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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윤리는 외주화할 수 없다
2021-10-08 06:00:00 2021-10-08 06:00:00
참으로 중요한 것은 외주화할 수 없다. 개인의 생명을 좌우하는 것, 조직의 존속을 좌우하는 것은 외주화할 수 없다. 아무리 돈을 많이 주고 아무리 많은 사람을 동원해도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있다. 개인이 직접, 그리고 조직이 직접 해결해야 한다. 아무리 더럽고 힘들더라도.
 
윤리는 개인과 조직의 운명을 좌우하는 핵심 가치다. 윤리는 외주화할 수 없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윤리를 외주화한다. 왜냐하면 편하기 때문이다. 매번 자신의 행동, 조직의 결정이 윤리적인지 아닌지를 판단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대신 윤리를 외주화한 기구나 부서가 윤리 문제를 해결해 준다. 특히 현대와 같이 자본 중심의 인간관이 지배하는 곳에서 욕망에서 벗어나는 것은 쉽지 않다. 윤리를 외주화하면 그 대신 행동의 자유를 얻는다. 자신이 비윤리적인지 여부는 외부의 기구나 부서가 판단한다. 이들이 금지시키지 않는 이상 모든 행위는 윤리위반이 아니다. 비윤리적 행위라도 윤리담당 기구나 부서가 문제 삼지 않으면 문제되지 않는다. 사람들은 윤리를 외주화하면서 윤리를 포기한다. 그리고 자유를 얻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때의 자유는 비윤리의 자유일 뿐이다. 
 
설명이 길었다. 최근 한국 사회를 흔드는 중요한 사건들은 범죄 이전에 비윤리적인 행위들이다. 고발 사주 의혹, 대장동 사태는 범죄행위이고 또 비윤리적인 행위다. 국가권력을 행사하는 검사, 국회의원이 고발을 사주한 사건은 당장 윤리위반으로 징계를 받아야 한다. 대장동 개발에 참여하여 사회의 공동 자산을 약탈해간 사람들의 행위 역시 비윤리적이다. 대장동에 관여사람으로 국회의원이 먼저 눈에 띈다. 전직 대법관, 전직 특검, 전직 검사장, 변호사도 등장한다. 자본가만 등장하는 것이 아니다. 공직을 담당하고 있거나 담당했던 사람들이 마치 거머리처럼 달라붙어 사회의 부를 뜯어먹었다. 윤리 실종사태다. 
 
그렇지만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윤리에 관한 시스템은 잘 갖추고 있다. 국회는 '윤리특별위원회'를 두고 있다. 국회 윤리특별위원회는 “의원의 자격심사·징계에 관한 사항”을 담당하고 있다. 그리고 윤리특별위원회를 뒷받침하기 위하여 '국회 윤리심사자문위원회'를 두고 있다. 이렇게 체제는 갖추어져 있으나 실적은 사실상 전무하다. 참여연대에 의하면 제헌국회 이후 2020년까지 국회의원 징계안은 360건 발의되었으나 본회의에서 단 6건이 가결되었을 뿐이다. 그것도 제11대부터 제21대 국회까지는 단 1건만 가결되었을 뿐이다. 
 
법관, 검사, 변호사에 대한 '윤리규정'과 '징계위원회' 체제 역시 잘 갖추어져 있다. 법관윤리강령, 검사윤리강령, 변호사윤리강령이 있다. 각각 징계위원회도 갖추고 있다. 하지만 법관, 검사, 변호사의 윤리 수준은 계속 낮아지고 있다. 윤리적인 법조인은 바라지도 않는다. 지금은 법조인들이 범죄를 저지르거나 연루되지 않기를 바라는 수준까지 내려갔다. 
 
기업도 윤리를 강조한다. 기업윤리, 기업시민, 기업의 사회적 책임, 사회적 가치 창출, ESG경영 등 윤리경영도 세계적 추세다. 하지만 기업의 비윤리적 행위, 범죄행위는 사라지지 않는다. 이번 대장동 사태의 주역은 역시 탐욕스러운 자본가들이다. 
 
윤리규범이 마련되어 있고 윤리 담당 기구와 부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비윤리적 행위, 범죄행위는 계속되는 모순이 현재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다. 문제 해결과정에서도 비윤리적 행위가 계속된다. 욕설, 중상모략, 거짓말, 비아냥, 몸싸움, 근거 없는 고소와 고발은 모두 비윤리적 행위들이다. 윤리위반을 고발하고 처벌하기 위해 모인 자리에서 비윤리적 행위를 하고 있다. 이것이 우리의 현주소다. 
 
이러한 현상은 윤리의 외주화에 근거한 것이다. 윤리의 외주화로 윤리의 제도를 만들어 놓고 이것으로 윤리적 행위를 다 한 것이라고 간주한다. 실제 중요한 것은 제도, 기구의 구성이 아니라 구체적인 행동이다. 구체적인 행동 하나하나에 윤리 심사를 거쳐야 한다. 이렇게 윤리의 외주화로 인한 윤리의 타락을 막을 수 있다.  
 
윤리 수준을 높이기 위해서 제도와 기구는 당연히 필요하다. 하지만 개인의 양심과 수치심은 제도와 기구가 대신할 수 없다. 자신의 행위를 양심이라는 광장에서 심사하는 윤리적 성찰이 필요하다. 
 
김인회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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