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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 올림픽 참석 놓고 정부 '딜레마'…"결정시기 최대한 늦춰라"
정부 "직전 주최국 역할"…베이징 올림픽 참석 시사
미 동맹국 중심 보이콧 확산은 부담…종전선언 미중 협력도 절실
2021-12-09 16:23:58 2021-12-09 16:23:58
[뉴스토마토 박주용 기자] 미국의 동맹국과 우방국을 중심으로 베이징 동계올림픽에 대한 '외교적 보이콧'이 확산되는 상황에서 정부는 "직전 (동계올림픽)주최국의 역할을 하겠다"며 참석 의사를 시사했다. 전문가들도 실리와 명분을 고려해 정부의 올림픽 참석 가능성에 무게를 뒀다. 다만 최대한 결정 시기를 늦추며 다른 나라의 행보를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최종건 외교부 1차관은 9일 TBS 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 "평창, 동경 그리고 북경으로 이어지는 동북아 릴레이 동계올림픽이다. 상당히 의미가 있다"며 "저희는 직전 주최국으로서의 역할을 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다만, "저희는 어떤 결정도 하고 있지 않다"며 베이징 올림픽 참석 여부에 대한 단정적 시선을 경계했다.
 
최종건 외교부 1차관이 1일 국회에서 열린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앞서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전날 춘추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정부는 베이징 올림픽이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2021년 도쿄 하계올림픽에 이어 이어지는 릴레이 올림픽으로서 동북아와 세계 평화 번영 및 남북관계에 기여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최 차관의 발언은 이를 재확인하는 데서 더 나아가 "직전 주최국으로서의 역할"까지 강조했다. 중국이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당시 한국에 대표단을 보냈다는 점까지 감안한다면 정부가 베이징 올림픽 보이콧에 동참할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
 
특히 베이징 올림픽에 불참해야 하는 명분이 약하기 때문에 정부가 보이콧에 동참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그동안 중국 내 인권 문제에 대해 별다른 입장을 내지 않고 있어, 인권 문제를 고리로 보이콧에 나선다는 게 명분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우정엽 세종연구소 연구위원은 <뉴스토마토>와의 통화에서 "인권을 이유로 (미국이 올림픽에)외교사절을 안 보내는 건데 지금까지 중국 인권에 대해 말을 안 하던 한국이 중국 인권을 이유로 거기에 동참하기에는 어려운 상황이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
 
분명 딜레마다. 베이징 올림픽에 정부 대표단을 보낼 경우 힘을 모아 중국을 견제하겠다는 미국의 구상에 반대하는 것으로 비쳐져 한미 동맹에 금이 갈 우려가 있다는 점은 정부에게 고민거리다. 미국에서 공식적으로 올림픽 보이콧에 동참해달라는 요구는 없었지만 미국의 우방국과 동맹국이 잇달아 보이콧에 나서면서 정부로서는 자칫 난감한 상황에 빠질 수도 있다. 현재까지 영국과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이 보이콧에 동참했다. 지난 6일 미국의 보이콧 공식 선언 이후 빠르게 동참 움직임이 늘고 있다.
 
또 정부 입장에서는 종전선언 실현을 위해서라도 미국과 중국의 협조가 절실한 상황으로 올림픽에 정부 대표단이 참석하거나 보이콧 동참에 나설 경우 종전선언 추진에도 차질이 빚어질 가능성이 있다. 미국과 중국이 어떠한 형태로든 우리정부 결정에 불쾌감을 드러낼 경우 제2의 사드 사태 같은 경제적 걱정도 해야 한다. 
 
지난 9월17일 베이징에서 열린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및 장애인올림픽 구호인 '함께 공유된 미래로'가 발표되자 참가자들이 환호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전문가들은 올림픽 참석 여부가 향후 한미, 한중 관계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최대한 확정 시기를 늦출 것을 주문했다. 다른 나라의 움직임을 보면서 참석 여부를 판단하는, 실리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일본도 미중 사이에서 한국만큼 난감한 입장이지만 "스스로 판단하겠다"며 관망세를 유지하고 있는 상황이다. 김현욱 국립외교원 교수는 "일단 다른 국가들이 어떤 선택을 할 지 볼 필요가 있고 베이징 올림픽에 대한 민감도도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떨어질 것"이라며 "빨리 선택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신범철 경제사회연구원 외교안보센터장도 "AIIB(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 모델이 제일 좋다고 본다. 그때 미국이 (동맹국들의 가입에)반대했지만 영국, 호주가 가입하고 그 다음에 한국이 가입하니 미국이 뭐라고 안 했다"며 "다른 나라들의 동향을 관찰하면서 그 다음에 따라가면 된다. 시기를 조금 늦추며 주변 동향을 파악하고 관련국들과 공조를 해나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미중 갈등 상황을 고려하면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참석하는 것보다 총리와 장관급 인사의 참여가 적절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김 교수는 "대통령의 참석은 말이 안 된다"며 "이미 5월 한미 정상회담에서 한미 간에 협력하기로 외교 방향을 정했는데 지금 미국이 보이콧하는 상황에서 대통령이 간다고 하면 미국에 협력 안하겠다는 메시지를 대놓고 보여주는 꼴이 되니 상당히 위험한 발상"이라고 우려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9월15일 청와대 본관 접견실에서 왕이 중국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과 주먹인사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박주용 기자 rukaoa@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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