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 기자
(무비게이션)‘보이스’, 실체 없는 공포와 희망의 경계선
‘보이스피싱’ 범죄 시작부터 과정 그리고 결말까지 모든 것 담아
‘희망’ 노린 ‘보이스피싱’ 그리고 ‘공포’ 만들어 낸 ‘희망’의 ‘충돌’
2021-09-08 01:22:00 2021-09-08 01:22:00
[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현실을 살려낸 리얼리티 그리고 영화적 판타지가 적절히 뒤섞였다. 전자는 이 영화 핵심 보이스피싱범죄가 처음부터 끝까지 어떤 식으로 어떻게 이뤄지는지를 가감 없이 공개된 점을 가리킨다. ‘번호 조작 프로그램’ ‘전화 수신을 돌리게 하는 해킹앱등은 일반 상식에서도 알아두면 좋을 예방주사 같다. 이들 범죄조직이 일반인 대상 작업 멘트, 대본작성에 대한 구성 과정도 눈길을 끈다. 주제별 상황별 타깃 아이템으로 대본을 짜는 방식, 여기에 개인정보가 어떤 식으로 어디에서 어떻게 이런 조직에게 팔려 들어가는지도 꽤 구체적으로 담겨 있다. 이런 점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인 보이스피싱범죄를 조금이라도 예방시킬 수 있는 지점이다. 분명히 그렇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영화다. 영화가 갖고 있어야 할 판타지를 위해서인지, 응징에 대한 대리만족 차원인지. 그것도 아니면 현실의 독버섯을 제거할 방법이 사실상 전무하기에 판타지라도 끌어와야 했는지. 어떤 것이라도 크게 상관은 없어 보였을 것이다. 영화 보이스는 그 실체를 보여주는 것이 첫 번째이기 때문이다. 그걸 무너트리는 건 영화적 판타지 일환이고 현실에서도 꼭 이뤄졌으면 하는 바람일 뿐이다. ‘보이스는 전자와 후자 사이를 적절히 줄타기 하면서 꽤 흥미롭고 유의미한 결과물을 만들어냈다. 그걸 위해 선택과 집중을 확실하게 했다.
 
 
 
서준(변요한)은 전직 마약반 형사다. 마약반 형사로선 전설로 불리던 인물이다. 하지만 현재는 경찰을 그만두고 건설현장에서 성실하게 일하는 중이다. 그의 아내와 조금씩 저축하고 돈을 모아 내 집 마련을 하는 게 꿈이다. 공교롭게도 서준은 건설현장 소장에게서 정규직 제안까지 받는다. 서준은 아내와 함께 행복한 미래를 그린다. 하지만 그 행복은 전화 한 통으로 산산 조각이 난다. 서준이 한창 일을 하던 중간이다. 그 시간 그의 아내는 보이스피싱 조직의 수장 곽프로’(김무열)의 전화를 받는다. 곽프로의 끔찍한 혀놀림에 아내는 전 재산 7000만원을 고스란히 송금한다. 하지만 송금 이후 곧바로 보이스피싱 범죄란 것을 알게 된다. 그러나 알고 나면 이미 늦었다. 또 있었다. 서준이 일하는 건설현장 소장이 현장 직원들의 급여 및 수당 등 총 30억 원을 보이스피싱 조직에게 털린 것이다. 서준의 아내, 서준의 건설현장 소장을 타깃으로 삼은 조직은 같은 조직이었다. 아내는 결국 충격으로 정신을 놨다가 교통사고를 당해 사경을 헤매는 중이다. 건설현장 소장은 충격으로 자살을 했다.
 
영화 '보이스' 스틸. 사진/CJ ENM
 
서준은 형사 시절 경험을 살려 정보원(이주영) 도움으로 이 조직의 실체를 어느 정도 파악한다. 하지만 보이스피싱은 당연히 점 조직 형태다. 정보원 역시 포기하란다. 서준은 사건을 해결하려는 게 아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빼앗고 파괴한 이 조직, 그리고 곽프로를 죽이기로 결심한다. 서준은 정보원의 도움 그리고 형사 시절 자신의 감각을 되살려 보이스피싱조직에 조금씩 접근하기 시작한다. 그 조직은 상상 이상으로 거대했다. 중국 선양에 본거지를 둔 이 조직, 한국에서 개인정보 명단을 제공 받는다. 이 명단 속 불특정 다수를 속이기 위한 이른바 대본작업을 한다. 전화를 걸고 또 그 당사자가 확인차원에서 다시 거는 전화를 돌리는 해킹앱을 사용한다. 대본 작업에 속아 돈을 입금한 피해자들. 조직은 돈 입금과 함께 순식간에 자금을 쪼개는 세탁과정을 거친다. 이후 중국돈으로 환치기 작업을 거친 뒤 해외 계좌로 분산 예치한다. 상상 이상이다.
 
