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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코리아 디스카운트만 부각시킨 기업 밸류업 대책
2024-02-29 06:00:00 2024-02-29 06:00:00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 정부가 지난 26일에 공개한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이 딱 그런 꼴입니다. 신년 초에 대통령이 이례적으로 한국거래소를 두 차례나 방문하여 토론회까지 열며 한국 증시의 고질적 저평가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밝혔을 때 시장은 큰 기대를 걸었습니다. 이제 드디어 한국 기업의 주가를 억눌러온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해소되어 기업가치가 제대로 평가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부풀어 올랐습니다. 미국이나 일본 증시와 같이 국내 증시도 우상향의 상승세를 탈 것으로 예상한 투자가들은 PBR(주가순자산비율)이 1배 미만으로 저평가된 종목들을 집중적으로 매입하며 주가지수를 끌어올렸습니다. 
 
한 달이 넘게 증시 부양 기대감을 한껏 띄워놓고 막상 금융위원회가 발표한 기업밸류업 지원 방안은 맹탕에 가까울 정도로 빈약했습니다. 주요 내용은 상장사가 스스로 매년 지배구조, 자본수익성 등의 기업가치를 개선할 계획을 세워 거래소에 자율 공시하고 이를 성실히 이행하여 기업 가치 개선 성과가 뛰어난 기업에게는 투자장려, 세제지원, 우수기업 표창, 모범납세자 선정 우대 등의 혜택을 부여한다는 것입니다. 투자자들이 원하는 배당세·법인세·상속세 개편이나 주주 권익을 보호하는 상법개정안 등의 실효성있는 조치는 다 제외되었습니다. 
 
기업 가치 개선을 자율적 노력에 맡기겠다는 정책은 맥빠지는 대목입니다. 수십년동안 주가 상승에 관심없던 기업들이 정부의 밸류업 프로그램에 자극받아 갑자기 자발적으로 기업 가치 개선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는 발상은 순진하기 짝이 없습니다.  
 
기업가치의 자율적 개선을 유인하는 방안도 밋밋하기만 합니다. 투자활성화, 세제지원, 표창장 등이 기업들의 주가 상승 동기를 촉진할 만큼 큰 인센티브로 작용할 것인지 의문시됩니다. 이런 혜택은 정책에 대한 기업의 참여를 유인하기 위해 정부가 곶감처럼 내놓는 대책입니다. 특별히 고민하지 않고 내거는 상투적 방안으로 흔히 관가에서는 이를 ‘표지갈이’라 부릅니다. 내용은 그대로인데 표지만 바꿔 사용하는 처방이라는 뜻이지요. 이처럼 진부한 대책을 기업밸류업 인센티브라고 공표한 담대함에 놀라움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정말로 정부가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할 의지가 있는지조차 의심스럽습니다.  
더 강력한 밸류업 프로그램을 추가로 발표한다고 하지만 이미 정부 정책에 대한 신뢰가 손상되어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는 물건너간 것으로 간주됩니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고 기업 밸류업 바람에 편승해 상승한 종목들은 급락했고 주가지수도 하락세로 돌아섰습니다. 이 와중에 정부의 증시 부양 의지만 믿고서 급등한 주식을 추격 매수한 개인 투자가들만 피해를 보게 되었습니다. 역시 미국장이나 일본장에 투자해야지 한국장에 투자하면 호구된다는 말이 딱 맞아떨어지는 상황입니다. 
 
한국 증시를 평가절하하는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요인은 복합적입니다. 그중에 가장 심각한 문제는 소액주주의 권익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기업을 지배하는 세칭 대주주 오우너는 주가 상승을 원하지 않습니다. 기업의 이익을 다른 주주들과 나누고 싶어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주가 상승은 대주주의 이해관계와 일치하지 않습니다. 경영권을 장악하며 다른 방법으로 기업의 이익을 사유화하는 것이 훨씬 더 유리합니다. 
 
정부는 이런 문제를 알고도 지배구조 개혁에 소극적입니다. 이번에도 지배구조를 개선하여 소액주주의 권익을 보장하는 조치를 기대하였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정부도 역시 주주를 무시합니다. 정치적 이유로 시장에 개입하고 기업을 규제하며 주주의 이익을 침해합니다. 전력회사, 금융회사, 통신회사들은 정부의 압박 때문에 가격이나 수수료를 시장논리에 따라 책정하지 못합니다. 은행이 이익을 많이 내서 주주에 대한 배당금을 늘리려 하면 정부가 나서 반대합니다. 
흥미롭게도 정부가 경영에 간섭했던 기업들은 대주주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경영진 승계 과정에 개입하여 영향력을 행사한 은행지주회사와 포스코가 바로 이런 예에 속합니다. 사외이사에 대한 과잉접대를 문제 삼은 기업들도 주로 주인 없는 기업들입니다. 정부가 주인처럼 지배력을 행사하며 상장사의 경영과 이익 배분에 사사건건 관여하는 관치가 주가 상승을 억제하는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유발합니다. 
 
지배구조가 분산된 기업들에게는 기득권 카르텔을 타파한다고 타율적으로 압박해온 정부가 대주주가 지배하는 기업들의 가치 상승에 대해서는 자율을 강조하니 영문을 모를 따름입니다. 소문만 요란했지 실속이 없는 밸류업 프로그램을 두고 총선용 단발성 이벤트라는 비판이 나옵니다. 심지어 인터넷 주식 토론방에서는 정부의 기업가치 밸류업이 주가 조작 행위에 해당한다는 여론이 들끓고 있습니다. 역시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강고하기만 하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임채운 서강대 경영학과 명예교수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권순욱 미디어토마토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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