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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눈')병영문화 대대적 수술 없이는 답 없다
2022-09-14 06:00:00 2022-09-14 06:00:00
"꼰지른 XX 나올 때 까지 '매봉' 뺑뺑이 돈다."
 
기자의 과거 군생활 시절 중대장이 어느 주말 오후에 중대원들을 집합시켜놓고 한 지시다. '매봉'은 대대 근처 산을 비공식적으로 통칭하는 말이었는데 이 지시로 우리 중대원 100명 정도가 오리걸음으로 등·하산을 반복했다. 
 
사건의 전말은 한 중대원이 부대 내 선임 후임 간 발생한 폭행과 부조리를 신고한 것에서 비롯됐다. 이로 인해 가해자에 대한 징계 처분이 있었지만, 애먼 중대원들이 얼차려를 받았다. 신고자가 본인을 제치고 상급자인 대대장에게 직접 보고한 것에 대한 분풀이었다. 신고자를 색출한다는 목적도 있었다. 
 
서너시간 쯤 산 오르내르기를 반복하자, 한 중대원이 손을 들고 나왔다. 중대장은 그 중대원을 우리 앞에 세워 놓고 모욕과 욕설을 늘어 놓았다. 군대 내에서 사소한 부조리를 신고하는 건 군인으로서 부끄러운 행위라는 기존 장병들의 인식이 더 강화되는 순간이었다. 
 
13일 군 성폭력 피해자 '고 이예람 중사 사망 사건'에 대한 '100일 수사'를 마무리 지은 특검팀은 '너만 입 다물면 된다'는 인식이 이번 사건의 근본적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병영문제가 발생하면 기계적으로 진실을 은폐하는 뿌리깊은 군의 구태에 대한 대대적 수술이 필요하다는 결론이다.
 
더군다나 국민적 공분으로 사회적 관심이 집중된 이 중사 사건 이후에도 군대 내 폭행·성폭력 범죄가 곳곳에서 끊이질 않고 되풀이 된 점은 그동안의 병영개선이 모두 공염불이었음을 방증한다. 
 
특검팀 조사에 따르면 피해자인 이 중사가 오히려 '나 때문에 시끄러워진 것 아닌가' 하는 죄책감에 시달렸던 것으로 드러났다. 피해자를 문제원인으로 만드는 기이한 상황이 이 중사를 극단적인 선택으로 몰아간 것이다.
 
군은 그동안 병영생활의 부조리는 물론 성범죄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군사보안'이라는 미명 아래 숨기고 속이고 허위사실 퍼뜨리기에만 몰두했다. 그러나 인권을 말살하는 군내 성폭행 범죄 등은 군사보안과는 다른 문제이다. 오히려 이런 것들이 반복되면 군의 사기는 추락하고 군기는 흐트러질 뿐이다. 이런 군대가 어찌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킬 수 있겠는가. 군을 위해서라도 병영문화에 대한 대대적 수술을 감행해야 할 때다.
 
이승재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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