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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치원메디·백신판매·HLB 등 백신 짬짜미 '400억대 철퇴'
국가예방접종사업 입찰 과정서 32개 백신관련업체 담합
유한양행 등 낙찰예정자·들러리 사전 결정…입찰가 공유
녹십자 등 3곳 2011년 제재 불구 담합 재차 참여
2023-07-20 15:36:07 2023-07-20 18:31:41
 
 
 
[뉴스토마토 김유진 기자] 조달청이 발주한 백신 입찰에 투찰 가격을 공유하는 방식으로 짬짜미한 제약사들이 무더기로 덜미를 잡혔습니다. 적발된 곳은 에이치원메디·한국백신판매·녹십자 등 30곳이 넘는 업체들로 400억원대 처벌이 결정됐습니다. 인플루엔자 백신 담합을 저지른 녹십자·보령바이오파마·SK디스커버리는 2011년 제재에 이어 또 다시 담합에 참여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녹십자·유한양행 등 32개 백신업체에 대해 시정명령 및 과징금 409억원을 부과한다고 20일 밝혔습니다. 담합 업체들은 백신제조사 1개(글락소스미스클라인), 백신총판 6개(광동제약·녹십자·보령바이오파마·SK디스커버리·유한양행·한국백신판매), 의약품도매상 25개사입니다.
 
의약품도매상은 그린비·그린위드·금청약품·메디원·비앤씨메디칼·새수원약품·강승구(새수원약품 대표)·송정약품·신세계케미칼·에디팜·HLB테라퓨틱스·에이티원메디·우리약품·웰던팜·웰팜·인투바이오·정동코퍼레이션·지엔팜·코리아팜·태성메디텍·팜스원·팜월드·하메스·한스피엠아이·김종산(삼성바이오약품 대표)입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백신구매 입찰담합'에 참여한 32개 백신관련업체에 시정명령과 과징금 409억원을 부과한다고 20일 밝혔습니다. 그래픽은 담합에 참여한 업체들.(그래픽=뉴스토마토)
 
조사 내용을 보면 백신 관련 사업자들은 2013년 2월부터 2019년 10월까지 조달청이 발주한 170개 백신 가격 입찰에 사전 낙찰예정자를 정했습니다. 또 들러리를 섭외한 후 투찰할 가격을 공유하는 방식으로 담합을 일삼았습니다. 
 
담합 대상 백신은 모두 정부 예산으로 실시하는 국가예방접종사업(NIP)의 백신이었습니다. 인플루엔자 백신, 간염 백신, 결핵 백신, 파상풍 백신, 자궁경부암 백신(서바릭스, 가다실), 폐렴구균 백신(신플로릭스, 프리베나) 등 24개 품목에 이릅니다. 
 
백신입찰 시장에서 들러리 관행과 담합 행태는 장기간에 걸쳐 고착화 됐습니다. 때문에 입찰담합에 필요한 들러리 섭외나 투찰가격 공유가 용이했습니다. 예컨대 낙찰 예정자는 전화 한 통으로 쉽게 들러리를 섭외할 수 있었습니다. 
 
낙찰예정자는 최대한 높은 금액으로 낙찰받기 위해 '기초금액'의 100%에 가깝게 투찰했습니다. 기초금액이란 조달청이 시장 가격과 전년도 계약가 등을 참고해 검토한 가격으로 입찰참여자들은 이를 상한가격으로 여겼습니다. 들러리들은 낙찰예정자가 제시한 금액보다 몇 % 높게 투찰했습니다.
 
각자 역할이 정해지면 투찰가격을 알려주지 않아도 알아서 투찰해 입찰담합이 쉽도록 했습니다. 정부조달방식이 달라지면서 담합참여자들도 방식을 바꿨습니다. 
 
정부는 글로벌 제약사가 생산하는 백신(자궁경부암 백신, 폐렴구균 백신 등)의 안정적인 공급을 위해 2016년 제3자단가계약방식에서 2019년 정부총량구매방식으로 변경했습니다. 정부가 전체 백신 물량의 5~10% 정도인 보건소 물량만 구매하는 방식에서 연간 백신 전체물량을 전부 구매하는 방식으로 바꿨습니다.
 
이에 글로벌 제약사와 백신총판이 백신입찰담합에 참여하면서 글로벌 제약사가 직접 들러리를 섭외하고 백신총판이 낙찰예정자 역할을 하게 됐습니다.
 
구체적인 담합 과정을 보면 기존 '제3자단가계약방식'에서는 의약품 도매상끼리 낙찰예정자와 들러리 역할을 바꿔가면서 담합해왔습니다. 
 
'정부총량구매방식'에서는 낙찰예정자가 의약품도매상이 아니라 백신총판이 됐습니다. 다만 의약품도매상은 기존대로 들러리 역할을 수행했으며 백신총판은 들러리 역할은 하지 않았습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백신구매 입찰담합'에 참여한 32개 백신관련업체에 시정명령과 과징금 409억원을 부과한다고 20일 밝혔습니다. 그래픽은 담합에 참여한 업체들 별 과징금액.(그래픽=뉴스토마토)
 
특히 녹십자와 보령바이오파마, SK디스커버리는 인플루엔자 백신 담합으로 2011년 6월 한 차례 제재를 받았음에도 재차 담합에 참여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유일한 백신제조사인 글락소스미스클라인은 자신의 백신(서바릭스, 신플로릭스) 총판인 유한양행과 광동제약을 위해 직접 의약품도매상을 들러리로 섭외하기도 했습니다. 
 
이 사건 담합으로 낙찰받은 147건 중 117건(약 80%)에서 낙찰률이 100% 이상으로 나타났습니다. 통상적으로 최저가 입찰에서 100% 미만으로 낙찰받는 것과 달리 이례적으로 높은 수준입니다.
 
적발된 170건 중 23건은 유찰되거나 제3의 업체가 낙찰됐습니다.
 
한기정 공정위원장은 "입찰담합으로 정부 예산이 효율적으로 집행되지 못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며 "백신제조사, 백신총판 그리고 의약품도매상 등 국내 백신 시장에서 수입, 판매 및 공급을 맡은 사업자들이 대부분이 장기간에 걸쳐 가담한 입찰담합의 실태를 확인하고 백신 입찰 시장에서의 부당한 공동행위를 제재했다는 것에 의의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백신구매 입찰담합'에 참여한 32개 백신관련업체에 시정명령과 과징금 409억원을 부과한다고 20일 밝혔습니다. 사진은 서울의 한 병원에서 독감 백신 접조을 받는 시민.(사진=뉴시스)
 
세종=김유진 기자 yu@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이규하 경제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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