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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칼럼)금융위원장의 '소신'이 아쉽다
2019-11-22 06:00:00 2019-11-22 06:00:00
이종용 금융팀장
은성수 금융위원장이 해외금리연계형 파생결합펀드(DLF) 대책의 후폭풍으로 금융업계의 불만을 달래느라 진땀을 빼고 있다. 사모펀드 규제 방안과 관련해 "일부 은행의 불완전판매로 전체 은행을 규제한다"는 지적에 은 위원장은 "개인적인 소신과는 다르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니 규제가 불가피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다방면의 의견을 듣고 소신을 꺾을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헤아려달라는 것이다.
 
은 위원장은 DLF 원금손실 사태가 불거진 직후에는 은행의 고위험상품 판매 금지안을 수용하지 않았다. 상품 판매를 원천적으로 금지하는 것은 쉽지만 '바다에 상어가 있으니 수영을 아예 금지해버리는 격'이라는 비유를 하면서 금융산업이 전진하는 측면에서 보완책을 찾겠다고 말했었다. 앞서 지난 8월 금융위원장 인사청문회에서는 "야전에 있으면서 규제를 완화해야 된다고 생각을 했다. 사모펀드 규제를 완화해주자는 것이 소신"이라고 했다.
 
그러나 한달여가 지나 은 위원장이 내놓은 DLF대책은 금융권을 혼란에 빠트렸다. 대표적으로 은행이 원금손실 가능성이 20~30% 이상인 고난도 상품을 판매하지 못해도록 했다. 대규모 손실 사태를 일으킨 DLF 상품뿐만 아니라 파생결합증권신탁(DLT)과 주가연계신탁(ELT) 등 신탁 상품도 은행은 앞으로 팔지 못한다.
 
고위험상품의 은행 판매 제한뿐 아니라 사모펀드 전반에 대한 고강도 규제들은 청와대, 금융감독원 등과의 최종 협의과정에서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국 내부에서는 아쉬운 분위기가 전해진다. 그동안 사모펀드에 대한 규제 완화 정책을 180도 뒤집으면서 당국의 신뢰도가 떨어졌다는 얘기도 들린다.
 
사모펀드 규제 강화가 최근 당국과 은행권의 갈등으로 비화되고 있지만, 근본적은 문제는 당국의 혁신성장 정책에 차질을 줄 수 있다는 점이다. 그동안 당국의 정책기조는 사모펀드 규제완화였다. 부동산에 쏠린 시중자금을 금융권으로 유도하기 위해서다. 부동산에 편중된 돈을 자본시장으로 끌어들이면 돈줄이 마른 기업에 자금을 공급하는 효과도 거둘 수 있다고 봐서다.
 
은 위원장이 특유의 관료 출신 성향을 드러냈다는 평가도 나온다. 흔히 관료 출신이라면 전문적인 관리 능력은 갖췄지만, 보수적인 성향으로 분류된다. 마찬가지로 관료 출신인 전임 금융위원장도 가계부채 관리와 같은 금융시장 안정 대책에서 높은 점수를 받은 반면 금융혁신 이행에서는 크게 성과를 내지 못했다.
 
임기 중반에 접어든 문재인정부의 금융혁신 과제를 완수하기 위해서는 경제부처 수장의 소신만으로는 부족하다. 소신을 실현할 수 있는 추진력과 소통력이 필요하다. 금융시장에서 돈이 돌게 해야 하고 이를 통해 기업들이 활기를 띄게 돈맥경화를 풀어줘야 한다. 또한 경제주체들이 느끼는 불확실성을 없애줘야 한다. 관료 출신으로서의 전문력보다도 정무적인 능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민간 기업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강력한 규제보다 오히려 정책의 불확실성이라고 한다.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었던 것을 내일 문제 삼는다면, 당국의 정책을 믿고 따르는 기업은 없을 것이다. 규제산업이라는 금융업의 특성상 금융회사들은 이런 성향이 더욱 심하다. '금융사는 사기꾼'이라는 부정여론과 규제의 혼란 속에서 금융산업 발전 그림을 내놓을 수 있는 금융당국 수장의 소신이 그토록 아쉬운 상황이다.
 
이종용 금융팀장 yong@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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