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범의 시네마Why?] 송강호 최민식 한석규. 세 사람의 공통점. 내로라하는 충무로 흥행 보증수표다. 송강호는 이견이 필요 없는 최고 흥행 스타다. 최민식은 역대 한국영화 흥행 1위 ‘명량’(1761만)의 주인공 이순신 장군을 연기했다. 한석규는 또 어떤가. 2000년대 이후 뚜렷한 흥행작을 내놓지 못하고 있지만 2000년대 이전까진 충무로에 ‘한석규를 위한 영화와 한석규를 원하는 영화’만이 존재했을 정도의 입지와 위력을 뽐내던 흥행 스타였다. 그리고 이들 세 사람의 또 다른 공통점이 있다. 모두 세종대왕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에 출연했다. 송강호는 ‘나랏말싸미’, 그리고 최민식과 한석규는 ‘천문: 하늘에 묻는다’에 출연했다. 세종대왕은 각각 송강호와 한석규, 최민식은 세종대왕 시절 최고의 과학자이자 한반도 역사상 최고의 발명가이며 과학자인 장영실로 등장한다. 공교롭게도 두 영화는 모두 흥행 성적이 신통치 않다.
처참한 실패
두 영화 모두 세종대왕이 주인공이다. 한반도 역사상 가장 숭배되고 추앙 받는 인물 중 한 분이다. 업적은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다. 하지만 영화로 옮겨 온 세종대왕은 철저하게 외면을 받고 있다. 지난 해 7월 여름 시장에 선보인 ‘나랏말싸미’는 누적 관객 수 95만으로 막을 내렸다. 손익분기점 350만에 4분의 1 수준의 관객을 동원하는 처참한 실패를 맛보고 극장가에 퇴장했다. ‘천문: 하늘에 묻는다’ 역시 지난 해 12월 26일 극장에 걸린 뒤 개봉 2주차에 접어들었지만 누적 관객 수 165만을 기록 중이다. 역시 손익분기점 380만의 절반을 채우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앞서 ‘나랏말싸미’는 역사 왜곡 논란에 휘말리며 관객들의 집중 포화를 맞았다. 세종대왕의 최대 업적 중 하나이자 우리 역사 최고의 찬란함으로 기록된 ‘훈민정음 창제’에 대한 역사적 배경에 작가적 상상력이 더해졌지만 이 부분이 관객들의 거부감을 자극시켰다. ‘천문: 하늘에 묻는다’는 세종과 장영실 두 인물의 관계에 집중하면서도, 당시 시대상이던 명나라에 대한 ‘사대의 명분’ 즉 ‘굴종의 역사’를 그려내며 두 가지 상황이 유려하게 결합되지 못했다.
사실 이 두 가지만으로 두 영화의 흥행 실패, 그리고 ‘세종대왕은 영화적 소재로 부적합하다’는 근거를 내세우긴 부족하다. 문제는 시작부터 잘못된 기획이다.
영화 '천문: 하늘에 묻는다' 스틸.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기획 자체의 문제
사극은 기본적으로 ‘만약 이런 일이 있었다면’이란 가정에서 출발해 ‘그래서 이랬을 수도 있다’는 가상의 결과물을 도출해 내 관객들에게 색다른 재미를 선사해야 한다. ‘계유정난’을 그린 영화 ‘관상’은 수양대군이 조카 단종을 폐위 시키고 집권하는 과정에서 벌인 피비린내 나는 살육전 속에 ‘김내경’이란 가상의 인물을 집어 넣어 수양대군 일파의 속내와 그 중심에 있던 한명회의 죄책감 그리고 후에 있었던 역사적 사실을 절묘하게 결합시키며 장르적 재미와 완성도를 끌어 올렸다.
1000만 흥행작 ‘광해, 왕이 된 남자’는 실록에 나온 단 몇 줄에서 출발했다. 서양의 ‘왕자와 거지’ 동화를 끌어왔다. 광해군과 똑같이 생긴 한 남자가 왕을 대신해 왕 노릇을 한다. 시대가 요구하는 진정한 왕의 모습을 선보인다. ‘허균’이란 실제 인물이 등장한다. 그는 ‘홍길동전’을 쓴 바 있다. 허균 그리고 왕과 닮은 가짜 왕을 내세워 반상의 법칙과 사대의 명분 그리고 양반의 득세 속에서 진짜 정치와 진짜 군주의 참 모습을 그려내며 역사적 사실과 창작의 경계를 기묘하게 결합시켰다. 관객들은 통쾌했고, 환호했다.
또 다른 1000만 흥행작 ‘왕의 남자’는 어떤가. ‘갑자사화’를 끌어 왔다. 연산군이 자신의 어머니 폐비 윤씨 사건에 연루된 사람들을 모조리 잡아 죽인 사건이다. 이 과정 속에 실제 역사에 등장했던 장녹수 그리고 궁궐에 머물러 있던 광대 패거리, 여자보다 아름다웠던 남자 광대 공길의 존재. 모든 것이 장르와 폐쇄적인 궁궐의 분위기, 그리고 살인과 실종된 모성 본능에 대한 갈망이 결합돼 한편의 유려한 궁궐 잔혹사로 그려지며 화려한 결과물을 만들어 냈다.
이 모든 사극 흥행작 속에는 갈등이 존재하고 그 갈등이 만들어 낸 피바람이 등장했다. 피바람 이전 긴장감이 고조된다. 사건을 이루고 만들어 낼 수 있는 모든 요소가 갖춰져 있다.
반면 세종 집권 시기는 조선 초기였지만 대외적으로 가장 안정된 시기였다. 사건이 등장할 수가 없다. 영조와 사도세자의 얘기를 그린 ‘사도’에 등장한 붕당정치가 극심했던 시기도 아니다. 외세의 침략이 이어진 시기도 아니다. 끌어 올 수 있는 사건은 명나라에 대한 ‘사대의 명분’을 통한 왕권과 신권의 대립 문제뿐이다. 하지만 이 문제는 영화의 연출 작법으로 풀어내는 데 분명한 한계성을 드러낼 수 밖에 없다. 관람의 몰입을 이끌어 낼 주요 키 포인트로선 고려 대상이 아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영화 관계자는 뉴스토마토와의 전화 통화에서 “영화는 기본적으로 긴장감을 일으키는 사건이 있어야 하고, 특히 사극은 비극적 팩트와 극복을 위한 창작의 시퀀스 그리고 실제 역사적 기반을 통한 왜곡되지 않은 연출자와 작가의 시각이 녹아 들어 있어야 한다”면서 “세종대왕은 사실 영화적 소재로선 결코 매력적인 요소가 아니다.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가 존재했지만 세종의 스토리라기 보단 칼의 군주로 불린 ‘태종’의 역사가 더 깊게 들어간 얘기 아닌가”라고 분석했다.
그는 “한 마디로 세종 시대는 역사적으로 가장 재미 없는 시대였다고 보면 된다”면서 “영화적 소재로 끌어 오는 것 자체가 잘못된 기획이다”고 꼬집었다.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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