 연이은 인사 참사는 생길 수 있는 인사 실패가 아니라, 지난 대선에서 이재명 후보에게 기표한 주권자들에 대한 배반이자 과오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4월15일 청와대에서 규제합리화위원회 제1차 전체회의에 앞서 이병태 규제합리화위원회 부위원장에게 위촉장을 수여한 뒤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제공)
 
사상과 표현의 자유는 법적·역사적 평가가 이뤄진 국가적 비극을 조롱하고 왜곡하는 사람을 위한 면죄부가 아니다. 표현의 자유는 타인 권리를 침해하지 않고 공익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보장되는 제한적 권리다. 지만원씨 등의 광주 망언 처벌 선례는 역사 왜곡과 선동이 사법적 단죄 대상임을 명백히 보여준다. 이병태씨도 지만원씨와 같은 궤에 있다.
 
이번 사태의 근본 원인은 이병태씨가 아니라 반공동체적 역사 인식자를  공직에 기용한 것에 있다. 역사 인식과 국가관을 제대로 살피지 못했기에 인사 참사다. 청와대의 첫 조치가 ‘경고’에 그쳤다는 점 또한 사태의 엄중함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것이다. 이런 일은 단 한 번이어도 많다. 국민주권정부란 구호로 이룩되는 게 아니다. 내란극복 시민들이 계엄 분쇄 후 민주당에 정권을 맡긴 뜻을 새기기 바란다. 통합은커녕 분열만 가속화시켰다.
 
이강윤 정치평론가, 전 한국사회여론연구소장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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