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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한국 시가 나아갈 방향을 고민하며
2020-07-23 06:00:00 2020-07-23 06:00:00
“요즘 시는 왜 이렇게 어려워. 무슨 말인지 도통 알 수가 없어. 그 시를 평한 평론은 더 모르겠어.” 몇 해 전 어느 출판사 대표가 당시 발표된 시를 가리켜 푸념처럼 했던 말이 떠오른다. 지금도 그 말이 갖는 뜻은 진행형처럼 내 가슴속을 떠나지 않고 있다. 물론 그의 얘기가 모든 시에 적용되는 말은 아닐 것이다. 그가 지칭한 것은 이른바 ‘난해시’였으리라. 
 
여기서 우리가 고민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단순히 난해시가 독자를 떠나게 해 시집 출판이나 독자 수를 급격히 감소시킨다는 것일까. 그보다는 그로 인하여 우리에게는 마르지 않는 지식의 샘이자 상상의 보고(寶庫)와 같은 역할을 했던 시의 기능이 점차 상실의 길로 접어들 수도 있겠다는 두려움 같은 것이다. 슬픈 일이지만, ‘시의 위기’는 ‘지식의 위기’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문학으로부터 소외된 인류는 상상조차 하기 싫다. 정말 그런 현실이 도래하면 우리는 문학만큼 더 유효하게 마음의 상처를 치유할 방법을 영원히 찾아내지 못할 것이다. 요즘처럼 코로나19로 고통 받는 시절에는 더더욱 절실하게 슬픔과 외로움을 품는다. 사회적 거리 두기가 실천되고 있는 서구에서 오히려 문학작품이 많이 읽힌다는 기사는 그런 현상의 방증이다.             
 
시는 문학의 한 장르지만 본령이다. 시가 우리에게 주는 순기능에서 으뜸은 감동이다. 그래서 시 공간은 우리의 오감이 서로 반응해 따뜻한 안식처가 된다. 위안과 기쁨이 찾아온다. 때로는 시가 불러일으키는 낯선 충격에 탄성을 연발하기도 하고, 행간의 긴장이 베푸는 시적 묘미를 즐기기도 한다. 무엇보다 ‘극적 전환’은 평소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상상력이 확대되는 느낌을 고스란히 선물 받는 장치다. 그것은 곧 새로운 발상이나 영감을 얻는 계기로 작동한다. 자연현상이나 삶에 대한 고정관념에서 탈피해 새로운 인식을 하게 되는 건강한 자극을 받게 된다. 이런 것들이 좋은 시가 우리에게 주는 요소로 설명할 수 있다. 
 
그래서 시는 독자들과의 소통이 중요한 인자다. 읽는 이의 대부분, 혹은 시 전문가조차도 이해하지 못하는 시는 어디에 정착해야 하고 어떻게 소통해야 하는가 하는 고민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물론, 난해시를 시가 가진 고유의 가치를 훼손하고 있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우리의 상식과 논리적인 잣대로 풀어낼 수 없는 섬세한 구조를 가진 시의 값어치도 인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는 어렵다’가 아니라, ‘시는 왜 어려운가’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은 좀 더 발전적으로 시를 이해하는 열쇠가 된다. 쉬운 시도 필수불가결한 시의 독자, 시의 발전에 기여하지만, 실험적인 시와 다양성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진일보된 시도 공존해야 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나는 굳이 그렇게 창작된 시를 보통의 독자들에게 읽으라고 권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기에는 시가 너무 독자에게서 멀리 위치해 있다. 그런 시로 인해 여타의 시도 함께 소외돼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시는 이미 생존의 경계선에서 위태롭다. 아니 보는 관점에 따라서는 더 가혹한 평가가 있을 수도 있다. 혹여 당신은 ‘시는 영원히 우리의 곁을 떠날 수 없는 거야’ 하는 확신을 갖고 있는가. 그렇다면 그 근거는 무엇이고, 영원성을 위한 노력은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 전제해야만 설득력이 있다.  
 
이웃 나라 일본은 시를 잘 읽지 않는다. 내가 아는 일본 시인이나 일본인에게 왜 그런가 하고 물으면, 역시 ‘시는 어렵다는 인식을 가진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그래도 일본 시인들은 한국 시인들은 행복하다고 말한다. 한국은 시를 읽어주는 독자가 존재할 뿐만 아니라, 여전히 시를 중요한 문학의 장르로 인정하지 않느냐는 설명도 덧붙여 준다.    
 
한국인은 예로부터 시를 사랑하는 민족이다. 이것은 대한민국 시인으로 국민으로 살아가는 보이지 않는 힘이다. 대한민국이 문화민족이라는 것은 시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소통할 수 없는 예술은 쓸쓸하다. 그 존재가치가 폄하된다. 시도 마찬가지다. 이쯤에서 다시 한번 한국 시가 나아갈 방향을 고민하자. 밀리언셀러를 생산했던 기억을 다시 떠올리자. 시 독자의 외면이 길면 길수록 대한민국 문화의 근원도 흔들린다. 지금은 ‘시의 위기’가 ‘지식의 위기’로 이어지고 있다. 이것은 국가적 차원에서 시 창작과 시 독자를 배려하는 정책이 나와야만 하는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오석륜 시인/인덕대학교 비즈니스 일본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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