영화 '보이스' 스틸. 사진/CJ ENM
 
서준은 자신을 나락에 빠트린 곽프로 그리고 이 조직의 또 다른 총괄조직책 천부장(박명훈) 그리고 두 사람을 움직이는 더 큰 손 황사장의 존재를 인식한다. 이제 서준은 이 조직을 차근차근 부셔 버릴 계획을 세운다. 조직 안에서부터 하나씩.
 
보이스는 충무로에서 곡사로 불리는 김곡 김선 형제 감독 연출작이다. 두 사람은 주로 공포 영화를 만들어 왔다. 공포 장르와 보이스같은 범죄 스릴러 장르는 전혀 다르게 보이면서도 같은 지점이 많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구분된다. 피해자의 공포 그리고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단 희망이 존재한다. 가해자는 피해자의 그런 감정을 노리고 들어간다. 이건 보이스피싱범죄가 노리는 지점과도 맥을 같이 한다. ‘보이스는 공포 작법이 만들어 가는 감정의 실타래를 보이스피싱이 끌어 낸 뒤엉킨 욕망의 굴레와 뒤섞어 이종 교배시킨 현실 공포다.
 
영화 '보이스' 스틸. 사진/CJ ENM
 
이들 조직을 박살내기 위해 현실에 발을 내딛고 조직 내부로 잠입한 서준의 눈에 비친 이들 조직 실체가 그랬다. 폐쇄된 장소 그 장소에서 벌어지는 악의 생산과 재생산 연속은 이 세상 무엇과도 비교될 수 없는 공포다. 실체가 불분명한 보이스피싱범죄가 눈앞에서 펼쳐지고, 이들 조직 실체와 마주한 서준의 혼란은 공포와 가장 맞닿아 있는 감정이다. 이런 점은 관객들에게도 유효하다. 실체가 없기에 두려움의 대상이고, 두렵기에 마주하기 공포스러웠던 실체를 눈앞에 가져다 놨다. ‘보이스는 일종의 교육적 경고와 위험에 대한 학습 교본이다.
 
이 경고와 학습 교본에 대한 목적은 분명하다. ‘보이스피싱범죄 피해자에 대한 위안이다. 속을 수 밖에 없었던 게 아니다. 이 정도라면 속아야 하는 게 정답이다. 다시 말하면 피해자들에게 당신 잘못이 아니다란 위로를 건 낸다.
 
영화 '보이스' 스틸. 사진/CJ ENM
 
실제 보이스피싱범죄에서 콜센터는 경찰 조직에서도 실체를 잡을 수 없는 공간이다. ‘보이스는 영화이지만 그 공간을 만들어 냈다. 이 공간이 보이스전체이고 실체이며 전부일 수도 있다. 그 안에서 벌어지는 악의 생산과 재생산 연속성은 그 덫에 걸린 피해자들을 스스로 죽음 속에 걸어 들어가게 만드는 가장 완벽한 올가미다. 김곡 김선 감독이 공포 장인이란 점을 떠올리면 이 공간의 실체가 리얼리티적인 면에서 상당한 타격감을 주는 이유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서준은 당연히 목적을 이룬다. 그 과정이 인과성에서 다소 무리가 따르지만 그건 큰 의미가 없다. 곽프로는 모두가 예상한 결과는 아니다. ‘보이스피싱범죄는 지금도 진행형이다. 언제나 정의가 승리한다. 비록 영화이지만 희망을 주고 싶다. ‘보이스피싱범죄의 먹이는 희망이다. ‘희망공포는 종이 한 장 차이다. 어쩌면 같은 얼굴일 수도 있다. ‘보이스는 이 끊어질 것 같지 않은 굴레를 끊어 버렸다. 그래서 서준의 마지막과 곽프로의 마지막이 그랬다.
 
영화 '보이스' 스틸. 사진/CJ ENM
 
제발 언젠가는 현실에서도 그 굴레가 끊어지길 바라면서. 개봉은 오는 15.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지난 뉴스레터 보기 구독하기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