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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농단 첫 판단' 유해용, 1심서 무죄…"판결로 정당화 안 된다" 비판도
법원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공무상 비밀누설 등 모두 인정 안 돼"
유해용 이어 임성근·이규진도 1심 선고 예정…양승태·임종헌은 개점휴업
2020-01-13 14:34:44 2020-01-13 14:34:44
[뉴스토마토 왕해나 기자] 양승태 사법부의 소위 '사법농단' 관련 첫 판결에서 무죄가 선고됐다. 법원은 유해용 변호사(전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의 혐의에 대해 검찰이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입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형사판결이 사법농단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나왔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8부(재판장 박남천)는 13일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등 6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유 변호사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은 앞서 "공정성과 국민 신뢰를 훼손했다"면서 유 변호사에게 징역 1년6개월을 구형했다.
 
유 변호사는 2014년부터 2016년까지 대법원 수석·선임 재판연구관으로 근무하면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과 공모해 다른 연구관에게 특정 재판의 경과 등을 파악하는 문건을 작성하도록 한 혐의를 받았다. 또 재판연구관 검토보고서 및 의견서 등을 2018년 2월 퇴임 후 사건 수임 및 변론에 활용하기 위해 무단으로 들고 나갔고, 대법원 재직 시절 취급했던 사건을 변호사 개업 후에 수임한 혐의도 있다.
 
재판 기록 등을 유출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유해용 변호사가 13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선고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재판부는 이와 같은 유 전 수석의 혐의를 모두 무죄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그의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및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에 대해 "검찰이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유 변호사가 이 사건 문건 작성을 지시해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에게 전달했다거나 이를 임 전 차장이 청와대 법무비서관에게 제공하도록 공모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또 공공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및 개인정보 보호법 위반, 절도 혐의에 대해서도 "해당 보고서 파일이 공공기록물이라고 보기 어렵고 유 변호사가 법관에서 사직하면서 옮긴 외장하드에 평소 취득한 파일이 있었는데 파일 내용 중에 개인정보가 일부 포함돼 있다고 해서 피고인에게 개인정보 유출의 고의가 있었다고 볼 수 없다"고도 지적했다. 
 
더불어 "유 변호사가 개인 소지품을 가지고 나오는 과정에 검토 보고서 출력물이 포함돼 있었을 뿐이지 보고서에 있는 개인정보를 변호사 영업에 활용하려 한 사실을 인정할 증거가 없다"면서 "절도 혐의는 유 변호사에게 출력물에 대한 절도 범의가 있다거나 이에 대한 대한민국의 점유를 침해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유 변호사가 직무상 취득한 사건을 수임했다는 변호사법 위반 혐의에 대해서도 "이 사건 상고심 사건을 유 변호사가 직무상 취득한 사건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유 변호사는 재판부가 "피고인은 무죄"라는 판결을 내리자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시했다. 재판이 끝난 이후 취재진들과 만나 "공정하고 정의롭게 판결해주신 재판부에 깊이 감사드린다. 앞으로 더욱 정직하게 겸손하게 살겠다"고 말했다.
 
유 변호사에 대한 이번 선고는 지난 2017년 3월6일 사법농단 의혹이 처음 제기된 후 약 2년 만에 나온 첫 번째 판결이다. 다음 달 14일에는 임성근 전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판사에 대한 선고 공판이 예정돼 있다. 국제인권법연구회와 인권과 사법제도 소모임 와해 의혹을 받는 이규진 전 대법원 양형위원회 상임위원 등도 3월쯤에는 결심공판을 진행할 것으로 보인다. 사법농단의 주범 격인 양 전 대법원장과 임 전 차장에 대한 재판은 아직 중반부에도 도달하지 못했지만 공범들에 대한 판단이 속속 내려지면서 사법농단에 대한 법원의 1차적인 판단이 어느 정도 윤곽을 드러날 전망이다. 
 
공범의 무죄 판결에 대해 법조계 일각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사법농단 의혹에 대해 가장 먼저 문제를 제기한 이탄희 변호사는 "사법농단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박근혜 청와대, 외교부 등이 분업해 재판에 개입한 사건으로 우리 헌정체제를 위협하고 재판받는 당사자들을 농락한 사건"이라면서 "대법원장이 직업윤리 수호를 위해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한다고 촉구했고 법관 탄핵 등 국회 역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는데 왜 우리나라에서만 어려운 것인가"라고 말했다. 이어 "형사판결로 사법농단이 위헌성과 부정함이 절대로 정당화될 수 없다"면서 "정의와 부정의, 가해자와 피해자가 바뀐 역사가 반복돼선 안 된다"고 말했다.
 
왕해나 기자 haena0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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